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야기 - 제 9막 (황금두뇌 연준)

2012.01.16 01:29

김학천 조회 수:514 추천:147

  ‘황금두뇌를 가진 사나이’란 이야기가 있었다. 무분별하게 필요할 때마다 머릿속의 금을 파내 쓰던 그는 급기야 마지막 남은 금 조각을 파내고 피를 흘리고 쓰러진다는 알퐁스 도데의 단편줄거리다. 그 황금두뇌가 보는 사람에 따라 자존심으로 또는 시간으로 혹은 금전으로 볼 수 있겠으나 이 모두가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하고 탐욕에서 끝나는 이야기이다. 그 중의 하나가 그것도 모자라 아예 인조금을 만들겠다고 덤벼든 철학자의 돌이었다.
   중세 사람들은 이 마법의 돌을 발견만 하면 금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엄청난 세월과 정력을 투자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금은 노파도 젊은 여인으로 만들고 창녀도 귀부인으로 만든다.’고 했으니 영생불사는 못할망정 부의 극치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럼에도 왕의 명령으로도, 수도승들의 집념으로도, 도사라 자칭하는 그 어느 누구도 이를 발견하거나 인조금을 만들어낸 사람은 없었다. 성과가 있다면 단지 화학 발전에 기여했을 뿐이라고나 할까?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연금술은 돌이 아닌 종이에서 나왔다. 무엇을 사던 그 값을 쳐주는 종이조각 화폐 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미국의 달러가 있다.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횡재였다. 엄청남 양의 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자 영국과 네덜란드가 군침을 흘리고는 스페인의 함대를 습격하여 금들을 탈취해 갔다(물론 주로 해적들이 한일들이지만). 그 당시 금의 소유는 바로 국가의 부를 상징하던 시절이어서 금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해서 뺏던지 아니면 스페인에 상품을 팔아 그 대금으로 이를 얻는 방법 밖에 없었다.
   신천지로부터 더 많은 양의 금이 스페인으로 들어올수록 이에 따라 더 많은 전쟁이 벌어지고, 또 더 많은 교역이 이루어져서 그 금들은 다시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 흘러 들어가다 보니 이제 금은 부(富)를 보장해주는 효자가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물가의 상승을 야기해서 경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한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화폐와 상품의 경제관계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웃기는 것은 이 같은 일이 1차 대전 후 미국에서도 일어났다는 것이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 물자를 팔고 그 대금을 금으로 받았다. 금본위 시대였으므로 돈은 당연히 더 많이 찍어내 지는데 전쟁으로 일반경제는 침체되니 화폐양은 많아지고 생산은 줄어들어 달러가 상품의 뒤를 쫓아가는 꼴이 되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대공황의 쓴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쓰라린 어려움을 실감한 미국은 경제의 황금두뇌 FRB(연방준비은행)이 통제나 간섭 없이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독립이 필요하다고 절감하고 재무장관과 감사원장을 그 구조에서 빼버림으로 연방정부로부터 분리시켰다.
   이 독립된 연준이 세계를 쥐었다 폈다 하는 바로 미국의 역사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미국도 애초부터 이러한 마법의 종이연금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맨해튼을 인디언에게서 단돈 24불의 가치에 살 때만해도 그 당시 보증되는 화폐가 없었으므로 염주나 옷가지, 조개껍질 등으로 지불했다. 물물교환인 셈이다. 기실 화폐가 유럽에 있었으니 미국으로 온 이주자들은 알고 있었겠지만 환불보증이나 중앙정부의 은행제도가 없던 판국에 효용가치가 있을 리가 만무했을 거다.
   그랬던 미국이 독립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대륙의회가 발행한 최초의 식민지유가증권 (콘티넨털 통화)을 시작으로 한 미국 지폐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전쟁 중에는 지폐의 효용가치도 없고 더욱이 이를 관장하는 은행도 없는 터라 전쟁 물자에 대한 대금상환은 오직 식민지 정부의 후에 갚겠다는 약속뿐이었다.
   일종의 신용보증을 전제로 한 이러한 화폐의 개념이 유럽의 금본위제와 상충되면서 영국은 금본위제 와해 위기를 의식하여 식민지 정부의 화폐발행을 금지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서 이 화폐지불은 식민지인들 자체 내 세금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다 보니 더욱 악화 되가는 경제상황이 독립전쟁으로 가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전쟁에 이겼다. 전쟁이 끝나자 해밀턴 재무장관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최초의 중앙은행의 설립을 주창하였다. 허나 토머스 제퍼슨이 헌법상 그 권한을 의회에 부여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에 해밀턴은 헌법에 ‘필요하고 적절한 모든 권한이 있다’는 조항을 들어 이에 반박하고 밀어붙여 결국 1791년 제일은행 설립은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은행가들의 횡포로 경제는 물론 정치까지 좌지우지되고 이를 놔두고 볼 수 없던 민중과 뜻있는 정책자들이 똘똘 뭉치더니 제일은행은 막을 내리게 된다.
   1816년에 제2은행이 다시 문을 열지만 같은 과정이 되풀이되는 결과에 결국 잭슨 대통령까지 나서서 폐쇄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그는 암살위기까지 가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후 칠 팔십 년간 정부통제의 은행이냐 국민통제의 은행이냐는 보수와 진보의 격론 속에서 많은 단계와 변화를 거치면서 드디어 1913년 윌슨 대통령 때 제3의 중앙은행이 탄생한다. 이것이 하나가 아닌 12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이사회에서 관장하는 연방 준비은행제도(FRB)인 것이다.
   이 제도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이 있음을 간과 할 수 없다. 그 첫째가 미국이 애당초 중앙은행이 의회와 독립해야 하는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과 연결하여 처음으로 이해한 나라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이든 권력이 한군데로 집중되는 것을 싫어하는 미국인의 특성이다. 금권의 집중도 꺼려하고, 금권의 분산도 경계하는 미국인의 특성으로 세워진 연방 중앙은행은 의회로부터 독립적으로 세워졌다. 삼권분립만으로는 국민의 전적인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돈이 정치와 결탁하면 개인의 자유가 마비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중앙은행이 독립된 나라들이 대개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들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독립 전부터 금본위는 신용을 통제하는 핵심요소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던 미국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된다. 그리곤 시장공개조작을 이용함으로써 신용획득이 더 중요함을 증명해 보인다.
   이후 대공황을 거치면서 은행은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으로 분리되고, 연방예금보험공사 (FDIC)도 생겨난다. 그리곤 무엇보다 1900년에 시작했다가 1919년에 부활한 금본위 제도와도 결별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연준 의장 마틴은 그 동안 관행적으로 같은 편을 들어주던 재무부의 재정정책지지에 반기를 들면서 연준은 공개시장조작에서도 독립하게 된다.
   70년대 초 원유파동의 경제위기가 닥쳐왔다. 이 때 연준 의장에 폴 볼커가 등장했다. 그가 고금리를 채택함으로써 미국으로 흘러 들어온 국외 자본의 유입이 금융을 튼튼하게는 했지만 국내경제는 타격이 켰다. 달러가 비싸지니 해외에서 물건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회사는 파산되고 노조는 와해되고 볼커 의장을 살해하겠다는 협박까지 나타났으나 그는 눈 하나 꿈적하지 않았다. 고금리에 대한 반대는 이제 일반인들에서부터 대통령까지 이어졌고 급기야는 12개의 연준에서 조차 고금리인하의 요구가 나왔으나 이사회에서 거절했다.  
   레이건도 그의 교체를 언급했으나 허사였다. 그러나 후임자였던 그린스펀은 그의 연임을 지지하였다. 드디어 그의 신념과 고집으로 험난한 산고를 치른 끝에 미국은 강력한 경제력을 재탄생 시킬 수 있었다. 볼커는 키가2미터라는데 그 키 값을 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때의 고금리 때문에 새로운 현상이 나왔으니 그것이 인수합병이란 것이었고 그 틈새에 생겨난 것이 정크본드였다. 한 예로 이것으로 돈을 엄청나게 번 밀킨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연봉은 그 당시 6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루묵이었다. 감옥으로 갔기 때문이다.
   정크본드 후엔 미래를 대상으로 하는 소위 폰지게임의 막차를 탄 수많은 사람들이 허구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다. 재미난 에피소드로는 이미 오래전 영국의 대 물리학자 뉴턴 경도 이 게임의 희생자로 20,000파운드를 잃고는 한 말이 ‘물체의 움직임은 알아도 사람의 마음은 읽기가 어렵다.’ 고 했다나 뭐라나.
   아무튼 1971년 닉슨이 금과 달러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함으로써 이제 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달러가 그 자리를 들어서서는 마법의 연금술로 막강한 세계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마법의 종이 달러가 오늘날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근자에 새 은행규제법이 상원을 통과했다는데 그 이름 가리켜 전 연준 의장 ‘볼커 룰’이란다.
   이제 황금두뇌를 가진 이 나라가 연금술까지 터득해서 마법을 부려보려다가 피투성이가 되어가고 있는 모양인데 과연 쓰러지는 신세가 되려는지 아니면 다시 벌떡 일어나 잘 걸을 수 있을는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 같다.
   일찍이 철학자 존 로크가 ‘금은 생활을 쾌적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富)를 의미한다.’고 한 말에만 귀를 솔깃하지 말고 리술레 추기경이 ‘금은 폭군이다.’라고 한 말에도 귀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계속) (아크로 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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