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야기- 제4막

2011.12.09 02:19

김학천 조회 수:556 추천:187

“저 작은 체구로 일 할 수 있을까?” “무슨 소리야, 그들은 만리장성을 쌓은 사람들이 아닌가!" 200여 년 전 미국인들 눈에 비쳤던 중국인 쿨리(노무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국에서 정치적 혼란이 생기자 미국은 자국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산 파불로’호를 파견한다. 강어귀에 머무르면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동안 그 거대한 배의 기관실 엔진이 고장이 생겼다. 비록 미국 배이긴 해도 그 속의 노동자는 대다수가 중국 쿨리 들이다.
미군 선원들은 젊은 쿨리 하나를 불러 거대한 엔진 밑으로 들어가 고치게 하지만 그만 그 기계가 그 젊은이의 가슴으로 내려앉는 바람에 깔려 죽는다. ‘산 파블로’란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다.
중국인의 미국 이민 역사가 이미 200여 년이 훨씬 넘으면서 수많은 중국인들이 이렇게 여기저기 일터에서 미국의 산업현장에 공헌하고 죽어갔다. 그 중의 하나가 대륙 간 횡단철도였는데 동부의 기존 철도를 연장하여 동쪽은 네브래스카의 오마하에서 시작하고 서부에서는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에서 출발한 철도연결건설이 유타 주에서 만났다.
그리곤 이 만리장정의 긴 거리를 이은 감격의 기쁨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에 골든 스파이크를 박았는데 이 금 못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마지막 못,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했듯이 우리나라도 이렇게 하나로 이어지길 바란다.’라고. (이 금못은 이 철도사업으로 부자가 된 LeLand Standford의 대학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그들 말대로 만리장성을 쌓은 작은 체구의 중국 노무자들의 손을 빌어 이룩한 동서를 가로지르는 대역사의 대륙 간 횡단열차는 그 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오늘날의 미국을 만드는데 막대한 기여를 했다. 마치 만리장성에 수많은 사람이 죽고 그 시체를 성벽의 돌과 돌 사이에 끼워 넣어 묻혔듯이 그 들의 후손들은 이국 다른 땅에서 또 그렇게 한 것이다.
최초의 중국인들은 광동 성을 떠나 하와이에 와서 노예 같은 생활을 하고 다시 금산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와서 이러한 혹독한 시련을 겪은 지 30여 년 후 ‘중국인 이민 금지법’으로 차별 배제되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하와이에서 그 대안으로 일본인들이 영입되기 시작되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하와이가 미국에 강제 합병되면서 일본인들은 주로 미국서부를 통해 본토에 이주하기 시작했다. 허나 일본 역시 2차 세계대전을 통한 그들이 포로에 대한 잔악함과(특히 필리핀에서의 죽음의 행진: Death March of Bataan) 진주만 공격 등으로 인해 점차 미국 내에서 그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게 되어 결국 9개 지역으로 나뉘어 강제 이주되어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후에 공식사과와 함께 보상이 치러지긴 했지만 미국에서의 이민정책은 이렇듯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어려운 시련의 시간을 거쳐 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같은 이민인데도 시대상황에 따라, 나라와 민족과 시기에 따라 차별적, 우선적 처우와 위치가 달라지기도 하는 것을 볼 때 꼭 그것만은 아닌 듯싶다.
이민의 관문조차 차별화 되어있었다는 사실에 어두운 그림자는 일찍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꿈을 안고 찾아와 내딛는 첫 발의 순간부터 차이가 났으니 말이다. 유럽인의 경우는 대부분 대서양을 바라보는 뉴욕의 엘리스 아일랜드를 통해 들어왔다. (대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 코미디언 밥 호프 등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꿈을 키우는 이민의 관문이다.
그러나 주로 아시안이 들어온 관문은 태평양을 내다보는 아름답기로 이름난 샌프란시스코, 그것도 천사의 이름을 딴 엔젤 아일랜드였는데 희망의 관문이라기보다는 이민자를 검사하고 억류하던 통과소였다. 엘리스와는 다른 성격의 관문이었다.
대서양을 건너 엘리스(Ellis Island)를 거쳐 들어왔던 유럽인들 그리고 태평양을 거쳐 앤젤(Angel Island) 을 거쳐 들어왔던 동양인들, 시작부터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닐는지.
미국은 거의 100%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미국의 이민은 우리가 잘 아는 소위 ‘필그림’이라는 청교도들이 영국국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네덜란드를 경유한 플리머스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영국 제임스1세에 의해 파견된 개척단의 제임스타운을 중심으로 한 버지니아 식민지역이 있었고, 매사추세츠를 중심으로 한 뉴잉글랜드 지역, 그리고 퀘이커 교도들에 의한 펜실베이니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 등으로 여러 곳에서 거의 동시대에 시작하여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정착하게 된 흑인들, 아일랜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나 헝가리의 유럽 계들, 그리고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안들, 그 외에도 멕시코, 콜롬비아 등의 남미계 이민자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다민족 다문화로 잘 비벼진 비빔밥나라이다.
그러고 보면 아마도3억 미국인구 중에서 이민이나 이민 후손이 아닌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먼저 온 이민자와 나중 온 이민자간에 빚어지는 마찰과 가진 자와 아직 못 가진 자들 간의 치열한 싸움, 거기에 텃세의 기운까지 겹쳐져 오늘도 사그라지질 줄 모르는 투쟁들이 정치 사회적으로 곪은 상처를 안고 있다.
아마도 지금이 예전이었다면 911테러나 타국 출신의 총기난사 같은 끔찍한 사건들에 이민 배제정책이나 추방 내지는 수용소 문제로 결론 나지 않았으리라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공동의 선을 향한 멈추지 않는 용감한 도전이 있기에 아직도 우리는 자유로운 생을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본다. 흔히들 미국은 200여 년밖에 안 되는 짧은 역사의 신생국가로 말한다. 허나 사실은 따지고 보면 그렇지가 않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을 들여다보면 이미 왕정이 쇠락하고 현대 민주주의 형태를 갖춘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체제정부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 아니겠는가.
이들은 초기부터 모든 행정체계 및 문서를 잘 정비보관하고 있으면서 부끄러운 과거사 또한 감추지 않고 검토 평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으니 잘잘못이야 어쨌든 노고에 박수를 보낼 만 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그래도 이 나라가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진리와 양심에 어긋나는 잘못임을 깨닫고 급회전하여 신성(神性)을 닮으려는 고매한 정신으로 만민 평등과 자유, 사랑과 평화의 이념을 위해 숭고한 노력을 해오고 있는 그 정신이 가상하다는 뜻이다.
이는 로버트 케네디가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공산주의와 달리 계속적으로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라고 한 말이 이를 시사하고 있다고 본다. 황금의 못에 새겨있듯이 ‘대서양을 건너 온 이민자들과 태평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이 하나’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계속) (아크로, 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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