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

2012.05.09 05:30

김학천 조회 수:474 추천:91

   가끔 출퇴근길에 운전을 하다보면 프리웨이 도로변 한 곁에서 청소 미화작업을 하는 이들의 무리들을 자주 본다. 주황색 안전재킷을 걸치고 풀이며 나뭇가지를 자르고 다듬고 종이나 쓰레기를 치우는 저들은 이런 저런 여러 가지의 사회법규를 어긴 것에 대한 대가로 사회봉사형을 힘들게 치루고 있는 것이다. 안전용이라고는 하나 일제히 동일하게 입은 유니폼으로 남의 눈에 띄는 게 창피스러워 눈이라도 마주칠까 돌아서서 거북한 모습으로 움직이는 듯 보인다.
  유니폼이란 게 대개는 멋지고 자랑스러워 입는 이로 하여금 소속감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거늘 규율을 어긴 저들에겐 한시라도 빨리 벗어버리고픈 수치의 제복이 된 셈이다. 아마 저들보다 더한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죄수들일 것이다. 중세사회에서는 단순히 격리와 감시의 상징으로 입혔던 줄무늬 죄수복이 그 후 자신이 저지른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하여 내내 입어야하는 멸시와 천대의 대상인 유니폼으로 전락한 죄수복이야말로 오늘의 주홍글씨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곤 우린 유니폼(제복)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는다. 의사의 흰 가운이 그렇고 법관이 입는 법의(法衣)나 종교지도자들의 제의(祭衣)는 저들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존엄과 존경을 갖게 한다. 그래서 그것은 사회적 성공과 삶의 안정을 보장하는 징표로 우리네의 부모들을 거쳐 내리 우리의 자식들에게도 입히기를 선망했던 제복들의 대표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반듯하게 다듬어진 군인과 경찰의 제복은 우리에게 위엄과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제복을 입고 사열하는 군경들을 보라. 일사불란한 질서에서 명예심을 갖게 하고, 절도 있는 행동에서 사기(士氣)를 그리고 통제에서 자긍심을 뿜어내지 않는가.
  허나 아무리 그 제복이 주는 순수한 의미가 그렇다 한들 사람이 신 앞에 동등해야 함에도 제복을 입는 순간 빗어지는 차별을 부정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실정이다.
  어느 낯선 두 사람이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채로 만났다. 서로 등도 밀어주며 이런 저런 세상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이 다 끝나고 밖에 나가 각자 옷을 입는데 서로 다른 신분의 제복이었다. 잠시 전 욕탕 안에서 격식 없고 허물없는 사이였던 순간이 무색하게 계급의 차이에서 오는 신분의 두터운 벽이 가로막고 있는 한계가 그것이 아닐는지.
  그러고 보니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소속감이 필요해 그런가? 명품 브랜드라면 껌뻑 죽는 사람들에게는 가방이며 옷이며 모두 일률적 상표를 붙인 제품들이 또한 일종의 준-유니폼이 아니고 무엇이랴.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자 차별을 선언하고 싶은 듯 으스대지만 모르는 사이 유니폼화(단일화) 되어 가는데 스스로들 동참하고 있는 꼴이다. 이러한 준-유니폼은 시대를 나타내는 상징성은 있을 진 몰라도 자아(自我)를 포기하는 것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튼 이렇듯 제복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넘지 못할 선을 그을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사회질서를 위한 제도일 뿐 사람들은 제복을 입을 때 명예와 긍지를 느끼며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함으로서 사회는 더욱 발전하고 공동의 선을 향해 성숙해 가는 것이리라.
  이는 공동체 한사람 한사람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 각자들의 제복(의복)을 벗고 자리에 누웠을 때 그 날의 시간들이 그 옷에 합당한 시간들로 채워졌는가 하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나와야 함에도 구성원 대다수가 그렇지 못하다면 혹시 누가 아는가?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던 죄수복의 줄무늬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자유와 평등의 상징인 삼색기 디자인으로 새롭게 거듭나면서 유행의 패션으로 변천했듯이 반대로 선망의 대상인 백의나 법복과 제의가 인술을 잃은 상술과 정의에 실패한 불의 그리고 신앙 밖에서 신을 대신하려는 오만의 무늬로 전락하고,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군복이 부패의 대명사 낙인으로 바뀔는지.
  제복(의복)은 단순히 추위와 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차적 목적을 넘어 인격을 나타내고 삶의 가치를 표현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미주중앙일보 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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