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2012.06.22 01:55

김학천 조회 수:591 추천:99

   세상에서 책을 읽는 것만큼 큰 즐거움이 또 있을까? 헌데 어느 날부턴가 눈이 잘 보이질 않아 책을 읽기 어려워진다면 그것처럼 난감하고 낙담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안경이 없던 시절엔 이런 일이 생기면 수도원의 수사들이나 학자들은 책을 읽어주는 보조인을 고용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내용을 읽었다.
   그러다가 매개체를 찾아내기 시작했는데 그 예로 세네카는 로마 도서관에서 수구의(水球儀)를 통해 문자를 확대하여 글을 읽을 수 있었고 네로 황제는 검투사들의 싸우는 모습을 에메랄드로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쇠로 만든 청동 거울에서 시작하여 오목 유리와 볼록 유리를 거쳐 렌즈로 발전되어 오늘의 안경이 탄생되었다.
   안경(眼鏡)을 우리말로 바꾸면 눈거울이다. 거울이란 비춰본다는 것인데 왜 사물을 보는 안경이 눈에 다는 창문이라는 눈창이나 덧눈이라 부르지 않고 안경이라 부르게 되었나 하는 연유를 여기서 알 수 있다.
   아무튼 리처드 코손이‘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기술의 하나’라고 소개한 이 안경은 약해진 시력을 보완하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보이기 위한 심리의 결과 오늘날엔 패션의 하나로까지 자리매김 한지 오래다.  
그래서 안경은 세상을 내다보는 창구로 삶의 지표가 될 수도 있고, 미래를 내다보는 꿈의 통로가 될 수도 있지만 어둡게는 자신을 가두는 은폐의 벽으로 혹은 진실을 감추는 장애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아빠가 그랬어요/나와 헤어질 때/검은 안경을 낀 아빠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도/내가 너무 눈부셔서 눈을 다친 거래요. (강미정)’에서 처럼 자신의 아픔을 감추는 커튼이 되기도 한다.
   또한 안경은‘내 창을 감금한 교도소’이지만 ‘감옥에서 세상으로 뚫린 세상을 향한 창 (임신행)’으로서 자신과 세상을 잇는 가교이기도 하다.
이원수 작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이상한 안경을 팔러 왔는데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을소년은 호기심으로 안경을 사들고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사람들의 속을 들여다 본 그는 모습과 전혀 다른 마음들을 보고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러자 이번엔 그 노인이 다시 나타나서 이상한 단추를 판다. 남이 내 마음을 볼 수 있는 단추이다. 내 마음을 타인에게 보여주면서 마음에 평안과 화목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순수한 눈(안경)을 가진 사람은 다른 이의 부족함을 찾아내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한 욕심과 모자람을 먼저 발견하고 다스릴 줄 알아서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도록 아름다운 마음을 가꾸는데 힘써야 함을 소년은 생각하게 된다.  
   과연 오늘의 우리는 어떤 안경을 끼고 살아가는가?
가까운 곳만 보는 안경인가 먼 곳도 볼 줄 아는 안경인가? 허상을 쫓는 안경인가 실상을 볼 줄 아는 안경인가? 사랑의 안경인가 미움의 안경인가?
   어느 것인가에 따라 자신의 삶의 가치에 차이가 생기고 무게도 달라질 것이거늘 이야기 속 안경장수 노인의 그 뒷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안경과 단추의 값은 자기 자신이 치르는 것이야’라는.  
(미주중앙일보 '삶의 향기' 6-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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