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2012.05.19 03:07

김학천 조회 수:338 추천:83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이 소위 지퍼게이트라 하여 온 세상이 시끌벅적한 적이 있었다. 해서 ‘지퍼’하면 일본의 YKK가 단연 일급인데 이 스캔들로 자리를 내주어야했던 일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클린턴이 입고 있던 바지의 지퍼 상표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답은 ‘US Open’ 이다. 아마도 활용성 좋은 그의 바지지퍼와 골프를 합성해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이겠지만 과연 미국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우스개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뉴욕타임지가 이 지퍼를 패션계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은 적이 있다. 이는 지퍼가 중세까지만 해도 보통 단추를 20-30여개씩이나 달고 있어 여간 고역이 아니었던 옷 입고 벗기를 혁명적으로 간소화했다는 평가에서다.
  그러면서 타임지는 지퍼 때문에 옷 벗기가 쉬워짐으로서 성 개방 풍조를 부추기는데 한몫했다고까지 비난하기는 했어도 지금은 우리 생활전반에 걸쳐 없어서는 안 될 너무나 편리한 물건임엔 두말 할 나위 없다.
  그러나 단추에 비해 편리하고 간단함은 있는지는 몰라도 너무 기계적이어서 이기적이며 차가운 느낌이 든다. 타협을 모르는 절대 나 홀로 이다. 그런 면에서 단추는 한결 정감이 가는 오래된 벗답다.
  개인주의인 지퍼가 동적인 서양 같다면 아무래도 바늘과 실과 함께 어울림으로 비로소 기능이 가능한 단추는 정적인 동양 같다고나 할까. 지퍼는 빠르지만 왠지 얄밉기만 한데 비해 단추는 느리지만 여유가 있는 점도 그렇다.
  게다가 단추는 바늘과 실로 정성을 다해야 제자리에 아름답게 달 수 있듯 서로 돕고 한 마음이 되도록 하는 점이 예쁘다. 그러나 무엇보다 단추는 우리의 삶과도 같아서 하나하나 채울 때마다 정성을 다 해야 하고 특히 첫 단추는 많은 것을 가르쳐서 좋다. 해서 어떤 일의 시작, 새로운 각오, 다시 시작하는 마음 등 결코 가벼이 할 일이 아닌 일종의 숙연한 마음까지도  들게 한다.
  가끔 어쩌다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을 알면 우린 그걸 빨리 다시 풀고 새로 채운다.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진 것을 알고도 마지막까지 가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서너 단추가 잘못된 것을 알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은 현명한 편이다.
  우리 삶의 단추가 수십 개라 할 때 마지막에까지 가서 다시 풀긴 너무 힘들지 않은가. 그래도 포기 하진 말아야겠지. 아무리 많아도 모두 풀고 다시 채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최양희 시인은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하고 읊었다. 그래서 첫 단추처럼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들이 중요하고 누구에겐가 잘못한 것에 대해 밤새 절하는 마음으로 반성해야한다고도 했다.
  헌데 이런 단추들이 옷마다 그냥 많이 달려있는 것 같아도 제각기 다 하나하나 자기 몫이 있다. 첫 단추는 벗에게 주는 단추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웃나라에서는 졸업식 때 교복의 두 번째 단추를 떼어 준다고 하는데 이는 심장가까이 있는 단추가 나의 마음을 대신하기 때문이란다.
  두드려서 만든 단추가 주름이 잡혀있는 모양이 ‘꽃봉오리’ 같다하여 ‘boton’이라고 불렸다는 단추. 이제 막 피려는 꽃봉오리처럼 단추를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시작이 다르고 그것에 따라 삶의 여정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첫 단추를 잘 채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단추를 잘못 채웠을 때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아닐는지.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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