미국이야기 제12막 - 미국은 챱수이 보울

2012.02.15 02:35

김학천 조회 수:555 추천:141

  중국인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거대한 땅 덩어리, 만리장성, 화려한 비단옷, 하늘을 나르고 장풍을 하는 무협지국. 아무래도 중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웅장한 스케일 일 테지만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게 요리다.
  중국인들은 세상에서 4발 달린 것은 책상 빼고는 모두 요리 감이라 할 정도로 무엇이든 버릴 것 하나 없이 속속들이 모든 부분을 요리해 먹는다 하지 않던가.
중국요리는 재료의 선택, 써는 방법, 조미료, 불의 가감, 그리고 음양사상에 의해 색. 양. 미. 향. 기의 5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요리를 만든다. 특히 재료의 선택과 배합에 있어선 재료의 성질, 본래 지닌 맛, 색감, 모양 등을 고려해서 요리를 만들 뿐만 아니라 몸을 차게 하는 재료에는 따뜻한 성질의 재료를, 독성이 강한 재료에는 해독작용이 있는 성분을 배합하는 등 궁합에 기초를 두기도 한다.
  이러한 요리들을 만들어 내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한 Wok과 칼이다. 우선 중국인의 칼은 폭이 좁고 얍사름한 일본 칼이나 그 어떤 것도 소화 낼 수 있는 두루뭉술한 한국 칼에 비해 도끼 형이다. 네모난 사각형의 시커먼 칼. 뭉툭하고 짧고 두툼해서 돼지비계나 갈비 같은 것을 나무도마 위에 올려놓고 힘들이지 않고 그냥 내려치기만 해도 툭툭 끊어지도록 돼 있는 그런 도끼 칼. 그런 칼로 토막 난 덩어리들을 푹 파인 Wok에 던져 넣고는 불을 마술처럼 다스려 야채와 소스들을 넣고 볶아대거나 튀긴다.
  그래서 중국요리점을‘Wok'이라고도 하지만 주로‘챠오 챠오(chow-chow)'라고도 부른다. 볶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기름에 볶고 튀긴 조리법이 대부분인 중국음식은 아주 기름지다. 이러한 기름진 것을 보완해주는 것이 아주 오래 전부터 요리와 함께 발전해 온 차(茶)문화이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차를 가장 먼저 마신 민족이라 전해진다 하니 아마도 5천 년은 족히 될 것이다.
  아무튼 중국요리가 세계 요리에서 차지한 역할은 적지 않다. 중국음식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각 나라마다 족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변화되고 정착해서 더 이상 중국요리인지 그 나라의 전통요리인지 모를 정도이다. 뉴올리언스에는 케이준 중국요리가, 이탈리아에는 젤라토 요리가, 프랑스에는 개구리뒷다리 요리가, 브라질에는 쿵 푸드가 모두 그런 것들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국인이 즐겨 찾는 요리 메뉴 중에 중국요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상당수이다. 챱수이, 초장군, 닭고기샐러드, Egg Foo Yong 등 무수히 많다. 허지만 이런 중국인들의 요리가 세계에 특히 미국에 자리 잡기까지엔 엄청난 많은 시간의 시련과 노력이 요구되었다.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에서 이기고 골드러시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아직 동서 대륙간 철도가 놓이기 전이었다. 그러면서 그들 나름대로 음식점이 있었겠으나 미국인들에게 잘 알려질 수가 없는 미미한 존재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 미국인들에게 있어 중국인이란 그저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노동자들로 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들에게도 훌륭한 문명의 발생지 민족답게 요리 또한 천하일품의 진기한 최고급의 화려한 상이 즐비하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저 옛날 청제국 황제의 식탁에 놓인 음식의 메뉴를 본 적이 있었겠는가? 예를 들어 제비집을 재료로 한 연와계사, 채 썬 표고버섯, 채 썬 배추, 말린 과일 등을 버무려 만든 음식, 여덟 가지 재료를 넣은 음식 '팔선일품'과 '연와압자'같은 황제의 음식을 말이다(1747년 10월1월 청나라 건륭제의 저녁식사 메뉴 중 일부 - 중국음식문화사).
더구나 반 중국인 감정인 배화사상이 팽배해 있었고 심지어는 중국인은 쥐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보니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통념은 실제로 여러 민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유독 중국인만이 쥐를 통째로 입을 벌리고 먹으려는 모습을 그린‘샘 아저씨의 추수감사절 만찬’이라는 만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당시 미국인들 눈에 비쳐진 중국인들이란 요상하게 차려 입은 아마도 미개하고 야만스러운 종족 같은 느낌이었을 테니 깔보고 천대하지 않았겠는가.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중국인의 자장면에는 사람의 손가락이 들어간다는 속설이 펴져 있었지 않은 가 말이다.
  그랬던 중국인들이 그토록 천대받고 멸시 받는 위치에서 이미지 쇄신을 하기 위해 음식점 실내분위기를 바꾸고 치장을 하고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끔 요리를 바꾸는 기술을 발휘하고 개발해 내는데 무던히 주력함으로 서서히 그들의 음식문화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헌데 흥미로운 것은 본래 중국음식을 미국인 입맛에 맞게 변경 적용된 것도 있지만 흔히 알고 있는 것들 중에 아예 중국 본토에서는 맛볼 수 없는 완전 새로 개발된 미국 판 중국요리가 오늘날 미국인들이 손가락으로 꼽는 메뉴 중의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Egg Roll, Chop Suey 라든가 General Tso'(초장군)이라든가 Fortune Cookie등이 그것이다. 사실 행운과자는 일본 교토의 외곽에서 시작되어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온‘오미쿠지 센베이’라는 과자가 중국인에 의해 발전된 미국식 음식이다. 이런 것들을 중국본토에 가져가 보면 아무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처음 보는 신기한 음식일 따름이다.
  먼저 노동자들의 애환과 함께 제일 먼저 알려진 챱수이는 그 기원에 흥미로운 배경이 있다. 주미 중국 대사인 리홍장이 뉴욕 시를 방문할 때인 1896년 저녁에 미국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이 요리를 개발했다고 한다. 그 당시 리홍장은 개인 요리사를 데리고 와서 식탁에 나온 샴페인이나 스테이크는 제쳐두고 셀러리, 콩나물, 육류를 맛있는 소스로 볶은 이 요리를 즐겼다는데 중국인 미국인 모두의 입맛에 맞는 대 히트를 친 것이었다. 리 장군이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이 요리를 만들었다고 하는 또 다른 이야기의 전설도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챱수이의 유래에 의문을 가진 학자들은 식당 주인들이 리 대사의 인기를 이용해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든 중국 음식에 관심을 끌기 위해 이야기를 꾸며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연이야 어쨌든 그 이후로 미국인들은 처음으로 중국 음식점을 찾기 시작했고 챱수이의 유행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를 휩쓸었다. 신문사들도 더 많은 신문을 팔기 위해 리 대사의 방문을 이용했다. 해서 뉴욕 저널은 리 장군의 인기를 이용해‘리홍장은 선데이 저널을 빼놓지 않고 본다.’고 광고하기도 했다. 그 후 2차 대전 때에는 군대급식으로도 들어갈 정도였으니 이젠 미국식이네 아니네 더 이상 따질 성질의 문제가 아닐 지경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루이 암스트롱이 챱수이 노래를‘cornet chop suey'라는 앨범에 내면서 그 인기는 극에 달한다.
사정이야 어쨌든 예전 까지는 미국에서 광동 요리가 주를 이루어 어느 지방의 요리건 모두를 통틀어‘경채’라 불렀다. 그러던 것이 닉슨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중국에 대해 관심이 커가면서 이들의 요리가 더 잘 알려지게 되어 광동 요리니 사천요리니 호남요리니 하는 구별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메뉴 판에 챱수이 외에 닭고기 샐러드와 초(좌)장군 요리가 나타난다. 초장군은 호남요리의 거장 팽장귀가 만들어 뉴욕으로 옮겨와 시작한 요리가 입 소문을 타고 알려지자 텔레비전에도 소개되면서 유명해진다. 급기야 유명인사들이 찾아오고 젊은이들 사이에 이 음식을 먹을 줄 아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중국에 초장군이 있다면 미국엔 KFC의 샌더스 대령이 있다. 같은 군인 같아도 한 쪽은 진짜 군인이고 다른 한 쪽은 명예계급에 불과하지만 장교계급장을 단 요리라는데 공통점이 있다. 해군에서는 이를 초제독으로 부른다나. 역시 해군다운 생각이다.
  껍질 벗긴 닭다리고기를 녹말가루에 얇게 묻혀 기름에 튀긴 후 탕수와 고추를 넣고 볶은 다음 초장군께서는 녹색야채를 바닥에 깔고 앉는다. 열두 가지 양념의 배합으로 새콤달콤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우리입맛에도 꼭 맞는 이 닭고기볶음은 옛날 중국의 유명한 장군‘좌종당’이 부하들에게 이 음식을 손수 만들어 주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부하들이 장군의 이름을 붙여서‘좌종당계(鷄)’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이제 광동요리, 사천요리, 북경요리 그리고 호남요리 후에 홍콩식 해산물 요리가 가세해서 미국에서의 중국식 요리는 5파전으로 되어간다.
노동자들의 애환을 안고 시작한 챱수이의 문화는 드디어 다양한 맛과 메뉴로 미국인의 구미를 당기기 위해 5호 전국 시대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만큼 미국 내에서의 중국요리가 걸어 온 길에는 미국의 역사적 사건과도 때를 같이하는 깊은 연관이 있던 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월그린으로 바뀌었지만 쿠바위기 사태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한 장소가 중국음식점이었고 링컨을 암살한 존 부스가 사전에 이를 계획했던 집도 지금은 중국식당으로 되어 그 이름이 'Wok & Roll' (중국식과 일본식의 식당으로는 아주 센스 있는 상호가 아닌가? Washington DC에 있다.) 이라고 하니 미국의 중국음식을 잘 알면 미국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의 대부분이 중국음식이고 보면 이제 중국음식은 더 중국인만의 것이 아닌 셈이 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해서 생긴 중국음식점이 현재 미국에 맥도널드와 타코 벨을 합친 숫자보다도 많은 4만 여 개나 된다. 아니 버거 킹과 웬디까지 합친 것보다도 더 많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한데 챱수이가 무슨 뜻일까?
  챱수이는 잡쇄(雜碎)라 해서 남은 찌꺼기 음식이란 뜻이다. 그러고 보면 챱수이가 인기리에 자리 잡히게 된 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듯하다. 이는 미국이 여러 민족의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섞여가는 데 좀 더 익숙하고 받아들이는데 용이한 것이 아닐까?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샐러드 보울이 아니라 챱수이 보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좀 더 연구하고 노력하면 아마도 얼마 후엔 ‘비빔밥 보울’이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계속) (아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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