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2012.05.26 01:10

김학천 조회 수:501 추천:100

  아주 어렸을 때 과자나 초콜릿 한 통이 생기면 모양이 예쁘던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끼느라 남겨놓고 못생기고 마음에 안 드는 것부터 골라 먹다가 마지막에 남은 것을 먹고는 아쉬워하던 기억이 난다.
  그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그런지 좋은 옷이 생기면 아껴두다가는 시간이 흘러 유행도 지나고 낡아져 좋은 것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속상해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람 사는 게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모든 일이 고르기로 시작하는 매순간 선택의 연속이 아닌가 한다. 영화 ‘포리스트 검프’에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얘기해 준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 속의 초콜릿과 같다. 이 많은 초콜릿 중에서 어느 것이 걸릴지 모르는 것처럼 인생도 어떻게 펼쳐 나갈 지 모른단다.’
  어떤 것부터 고르는 가도 쉽지 않지만 어떤 것을 골랐느냐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래서 프루스트는 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이렇게 읊는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가는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를 잘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어서 자신의 선택으로든지 아니면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냥 이끌려져 가든지 간에 결과는 항상 모자란 듯하고 잘못된 듯하다고 느끼면서 살아간다. 지나고 보면 그렇게도 잘 보이는 것을.
  40대 중반의 크리스틴은 남편이 세상을 뜨고 혼자가 되자 짐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아주 오래된 수첩 하나를 발견한다. 젊었을 적에 그녀와 사랑을 속삭였던 무도회 파트너들의 이름이 적힌 것을 보고 문득 그들의 삶에 궁금해진 그녀는 그들을 만나보고 싶은 충동에 여행을 떠난다.
  처음 찾아간 남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두 번째 찾아간 피에르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클럽의 사장이었는데 우연찮게도 찾아간 바로 그날 경찰에 체포된다. 젊어서 그녀에게 베르레느의 시를 읊어주던 문학 청년이었던 그가 범죄소굴 암흑가의 보스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의사가 되겠다던 또 다른 미래의 의학도 청년은 불법 임신중절로 먹고사는 불행한 낙오자가 되어있었다. 젊은 날의 꿈은 깨지고 현실의 어두움과 허무함밖에 돌아 온 것이 없는 여행에서 그녀는 환멸을 느낀다.
  아주 오래 전의 영화 ‘무도회의 수첩’ 이야기다. 야망과 희망이 전부였던 젊은 날의 그 모든 정열들이 불의와의 타협과 타락으로 누추해진 모습들에서 세월의 잔인함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현실의 비참한 어두운 구석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추억이 이끌어 주는 삶이 결코 무의미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삶은 희망적이다. 왜냐하면 젊어서 오직 패기와 용기만으로 세상을 부셔버릴 것 같던 그 많은 이야기들이 그저 공론에 그친 삶도 있겠으나 그 꿈을 이룬 삶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도전을 요구하므로 그 내용은 같아도 어떻게 포장하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과 열 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첫날에 가장 예쁜 사과를 먼저 골라 먹고 다음날에 나머지 중에서 가장 예쁜 사과를 먹고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렇게 하면 열흘동안 매일 예쁜 사과만을 먹은 것이 된다. 그렇지만 첫날에 가장 못난 놈을 먹고 둘째 날에 그 중 못난 놈을 먹고 하면 열흘 동안 줄곧 못난 놈만 먹은 것과 같다.
  결국 삶은 전적으로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해를 다시 시작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아껴두지 말고 예쁜 사과부터 먼저 먹어 불까한다.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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