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무 (습작소설) - 수정본

2012.03.06 01:36

김학천 조회 수:1102 추천:137

  미사가 끝나고 신자들과 인사를 마치자 신 신부는 곧바로 고해소로 들어갔다. 사제석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잠시 기다리니 한 여성이 들어와 무릎을 꿇는다. 고해창 너머에서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목멘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저의 죄를 고합니다. 자격조차 없겠지만...” 다시 훌쩍이더니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아주 오래 전 아버지와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 일로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그리 한 것입니다. 아직 살아있는 제가 밉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소리 죽여 하염없이 운다.
  “용서를 받음으로서 평안을 얻으십시오.”
신부의 목소리도 약간 떨리는 듯 했으나 이내 냉정을 찾아 보속을 주고 사죄경을 외워준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아직까지 무릎을 꿇은 채 고개 숙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눈물로 범벅이 된 여인을 일으켜 세운다.
  “혜린아, 잘 왔다.”
  “오라버니! 처음 뵙겠어요.”
신부가 두 팔을 크게 벌리자 거기에 와락 안기며 또 한참을 숨죽여 운다.
잠시 후 옷소매 끝을 당겨 얼굴을 닦는 그녀에게, “지금 가 볼 테냐?”하고 묻는다.
  “예” 나혜린이 여전히 숙인 고개를 들지 못하고 대답한다.

  둘이서 성당 뒤편으로 십여 분 거리에 좀 떨어져 있는 곳으로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긴다.
  신부가 먼저 말을 꺼낸다. “널 찾느라고 무던히 애썼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서 참으로 기쁘구나. 아버님도 무척 반가워하실 게다.”
  “네. 오라버니.” 신부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애잔하다.
  “아버님의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손 때 묻은 지갑 속에 사진 한 장이 들어있더구나. 아주 미인인 여인과 둘 사이 품에 안은 예쁜 여자어린애와 셋이 찍은 사진인데 뒤에는 빨간 장미 그림과 함께 ‘내 딸 혜린이’라고 쓰여 있더구나.”
  옆으로 얼굴을 돌려 누이동생을 바라보며, “그게 너란 걸 금방 알았다. 운명하실 때 ‘레이나 혜린이’하셨거든.” 나혜린이 신부의 손을 꼬옥 쥔다.
  “헌데 그 위에 마사꼬(貞子)란 이름과 사망일과 무슨 지명 같은 게 쓰여 있었는데 아마 최근에 덧 붙였던 것 같던데...”

  천주교 납골당에 도착하자 관리인 한분이 나오더니 “신부님 오셨어요? 이리로 오시지요.” 하며 안내를 한다. 안에 들어서자 입구에 김대건 신부석상이 있고 복도를 따라 몇 성인들의 영정이 걸려있는 중간쯤 성모상 옆에 이세영의 자리가 있었다.
  ‘이세림 세베리아노’ 이름 밑에 ‘신희애-신래원, 나정자-나혜린이 사랑한 분’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혜린은 순간 왈칵 울음을 쏟아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한참을 넋 나간 듯 서있더니 오빠 팔에 안기어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았다. 진정된 기미가 보이자 나혜린이 말을 꺼낸다.
  “아버지 얘기를 좀 들려주세요, 오라버니.”
  하루가 시작하면 아침저녁으로 이만석은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동네에 있는 조그만 앞집 이발소다. 그 곳에 가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집의 형제들은 모두가 다 수재 형에 공부벌레들로 그 동네에서는 선망의 대상인 집이었다. 공부 뿐 아니라 그 집 형제들이 보던 많은 문학책들도 읽을 수 있고 클래식 음악은 물론 정치며 예술이며 자신에겐 넘치는 것들이었다.
  외톨이로 자란 이만석은 자신도 그들과 한 피붙이였으면 하는 부러운 마음으로 드나들면서 그들과 형 아우하며 지내지만 어딘지 모르게 겉돌곤 했다. 아마도 삶의 철학이 달라서라고 느끼지만 어쨌든 저 혼자 생각이긴 해도 자기에게도 든든한 언덕바지가 있다는 것에 흡족했다.
  그러나 그런 것 외에도 그 곳에는 항상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이 스물 네 시간 끓고 있어 아무 때고 따뜻한 물로 세수를 할 수 있고 또 커다란 거울 앞에서 면도를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곳은 그의 꿈을 키우는 그만의 비밀연습장소이기도 했다.

  이만석은 당진 앞바다 국화도 섬에서 태어나 자란 후 고등학교를 마치자 부모와 뜻이 안 맞는다고 집을 나와 외조부모의 고향인 아산으로 옮겨와 두 노인네가 하는 코딱지만 한 구멍가게에 얹혀살면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꿈과 이상은 커서 부자도 되고 세상에 유명해지고 싶었는데 준수한 외모에 잘 갖추어진 몸매를 가진 그는 배우로 성공하는 것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여겼다. 게다가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삼류 배우 강 씨의 허풍 섞인 자랑은 그에게 바람을 잔뜩 넣어주기에도 충분했다.
  신정일이 바로 그의 아이돌이었다. 이만석 뿐만이 아니라 그 때는 신정일이 영화계를 주름잡던 시절이라 배우를 꿈꾸는 젊은이 들이라면 너도 나도 그의 모습을 닮으려고 애썼다. 머리하나에서 옷가지며 말투나 몸동작까지도 몽땅 그의 흉내를 냈다.
  그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정일처럼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짧게 깎고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들이대고는 인상을 써 보기도 하고 씩 웃어보기도 하며 대사를 흥얼거리기도 해 본다. 그러니 살림집이 안으로 붙어있는 이발소 집은 가게가 문을 닫은 후에도 한 식구처럼 드나드는 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연습 장소는 없었다.
  거울 앞에서 연기며 대사를 읊는 연습을 하던 그는 거울 가까이 들여다보고는 혼잣말을 한다. “세베리아노, 넌 할 수 있어.”

  ‘세베리아노’는 그의 가톨릭 세례명이다. 어머니의 성화에 성당에 나가 교리를 받고 세례까지 받긴 했으나 아직 신심은 부족하다. 그런 그가 일요일에 열심히 성당 가는 데는 그만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보고 싶어 하는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아산 공세리에는 아주 예쁜 고딕식의 전통적 성당이 있는데 십자가 첨탑이 뾰족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어 사방 어디서나 보인다. 1897년에 프랑스 드비즈 신부가 조선시대 충남 일대의 조세를 집결시키던 공세창을 얻어 그 자리에 세운 성당이다. 오래된 성당답게 깊고 아늑한 실내분위기에 주위에 있는 수백 년 된 팽나무와 느티나무를 비롯한 고목들은 유서 깊은 이 성당을 더욱 고풍스럽게 해 준다.

  이만석은 아산으로 이사 온 후 다니던 이 성당에서 처음 만난 한 여자에게 마음이 끌렸다. 신희애 데레사, 수녀지망생의 아주 고운 여성이었다. 그녀와 몇 마디 말만 나누어도 그 날 하루는 온 세상이 내 것인 양 즐거웠다.  

  어느 봄날 성당의 대학부에서는 피정을 국화도로 가기로 했다. 답사 선발대로 청년부 부장과 청년회장과 총무 그리고 신희애가 담당 수녀님의 인솔아래 먼저 가보기로 했는데 그곳은 마침 이만석의 고향이어서 누구보다도 그곳 지리를 잘 아는 그도 같이 가기로 했다.       국화도는 당진에서 배로 반시간 남짓 걸리는 곳이었다.
  도착한 첫날 저녁 사전 답사를 끝낸 후 저녁미사를 보고 각자 자유 시간이 허용되었을 때 이만석은 신희애에게 신기한 곳을 구경시켜 주겠다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녀는 바다 구경도 처음이려니와 그가 신실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들어서 선뜻 따라 나섰다.
  국화도의 양 옆에는 조그만 섬이 하나씩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토끼섬으로 썰물일 때는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소위 모세의 기적의 바다갈림길이었다.

  바다를 건너 그곳으로 안내한 그는 그녀와 단 둘이 큰 나무 밑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마치 알퐁스 도데에 나오는 여자아이와 목동처럼.
  “여기 이렇게 단 둘이 와보니 마치 에덴동산에 있는 것 같네. 넌 이브, 난 아담. 히히”
그는 마냥 좋았다.
  “어머,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 참 고요하고 평온하기도 하고. 여기 이렇게 있으니까 세상 것들을 모두 다 떨쳐 버릴 수 있을 것도 같애요. 헌데 세베리아노는 어떻게 해서 국화섬이 고향인데 아산까지 오게 되었어요?”하고 신희애가 물었다.
  “응, 우리 어머니는 아산이 고향이지만 아버지가 국화도 토박이거든. 너무 가난해서 겨우 장가를 들으셨다고 하셨어. 그래서 나보고 이담에 만석꾼 부자가 되라고 이름도 이렇게 지으셨대. 헌데 난 내 이름이 싫다. 너무 촌스러워서. 네 이름은 참 예쁘고 좋다.”
  “고마워요, 우리 할아버지가 지워주셨는데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믿음, 소망, 사랑 ‘신망애’를 본떠서 그리 하셨대요. 그러시면서 내가 자식을 낳으면 래(來)자 돌림으로 지으라고 하셨어요. 래(來)자를 잘 보면 십삼 인이 그 안에 있는데 십자가 옆에는 작은 인(人)자가 두 개 있고 가운데에는 큰 사람인(人)자가 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닮은 형상이라는 거야. 게다가 ‘올 래(來)’자는 재림의 의미도 있고. 근사하지 않아요?”
  잠시 말을 끊더니 “그런데 할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가 없어서 죄송해요.”
  “왜?”
  “난 결혼을 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수녀가 되고 싶거든요. 작은 꽃 소화(小花) 데레사 처럼...”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화 데레사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어려서 의식을 잃기도 하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고생을 하였는데 성모신심이 좋아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중에 병이 낫는 기적을 체험을 했대요. 열네 살 때 하느님의 소명을 받고 맨발의 갈멜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나이가 미달이어서 거절되었대요. 그런데 교황께서 특별히 배려해서 입회가 허락되었대요. 그 뒤 그 분은 ‘작은 길’이란 자신만의 고유 영성으로 생을 살다가 불과 스물네 살에 숨을 거둔 분이셔요. 나도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 내 본명을 그렇게 지은 거지요.”  

  “그으~래? 수녀가 된다고...?”
  별안간 그는 그녀가 자기완 아주 다른 사람으로 멀리 느껴졌다. 그러면서 금단의 열매 같은 묘한 느낌이 엄습했다. (선악과. 만지지도 따 먹지도 말라던 바로 그 금단의 열매?)

  왜 별안간 그런 생각이 났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어쩌면 그녀를 영원히 잃을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에게 바싹 다가가 껴안았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놀라 반항하는 그녀는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행과 함께 본당으로 돌아온 후 그녀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본당 공동체에서는 그녀의 갑작스런 사라짐에 대해 아무 이유를 모른 채 의아하고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그것도 잠시 그냥 잊은 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만석은 처음엔 당혹스럽고 그 일이 알려질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별일이야 있으려나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달래기도 했는데 막상 그녀가 사라지고 나자 안타깝지만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는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을 잊어버리고 평상시의 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죄책감이 간혹 고개를 들며 그를 괴롭혀서 편치 않았다. 해서 그는 그곳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학교에 휴학계를 내곤 해군에 입대를 했다.  

  3년의 해군생활을 무사히 다 마치고 돌아오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어 할머니를 도와 가게를 돌보며 지내다가 복학을 했다. 그리고 다시 두 해가 지나 학교를 마칠 때쯤 할머니마저 세상을 뜨시자 가게를 정리하고 그 참에 아예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곤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기 위해 동네 강 씨를 한사코 쫓아다녔다. 허나 나중에 알고 보니 강 씨도 이렇다 할 소속사나 제대로 된 자리가 있는 게 아니라 아는 조연급 배우 집에서 허접 일을 도와주며 엑스트라 정도의 일을 하는 처지였지만 아쉬운 대로 줄을 댈 곳이라곤 그밖에 없었으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는 성격이 활달하고 잘 웃는 얼굴에 무엇보다 틈나는 대로 앞집 이발소 집에 가서 책을 많이 읽고 주워들은 게 많은 탓인지 그럴듯하게 대화를 끌어가는 말재주는 있어 남의 호감을 잘 사는 편이었는데 그런 점이 일급 조연배우 마정수의 눈에 들은 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그의 뒤보살핌으로 그나마 조금씩 영화감독들에게 줄을 댈 수가 있었으니까.

  이제 그는 멋지고 인기 있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선 구차스럽거나 촌스런 것들을 버리고 좀 더 세련된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이름부터 바꾸기로 했다. 그 당시 유명하다던 백도사에게 갔다. 문간 서기를 통해 이름을 밀어 넣고 얼마를 기다리니 차례가 되었는지 안으로 들어가란다. 그가 방에 들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백도사는 그를 한번 힐끗 올려다보고는, “이 이름은 획이 안 좋아. 헌데 당신 얼굴에선 문패가 둘이 보여. 서로 다른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둘? 집을 두 채나 갖는 부자가 된단 말인가?)
  “한 개는 빛이고 다른 한 개는 어둠이야. 빛이 어둠을 뚫고 나오려면 이름을 바꿔야해.”
두 개의 나무숲에서 세상으로 나와 빛을 얻으라는 듯으로 이세림(李世林)이란 새 이름을 얻었다.  이세림 세베리노, 근사하게 들렸다.

  그런 다음 그는 이미 앞서 성공한 이들의 부류에 섞이기 위해 그들의 취향이나 버릇들을 흉내 내기에 바빴다. 의상은 물론 은팔찌며 멋져 보이는 파이프 담배까지 물고 다녔는데 특별한 향내 나는 담배가루를 사기위해 비밀 가게에 가는 등 그들이 가는 곳이나 모이는 곳  어디든 무엇이든 열심히 따라다니며 보고 배웠다.  

  그럭저럭 여기저기 강 씨와 마정수를 따라다닌 보람이 있었는지 한 1년 지나 단역을 하나 맡았다. 앞집 이발소에 내려와서 동네 손님들 모아놓고 온통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공짜표까지 나누어 주고 모두들 자기가 나오는 영화를 꼭 보라고 채근했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영화를 보고 온 동네사람들 말로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그의 모습은 어느 한 장면에서도 보이지 않았다고 이구동성이었다.

  그랬더니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수줍은 듯 ‘히힝’ 웃으면서 “그 왜, 형사들이 어느 2층집에서 잠복을 하고 창문 밖을 감시하며 범인을 기다리는 장면 있잖아요. 새벽녘이 되면서 그 창밖에  ‘찹쌀~떡!’ 하고 소리치고 지나가는 장사꾼이 바로 나예요.”
  뒷모습으로 비치긴 했지만 그게 바로 자기였다면서 “처음부터 큰 역 맡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제 시작이지.” 하며 오히려 신나했다. 그리고 싱글벙글 이었다.

  그는 항상 그랬다. 한마디로 뻥이 좀 심한 편이긴 했지만 참 낙천적이었다. 무슨 일에건 ‘히힝’ 한번 웃고 눈을 아래위로 한번 굴리고는 겸연쩍은 듯 씨-익 웃음으로 마무리를 하면 그게 다였다. 뒤끝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모두들 그를 싫어할 수 없는 게 그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랄까.

  그러나 그것 뿐. 시간이 지나도 그의 배우 생활엔 어떤 진전의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저녁마다 이발소 거울 앞에서 연기 연습을 해도 그의 표정 연기는 형편이 없어 배우로는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게 모든 이의 평이었다. 배우학원이라도 가야하는데 그게 또 여의치가 않았다. 힘도 들고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못한 처지에 그 쪽 정서에 적응이 어려워지면서 희망도 줄어들었다.

  배우로 별 재미를 못 보고 고심하던 참에 마침 새로 생긴 민영 방송국에서 신인연기자 탤런트를 구한다는 공모에 응했는데 천만 다행스럽게 합격을 했다. 배우로 돌아다니기 보다는 일정한 직장을 갖고 소속감을 갖는다는 게 훨씬 나았고 제법 작은 배역이라도 이것저것 심심치 않게 얻다보니 재미도 솔솔 붙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를 대신해서 일류모델의 옷을 찾으러 명동에 있는 간판을 내걸지 않은 어느 양복점을 가게 되었다. 그곳은 유명 양복지의 직속 재단 하청지로 주로 모델이나 상류층들의 옷만을 만들어 주는 곳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열심히 드나들면서 얼굴 도장을 찍은 덕인지 톱모델 차도신의 눈에 들었다. 그의 천거로 드디어 양복 모델에 등장하게 되면서 얼굴도 알려지고 제법 사람들 입에 그의 이름도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제 좀 나은 사교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게도 되고 한 단계 높게 발돋움을 한 그는 어느 날 영화배우들과 모델들 모임에 따라 나갔다가 새로 떠오르는 별 애로모델 나정자를 만났다.  (오!, 탐욕스런 선악과)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는 여자를 보면 선악과나무를 떠올렸다.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탐스런 선악과. 하느님이 먹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우리를 그냥 시험하기 위한 것일 뿐 우리를 위해 만드신 것이니 우리가 못 먹을 이유가 하등 없는 것이라 여겼다. 또한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보기에 안 좋아 거들짝을 만드셨다는 이유만 보더라도 연약한 여자들을 외톨이로 만드는 것은 비성서적이기도 하고 신사도에도 어긋난다는 야릇한 지론도 있었다.  

  그는 그녀가 참여하는 모델회합마다 빠지지 않고 나갔다. 남들과는 무언가 다른 차별선언이라도 하는 듯 항상 특이한 금빛 나는 작업복형 오버롤을 입고 가죽숄더백을 걸치고 향내 나는 파이프 담배를 물고 오스트레일리아 산 캥거루 가죽으로 된 투박한 구두를 신고 뒷주머니에는 영문 잡지를 구겨 넣고는 나타나 씨-익 웃는 여유를 부리면서 시키지도 않는 일이라도 이것저것 참견도하고 돕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차를 대리운전하게 되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책을 읽은 게 많아서 그런지 이런 때 써먹기는 안성맞춤이었다. 운전을 하는 내내 백미러로 그녀를 힐끔힐끔 훔쳐보면서 간간이 문학전집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읊어가며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에게 나정자는 내심 재미난 사람이라고 느끼면서 호감이 갔다. 운전해준 수고에 감사한다는 보답으로 다음에 저녁을 사겠다는 그녀의 제의를 흔쾌히 승낙한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북악 스카이웨이 언덕에 자리 잡은 고급 이태리 레스토랑의 고즈넉한 방에서 “당신이 칼멘이라면 저는 동호세가 되지요.”라며 너스레를 떠는 그의 모습에서 나정자는 좀 서툴기는 하지만 친절하고 문학적인 감각이 있는 그에게서 영화계의 다른 사람들과는 색다른 신선감을 느껴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문제는 비록 별거 중이긴 하지만 그녀는 엄연한 기혼자였기 때문에 세간에 좋지 않은 스캔들에 휩싸이게 된 것인데 그는 엘리자베스와 리차드 버튼이나 김지미와 최무룡의 예를 들어가면서 이것은 일시적 장난의 불륜이 아니라 운명적 사랑이라며 항변하고 흥분하였다.

  급기야 나정자는 남편과 정식으로 헤어지고 이세림과 살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세계가 그렇듯이 살면서 문제가 하나 둘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소유욕과 야심이 컸던 그는 점차 의처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게다가 나정자가 마약중독에 깊이 빠지면서 허구한 날 싸움이 잦아지고 그들 사이는 크게 벌어져 갔다.

  둘 사이에 다섯 살 난 계집아이 하나를 두었지만 결국 그들은 파경을 이루고 나정자는 모든 재산을 남몰래 처리하고는 어느 날 밤 치료차 일본으로 간다는 메모지 한 장만을 달랑 남겨놓고 딸아이를 데리고 그를 떠났다.  

  신 신부는 먼 바다 쪽을 바라보면서 “그러니까 그 딸아이가 바로 너였던 거지.”
  “엄마는 마약 때문에 재활원과 교도소를 여러 번 들어갔었어요. 그러다가 그만...”
나혜린의 눈에는 눈물이 다시 그렁거린다.

  이세림은 전혀 예상 못했던 나정자의 도주로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자 막연했다. 무엇보다 둘이야 죽네 사네 싸움이 잦았어도 살을 맞대고 살던 아내였고 더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아이를 잃은 그 허탈감과 배신감에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연기력 모자라 절절매는 판에 무너진 가정사까지 겹치다 보니 삶의 애착도 없어지고 지칠 대로 지쳐 자연 애매한 주량만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그는 자신의 꿈인 탤런트의 길마저 끝내 접기로 하고 영상부 카메라맨이 되기로 했다. 영상부 말단직원으로 재출발한 그는 연예계의 화려한 환상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송국 일에만 더욱 열심이고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애쓴 보람이 있었는지 시간이 감에 따라 새 직업에 적응되면서 흥미도 느끼고 남아있던 상처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점차 의욕을 찾아가던 그는 다시 성장하여 부장의 자리에 올랐다.

  부장이 되면서 본래의 의지가 되살아나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개편하고 재구성하는 등 분주했다. 특히 대형 버라이어티 쇼 특집의 도입은 그의 첫 야심작이었다.
  어느 날 편성국장 소개로 안무 지도를 맡을 담당 코레오그라퍼를 만나기 위해 조선호텔 커피숍으로 갔다.
  정은수, 그녀의 이름이었다. 약속시간보다 반식경이 지나 나타난 상대는 의외의 젊은 여자였는데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 놓고 시원스레 웃는 그녀의 미소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나오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게리 쿠퍼에게 안기며 웃던 그 해맑고 천진난만한 화사한 미소처럼 아름다웠다. 그 당시 그 정도의 아름다운 이를 가진 미소를 보기란 쉽지 않아서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보암직한 선악과)

  “대학에선 종교음악을 전공했어요. 헌데 어려서 배웠던 발레가 너무 좋아서 안무가가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 예술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방송국 쪽으론 전혀 관여한 경험이 없어서 취향에 맞을는지 잘 모르겠네요. 또 상업성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요.” 하며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수다스럽지 않게 조용한 어조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는 그녀가 상당히 품위 있어 보였다. 그리고 얘기 도중에 간간이 보이는 웃음에 드러나는 예쁜 이에 자꾸 눈길이 갔다. 내심 이 여자와 친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앞으로 다가 올 매스컴 시대에 대비해서 우리는 선생님 같은 세분화된 전문분야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꼭 도와주셔야 합니다. 고려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회합이 끝나고 일어 설 때 쯤 그는 명함을 한 장 꺼내 무언가 적더니 건네주었다.

  그는 명함을 건넬 때 그냥 주는 법이 없다. 명함 뒤에는 언제나 손수 펜으로든 사인펜으로든 그림을 그려주거나 글귀를 써준다. 어려서부터 엽서를 보낼 때도 앞면 주소 옆 구석에 매직펜으로 간단한 그림과 함께 짧은 글귀를 그려 넣곤 하던 버릇이었다. 그는 명함 뒤에다 ‘향기 있는 이는 치장을 안 해도 향내가 납니다. 바람 없이도 고운 냄새가 스스로 퍼집니다.’라고 써 넣었다.  
  그리고 “꼭 좋은 대답을 기다리겠습니다.” 하며 꾸벅 절을 했다.

  얼마 후 그녀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는 일부러 고급 레스토랑을 고르지 않고 좀 헐해 보이는 식당으로 갔다. 일부러 점수를 따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가식 없는 서민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계산에서였다.
  테이블에 마주 앉자 그는 “감사합니다. 이렇게 다시 연락을 주셔서.”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바지 양옆구리에 가지런히 대고는 꾸벅 또 절을 하곤 앉았다.
  “어머, 이러시면 제가 민망하잖아요. 그러지 마셔요.” 정은수는 두 손을 허공에 내저으며 환히 웃었다. 순간 여유가 보인 그는 언제나 처럼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영화를 의식하고는 “선생님이 마리아라면 저는 로베르토 입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호호호, 농담도 잘하시네요.”

  그녀는 보통 연예계 여자들과는 달리 보였다. 춤이든 삶의 태도든 모든 게 반듯했다. 생활에 충실하고 검소하고 특히 신심이 깊은 가톨릭 신자였다. 정은수는 처음엔 이세림에게 그다지 점수를 주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진지한 면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보았다. 허나 방송일을 같이하는 시간이 더해감에 따라 고지식한 대학 강사였던 전 남편의 독선과 권위주의에 염증을 느끼던 것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유머가 있고 나름대로 귀여운 데가 있는 그에겐 숨 쉴 틈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일 할 때만은 빈틈없이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서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마음이 열렸다.

  이세림은 갈수록 그녀가 더욱 더 좋았다. 아름답고 정숙하고 조용한 그녀와 있으면 자신도 어쩐지 품위가 격상되는 듯 했다. 그녀와 이루어 질 수만 있다면 남들처럼 행복하고 순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업무상 만나던 일이 개인적인 만남으로 이어져 일 년여 데이트를 즐기다가 혼인을 했다.

  그러나 연애와 결혼은 항상 다른 법. 그도 엔간히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근본적인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한배를 타고 순항하기에는 무리였음이 빈번하게 드러나면서 항로는 삐걱거렸다. 그녀는 비현실적이고 진실성이 없는 그의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부부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고 삶을 가볍게 보는 그의 가치관에 회의를 느꼈다.

  참을성이 많고 숙고적인 그녀가 오랫동안 묵상하고 나서 마침내 다다른 결론은 결별이었다. 그녀는 결혼 기념 5주년 하루를 남기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가방하나만을 들고 그의 곁을 떠났다.

  정은수를 잃은 것으로 이세림은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진지하게 다시 돌아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추구해 온 삶이 알맹이 없는 화려하고 뜬구름 같은 생활이었다고 느낀 그는 이제야 말로 평범하고 진지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정은수와 살면서 보아온 그녀의 신앙심 깊은 삶의 태도를 반추하면서
오래 동안 잃었던 신앙생활을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어준 것이 어머니였다면 그에게 신앙을 성장시켜주고 삶의 바른 길로 이끌어 준 것은 정은수인 셈이었다.

   미사 때마다 울려 펴지는 그레고리안 성가와 오르간을 통해 들려오는 장엄한 미사곡들이 어쩌면 그토록 뼈 속까지 저미도록 깊게 파고드는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특히 미사 중에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라고 통성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칠 때마다 그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본당 수녀님을 볼 때마다 오래 전 수녀가 되겠다던 신희애 데레사가 떠올랐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더니 무척 보고도 싶어졌다. 무거운 죄책감도 들면서.

신희애가 임신이 된 걸 안 것은 벨기에에 와서 이었다.
그 일이 있던 그 날 밤 뜬눈으로 밤을 새고 돌아 온 그녀는 몇날 며칠을 방에 쳐 박혀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하느님께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며 기도에 매달렸다. 공세리 성당은 프랑스 신부가 세운 이후로 그곳의 신부들과 교환제로 서로 오고가는 관행에 따라 주로 프랑스 신부들이 상주하는 편이었다. 그런 연후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프랑스인 지드 신부를 찾아가 눈물의 고해성사를 했다.

  지드 신부의 주선으로 그녀는 한국 땅을 떠났다. 그리고 도착 한 곳이 ‘베긴수녀원’이었다. 플랑드르 지역에 있는 서약을 하지 않아도 수도생활을 하며 세상 밖과도 왕래갈 수 있는 다른 곳 보다는 격식이 덜한 종교적인 생활공동체 형식의 수도원이었다. 수녀원이긴 하지만 이곳에 모인 여성들은 환자들의 병간호나 여성교육 등으로 여성들이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되어있는 시스템이었으므로 신희애가 일단 머물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그녀는 오로지 일에 전념하고 봉사도 하면서 기도에만 매달렸다.
새로운 터를 닦고 자리를 잡기 시작한 지 두어 달 이 지나서 몸의 이상이 느껴졌다.
  
  얼마 후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잘 생기고 귀여운 그녀의 분신. 이만석이는 미웠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생명의 선물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보석 같은 아들의 이름을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주님의 재림을 기리는 동산’이라는 뜻의 래원(來園)이라 불렀다. 그리고 자신의 성을 붙였다. 그러고 보니 성(姓)까지 합치면 ‘하느님이 오시는 세상’이란 뜻의 ‘신래원’이 되었다. 그리고 세례명을 ‘세베리아노’로 붙였다.

  신 신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어머니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늘 기도를 잃지 않으시고 나를 하느님에게 봉헌하기로 서언 하셨단다. 그런 어머니의 바람대로 난 사제가 되었다.”
  여기서 잠깐 말을 쉬고는 “사제가 되고 일 년 있으니까 어머니께서 첫 안식년이 되면 꼭 한국의 아산에 있는 공세리 성당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시더구나. 왜 그러시는지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난 어머니의 그 간곡한 부탁을 늘 잊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도 묻지 않았던 것처럼 혹여 어머니의 마음을 다치게 해 드리지 않을 까 하는 두려움에서였지. 드디어 첫 번째 안식년이 되던 해 한국으로 가기 전날에야 어머니는 내게 아버지의 속명만을 알려 주셨어. 그리곤 ‘다른 것은 묻지 말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옆으로 돌아 앉아 누이동생을 바라다보았다.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갔다. 이세림의 마음에도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그래서 사람은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고 새 다짐을 하고 살아가는 가 보다.
  신록의 5월 중순에 재일동포들의 생활에 대한 특별기획을 위해 일본으로 가려고 김포공항 탑승출구에서 탑승을 기다리던 그의 어깨를 툭치는 이가 돌아다보니 편집국장이었다.
“이 부장, 일본가시는 구만.”
“어, 국장님도 출장가십니까?”
“별안간 일본 외무성에 중한 일이 생겨 나가게 되었어. 헌데 이번에 가면 한 석 달쯤 체류한다면서요. 혹 시간이 되면 롯본기(六本木)에 들려 봐요. 거기에 한인 2세 모델 겸 가수가 요새 인기를 끌고 있다던데 가는 김에 취재 좀 부탁합시다. 이름이 소라미(空美)라던가?”
  “아, 예. 그러겠습니다. 다녀와서 다시 뵙지요.”

  처음 한 달은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 바빴다. 겨우 숨을 돌린 이세림은 소라미가 나온다는 ‘미조라 나이트클럽’을 가보았다. 별로 크지 않은 좁은 공간에 빽빽이 들어선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전설적인 한국계 최고의 가수였다는 ‘미조라 히바리’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클럽이어서 그런지 한국인들도 꽤 많았다.
  시원한 기린 맥주 한 두어 병을 들이키고 좀 있으니 여자 가수하나가 무대에 오르는데 굉장히 아름다웠다. 처음 보지만 저 여자가 ‘소라미(空美)’라고 짐작을 했다. 애잔한 엔가를 몇 곡 부르고 내려가는 그녀를 따라 무대 뒤로 따라갔다.
  “실례합니다. 저는 한국의 제일방송국에서 온 이세림 영상부 부장입니다. 잠깐 시간이 허락되신다면...”
  “아, 그러세요? 헌데 한 시간 정도 기다리실 수 있으시나요?”
  “물론이지요.” 생각보다 밝고 거만하게 눈치주지 않는 반응에 놀라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자신의 프로그램이 끝나자 그녀는 이세림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옮기자며 한 십 여 분가량 떨어진 히가시신주쿠의 가부키초로 갔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안경을 걸치고는 서스름 없이 이세림의 팔짱을 끼고 어느 한집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서양식 술집들이 꽤 많이 들어서 있는 거리였는데 주로 외국인 손님이 많은 곳을 고른 것 같았다.
  “이렇게 해야 남들이 몰라보거든요. 하긴 전 아직 그렇게 유명하진 않지만요.”
(아직 유명하지 않다?)
  잠시 어리둥절한 그에게 환한 미소를 던져 보이는 그녀가 무척 귀엽다고 느껴졌다. 스타일리쉬하게 잘 빠진 몸매 이긴 했지만 아직 어린기가 보이는 얼굴에 그녀의 일본 악센트가 섞인 한국말이 더욱 귀엽게 그러나 친밀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한창 발랄할 그 어린 나이에 얼굴에서 어딘가 쓸쓸함이 엿보이는 것은 왜일까?
“저는 소라미가 아니예요. ‘소라미’는 전설적인 한국계 일본 최고의 가수인 ‘미조라(美空)’를 모델삼아 그의 이름자를 본떠서 ‘소라미(空美)’라고 지었어요. 그 언니는 타 도시로 출장공연에 갔어요. 저는 대타예요. 아직 이름이 안 난 레이나(玲奈).”
(레이나-아름다운 사과란 뜻이구나. 아름다운 선악과.)

  “센세(先生), 오늘은 취재하지 마시고 그냥 이렇게 술만 마셔요.”
  “?”
  “처음 뵌 분에게 이러는 것이 이상하죠? 아까 노래하면서 센세를 보았어요. ‘이곳 분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헌데 센세가 어딘지 모르게 남같이 안 느껴졌어요. 괜찮죠?“
  “그럽시다.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술이나 마시지요, 뭐”

  일주일 지나 다시 레이나를 만났다. “센세가 좋아졌어요.” 하며 또 팔짱을 낀다. 툭하면 팔짱을 끼는 게 이 아이의 친함을 나타내는 습관인지 아니면 이 세대의 젊은이들의 특징인지 모르지만 기분이 좋았다. 먼저 시부야(澁谷)의 NHK 방송센터에 들렀다. 마침 온 김에 그곳에 대한 정보며 자료를 구하기도 하고 레이나에게 방송국 구경도 시킬 겸해서 였다. 한 두어 시간 볼일을 끝내고 나오자, 레이나가 말했다.
  “한 번도 연극 같은 것을 가본 적이 없어요, 그런 근사한 곳은 누구랑 같이 가야 어울리는 거 아닌 가해서요. 조 아래 분카무라(文化村)에 좋은 프로가 있다는데 같이 가 볼래요?”
  “그럽시다.”
  공연은 ‘오디푸스와 안티고네’였다. 공연이 끝나고 둘은 근처의 사케바에 들어갔다. “아들과 어머니의 불륜이라...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연극이라 재미는 있었지만 내용이 슬프네요. 센세”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요. 살다보면 자신이 알지도 못하고 책임도 질 수 없는 운명의 사슬에 묶이는 삶도 허다하거든요? 자, 연극은 연극으로 치고 일본생활에 대한 이야기나 해 봅시다. 그리고 소라미에 대한 얘기도 좀.”  
  동경의 밤은 깊어갔다.

  방송일이 바빠서 한 달을 꼼짝 못하던 중에 레이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센세, 우리 한잔 하러 가요.” 둘이는 우에노고엔(上野公園) 뒤편에 있는 코리안요코초(코리안橫丁)로 갔다.
  “이 집에 엄마랑 가끔 왔었어요.”
술이 약간 취하자 레이나가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더니, “센세, 오늘이 엄마 1주기였어요. 묘지에 다녀왔어요.”
  “어이구, 미안해요. 묘지는 어디에?”
  “엄마가 재활원과 교도소에 들어갈 때마다 친절하게 해 주시던 섀퍼롱 신부님이 도와주셔서 좋은 곳에 안치했어요. 도쿄 타워에서 내려다 보여요. 엄마가 항상 좋아하는 하얀 봉오리 장미꽃 사진을 붙여 놓아서 금방 찾아요.”
  “재활원?”
  “네, 내가 어려서 엄마랑 둘이서 이곳에 왔는데 아무 연고가 없었어요. 엄마는 모델일로 돈도 꽤 벌었는데 마약으로 교도소에 몇 번 들어갔다 오시고 하면서 점점 더 나빠지고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게다가 같이 살던 일본인 계부가....” 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운다,
  “말해요, 레이나. 무슨 일인데 그러죠?”
  “계부가 저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깨를 들먹였지만 이내 냉정을 애써 찾는다.
  “아! 이 아이에게...”
  “그리곤 그 사람이 우리를 버리고 도망갔어요. 엄마는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결국 약 중독으로 돌아가시고 저는 연고가 없어 한국에도 못가고 이곳에서도 힘들고. 말이 좋아 모델이지 별 활동도 없어요. 겨우 노래로 살아가요. 간혹 원조교제도 했었구요.”
(아! 슬픈 벌레 먹은 선악과)

  갑자기 레이나는 “오 사케가 노미타이 곤나요와아~(술이 먹고 싶네. 오늘 밤엔~)...” 노래를 흥얼거린다.
  “불쌍한 우리 엄마, 불쌍한 레이나” 연거푸 폭음을 하더니 테이블에 머리를 푹 수그린다.
  “갑시다. 집으로. 너무 취했어요.”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 레이나는 이세림의 팔을 붙잡고는 “센세, 가지 말아요. 오늘 나하고 같이 있어줘요. 난 아무도 없어요.” 하며 눈물을 흘린다.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도 많이 취했다. 객지에 와서 일도 분주했지만 피곤도 한데다 이국땅에서 마신 술이 더 그를 취하게 했다.
  간신히 침대에 눕히고 거실에 나와 스카치 몇 잔을 더 걸쳤다. 얼마를 잤을까? 무언가 가슴을 누르는 답답함에 눈을 떠보니 레이나가 이세림의 몸에 포개져왔다. 순간 망설임도 있었지만 그만 그녀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난 이세림은 레이나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거실 벽 여기저기를 무심코 둘러보다가 침실 옆에 있는 조그만 덴 사이즈의 방문에 ‘마사꼬の’란 팻말이 있는 것을 보았다. (마사꼬?)
  문을 비끗 밀어보았다. 열렸다. 안에 들어서자 그림과 사진 그리고 물건들이 빼곡했다. 두리번거리다 돌아서려는 데 레이나가 들어왔다. “이 방은 엄마가 아끼던 물건들을 두던 방이에요. 저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방인데 돌아가시고 나서 아직 정돈도 못하고 또 정신도 없었고 해서 이제나 저제나 정리하려고 하던 참 이었어요. 아, 저기 엄마사진이 있네요.”
  “이 그림이 엄마사진...” 잠시 말을 끊는 듯 돌아다보면서 “인데...” 하며 말을 잇다가 그림 속의 엄마 옆에 있는 남자와 이세림을 번갈아보더니,
  “헌데? 여기 이 사람은... 센세? 왜, 여기에...?”
순간 이세림도 (아니? 이 마사꼬가 그 나정자?)
그의 머리가 핑 돌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레이나는 거듭 묻는다. “이 사람이 아빠? 그럼 센세가 울 아...빠? 아니야, 아니야“
고개를 내 저으며 주저앉아 꺼억 꺼억 운다.
이세림도 어찌 할 바를 몰라 쩔쩔 매다가 먼저 휙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을 떠 보니 병실 안이었다. 팔에 링거를 꽂고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간호사를 불러 물었다.
  “제가 어떻게 여기에. 그리고 지금 몇 시입니까?”
  “술에 너무 취해 길에 쓰러져 있는 걸 경찰이 이리로 모셔왔습니다. 지금 새벽 5시입니다.” 혼미한 중에도 퍼뜩 생각나는 일이 있어 말리는 간호사를 밀치고 부랴부랴 바늘을 빼고는 레이나에게로 달려갔다. 현관을 열고 방에 들어선 순간 온 몸이 굳어짐을 느꼈다. 침대에는 레이나의 몸이 반듯이 누워있었다. 옆에는 약병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고.
(아,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급히 전화기를 잡았다. 앰뷸런스 사이렌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고 달려간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너희가 죽으리라’하시던 그 말씀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려왔다.

  한국으로 돌아 온 이세림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거의 몇 달을 매일 폐인이다시피 술과 약으로 지샜다. 그리곤 그는 ‘애절양(哀切陽)’을 기억해냈다. 조선시대에 갓 태어난 아이에게조차 군포를 부과하여 그 값으로 하나밖에 없는 전 재산인 소를 차출해가자 그만 ‘이놈의 남근 때문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탄식하며 스스로 자신의 양물을 잘랐다는 소문에 정약용이 지었다는 슬픈 서민의 노래 ‘애절양’.
헌데 나는 이놈의 양물 때문에 내 딸을 범하고 패륜을 저질렀으니 이놈이 웬수로다!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자정이 훨씬 넘어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어귀에서 택시에서 내린 이세림은 비 맞는 것도 아랑곳없이 술이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언덕위에 있는 집을 향해 걸었다. 간신히 집에 도착한 그는 문에 열쇠를 못 맞춰 몇 번이고 떨어뜨리다가 겨우 열고 들어갔다.
  옷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집안 바닥을 온통 적시는 것도 모르고 벌겋게 충혈된 눈에 일그러진 얼굴로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더니 이로 병마개를 따내곤 그대로 서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참을 머리를 쥐어짜고 가슴을 치며 흐느끼더니 무언가 비장한 각오를 한 듯 뒷방으로 가 선반에서 해군 때부터 갖고 있던 등산장비 안에서 작고 날카로운 칼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하의를 벗어 내린 다음 남성에 대고 큰 숨을 한번 몰아쉬고는 그대로 그었다.
천둥번개가 우르릉 꽝! 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외마디가 흘러 나왔다.
  ‘으윽-!’
비명소리와 함께 피범벅이 된 손으로 전화 수화기를 움켜잡았다.
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난 그는 한 번 신음을 하고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곤 어지럽게 꿈과 생시를 오락가락했다.

  병원 수술실에서 마취로부터 간신히 깨어난 이세림은 숨이 막혔다. (레이나는 그 후 어찌된 것인가?)
  그리고 한 달 만에 퇴원한 그는 다시 거의 매일을 독주로 날을 지새웠다. 그리곤 지병이었던 고혈압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더니 간병변이 악화되어 시한부를 선고받자 아산으로 내려가기를 원했다.
  그 곳 요양원에서 한 달쯤 견딘 그는 공세리 성당의 신부에게 종부성사를 받고 싶다고 청했다. 본당신부가 출타중이어서 마침 프랑스에서 안식년 손님 신부로 와 있던 세베리아노 신부가 요청에 응했다.

  깨끗이 정리된 조그만 방 커튼사이로 드는 햇빛을 향해 누워있는 이세림에게 다가간 신부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어깨에 영대를 걸치고는 잠시 기도를 올린 뒤 조용히 그를 바라본다.
  “신 세베리아노 신부입니다. 고해하시겠습니까?” (세베리아노?)
  “예에, 신-부-니임.”
  “성부와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알고 저지른 죄, 모르고 저지른 죄 모두를 고하십시오.”
이세림은 지난날들의 일들에 참회를 한다.
  “저는 사람으로서 못할 짓을 저질렀습니다. 나의 딸을 죽였습니다.”
깊이 흐느낀다. 말을 잇지 못한다. 멀리서 성당 종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전 또 다른 큰 죄도 지었습니다.” 또 잠시 말을 잃는다.
  “말씀하십시오.” 신부는 온화한 말로 다독여 준다.
  “하느님의 딸이 되려는 한 여인의 꿈을 짓밟았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 죄를 빌고 싶습니다.”
  “주님께 용서를 비시고 고통에서 벗어나십시오.”
  “이 모든 대죄들은 감히 사함 받을 수 없겠죠.”
  “주님께서는 모든 이들을 용서하십니다.”

  별안간 이세림은 신부의 손을 꼭 잡더니 “신부님, 저의 원래 속명으로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내 원래 이름은 이만석입니다. 이 세베리아노”
  (?...)
잠시 신 신부가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인다.
그리고는 목이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조용히 묻는다.
  “그럼 혹시 신희애씨를 아십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이마에 가슴에 성호를 긋는다.
(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제 어머니이십니다.” 신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가 왜 입버릇처럼 이 성당에서 안식년을 지내야 한다고 간절히 바라셨는지를 이제야 알았다.
  “제가 아들 신래원입니다.”
이세림은 갑자기 현기증이 느꼈다.
  “그럼 어머니는?”
  “지금 프랑스에 계십니다.”
  (신희애 그리고 신래원, 나의 아들)
  (아! 생명나무!)

  신부는 흐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종부성사의식을 행했다. 성체를 영해주고 그의 눈과 귀, 콧구멍과 입술, 그리고 손과 발에 성유를 가지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이 성유를 바름으로써 주(主)는 자비를 베푸사, 보고 듣고 행함으로써 범죄한 바를 사하소서.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아멘”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아버지!.....”하고 불러보았다.
이세림은 아들의 손을 꼭 잡더니 “네 누이동생 레이나 혜린이를 부탁한다.” 하고 눈을 감는다.
  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띤 채.

  신 신부와 나혜린 둘이는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사제관으로 향해 내려온다.
  “아버님을 이곳에 모시고난 후 나는 다시 프랑스로 갔다가 교황청에 청원해서 이곳의 상주신부로 임명받았다. 그 후 널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다시 저를 찾아오셨을 때 마주치기 싫어서 도망갔었어요. 오랫동안 방황했었지요. 다행히 섀퍼롱 신부님의 도움으로 재활원과 교도사목 일을 해오면서 제자신도 치유를 받았어요. 어느 날 엄마 납골묘에 갔더니 메모쪽지가 다섯 장이나 붙어있더군요. 오봉(お盆)절에 제가 혹시 올까 해서 매년 한 번씩 와서 붙여 놓았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오라버니가 보낸 사람이었어요.”
  신 신부가 한 손으로 혜린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는 보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행복한 미소를. 그리고 그 분이 얼마나 너를 가슴에 품고 사셨는지도 안다.”
  “저도 아버지를 그리워했어요, 오라버니.”
  나혜린의 양 뺨에 흘러내리는 두 줄기의 뜨거운 눈물을 조심스럽데 닦아주는 신부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가 한 방울 뚝 떨어졌다.

  멀리서 뎅그렁~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Ave Verum Corpus(거룩한 성체) 성가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끝)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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