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내 아내

2012.01.25 01:27

김학천 조회 수:517 추천:130

  출강하는 USC 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아직도 해가 지지 않은 여름 저녁 병원건물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옆문을 찾는 이유는 그곳을 나서면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오솔길 닮은 좁은 길 양 쪽으로 하늘을 덮을만한 커다란 나무들이 둘러서 있고 길 한 켠으로는 돌 벤치가 서너 개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 하루의 피로가 씻기는 듯하다. 길지 않은 그 길 끝을 돌아서면 넓게 탁 트인 잔디밭이 보여 숲을 지나 평원에 나오는 느낌이다.
  그날도 예전처럼 그곳을 지나는데 잔디밭건너 큰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혼자 담배연기를 내뿜는 팔순의 노교수가 눈에 띄었다. 뒷모습만 보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층 진료실의 일본인 ‘할아버지교수’였다. 학생들은 그렇게 불렀다.
  평생 담배를 피어온 그는 간혹 이렇게 밖에 나와 애연을 하고 들어오곤 했지만 언제나 그가 즐기는 자리는 막 지나온 작은 숲속의 둘째 돌 벤치였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꽤 떨어진 나무 밑에 서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까하다가 다가가 인사를 했다. ‘하이, 그랜 닥. 고 겡끼(안녕)?’ 가끔은 존칭을 붙이지 않고 편하게 인사말을 하기도한 사이라 일부러 더 친근함을 보였다. 섬칫 놀란 듯 돌아선다. 언제나 커다란 뿔테의 안경을 걸친 얼굴에선 미소를 머금은 듯 부드러움이 묻어나오는 그였지만 그날만큼은 무언가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에 눈가엔 촉촉한 기미가 보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면서 무슨 이야기를 꺼낼까하다가 그가 기대고 서 있는 나무 한쪽의 작은 가지가 부러진 것에 얼마 전 있었던 폭우가 생각나서, ‘요새는 날씨도 미쳐가나 봅니다. 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말예요.’했다. 겨우 입을 뗀 그도, ‘그래요. 세계가 날씨로 몸살을 겪는군요.’ 하며 대꾸했다. 그러다 이야기는 얼마 전 일어난 일본의 쓰나미 재난과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이어졌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어요. 혹 이번일로 그곳 지인들이나 친척들에게 무슨 피해는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던 그는 ‘마음이 아픕니다.’ 하고는 다시 말문을 닫는다.
  우리 둘이는 나무 옆 오래된 나무의자에 앉았다. 담배를 몇 모금 더 피던 그는 진한 담배연기와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마음을 가다듬은 듯 ‘그러고 보니 65년이나 되었군요.’ 하며 지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미국서 태어난 그가 학부를 마치고 치과대학에 입학하자 어느 날 부모는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결혼 할 본국의 신붓감을 선보이는 일종의 사진 중매였다. 아름답고 진실해 보이는 여인이 그 속에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외동아들인 그는 부모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아는 터라 아무 거부감 없이 이내 받아들였다.    
  그 당시는 미국과 일본은 전쟁 중이어서 이곳에 사는 재미 일본들에겐 사회적 비난과 차별을 감내해야하는 그런 시련의 시기였다. 숨을 죽이고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하는 상황과 내성적이어서 외롭던 그에게 비록 사진이기는 하나 왠지 그 여인이 낯설지 않고 실물처럼 다가왔고 호감이 갔다.
  이렇게 시작된 관계는 편지를 나누고 보고 싶을 땐 사진을 바라보면서 사랑을 키워갔다. 헌데 시간이 감에 따라 서로의 신뢰는 더욱 두터워지고 이제 결혼을 위해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내일을 꿈꾸던 이들에게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미국의 원폭투하로 일본이 항복을 하고 전쟁은 끝났으나 이는 두 사람에게 돌이킬 수없는 비극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토록 혼인을 종용하던 부모가 이번에는 거꾸로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원폭피해로 일어날 수 있는 후유증 때문에 자식을 못 갖거나 아니면 정상인으로 대를 이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결혼을 극구 반대하였던 것이다. 부모는 사랑도 시간이 가면 자연 잊혀지고 다른 처자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일이라며 설득하려했지만 그는 도대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반론을 하고 애걸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완강한 부모를 이길 수는 없었고 급기야 그 기미를 알아차린 신부 집에서도 딸을 다른 곳으로 강제 시집을 보내버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말 사랑이 ‘마음의 논리는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굴곡’이라고 한 파스칼의 말처럼 간혹 불붙은 감정은 영원할 것처럼 이성은 마비되지만 결국엔 그대로 시간과 함께 사그라지는 그런 것일는지.
  실의와 허망감에 술과 담배에 빠져 지내면서 그 연인을 잊을 수 없어하던 그는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여인이 결혼 직전 보내온 글 속에는 ‘당신의 이름을 평생 지우지 않고 살겠습니다.’ 라고 씌어있었다. 그날부터 그녀를 마음에 아내로 품고 살아온 것이 오늘에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아오게 되었다.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은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때 시작한 이 담배도 아직까지 피웁니다.’ 아내도 자식도 없이 이제 삶을 정리해야하는 나이에 회한이 왜 없겠는가 짐작이 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난 한 번도 내 옆자리가 비어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녀는 언제나 나와 함께해왔어요. 옆 빈자리의 아내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올 수 있도록 언제나 나를 격려하고 보듬어주고 아껴주었어요. 우린 한 번도 싸워 본적도 없었지만 언제나 화를 내는 건 나였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만 보면서 기다려 주었지요.’
  문득 피그말리온이 떠올랐다. ‘갈라테이아’라 이름붙인 여인상을 조각해 놓고 매일 같이 성심으로 보살피고 그리워하던 피그말리온의 사랑. 그의 정성에 감복한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 조각을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그 아름다운 신화이야기. 나는 어쩐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배필이었던 그녀가 후에 괴테가 ‘엘리제’라 불렀다는 갈라테이아 같았다.
  ‘그 후 그 분은 어찌되었나요?’
‘다른 사람과 혼인한 내 아내는 지금 까지 아무 탈 없이 아이 둘을 낳고 잘 살았어요. 헌데  얼마 전 남편이 세상을 뜨고 그와 같이 하던 농장을 돌보고 있는데 나이에도 벅차고 해서 실버타운으로 옮겨 가려고 한다더군요.’ 그의 사정을 잘 아는 사촌이 그 동안 간간이 소식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담배를 다 피고 일어서며 그는 ‘이제 저 재난의 씨로 나와 유사한 또 다른 불행의 이야기들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해요.’ 하고 자리를 떴다.
  젊어서의 사랑은 각자의 더 나은 반려자를 찾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실상 사랑이란 삶을 살아가는 여정에 필요한 평생 마르지 않는 에너지일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원이 없이 험난한 길을 찾아 떠나는 우리 삶의 여정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마치 그가 마음속에서 백년해로해 온 빈자리 아내와의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삶을 영위해 온 것처럼 말이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리골레토의 아리아 ‘사랑하는 이여(Parmi veder le lagrime)'가 울려나온다. (미주문학, 겨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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