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2012.02.01 06:28

김학천 조회 수:513 추천:136

  한동안 이상기온으로 생명을 잃는 일까지 생기던 무더운 날씨가 이제 한풀 꺾여 제법 선선해졌다. 오만한 인간의 잘못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의 심술인지는 모르지만 날씨는 아직도 우리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아주 까마득한 옛날 세상의 동쪽 끝에 아주 높은 뽕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나무 그늘에는 천제의 아들 열 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다리가 셋 달린 황금 새였다. 하루에 한 놈씩 번갈아 가며 하늘에 뜨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해라 불렀다.
  수 억 년을 이렇게 하다보니 지루하기도 하여 그랬는지 이들의 장난기가 발동하여 열 명이 한꺼번에 하늘에 날아올랐다. 난리가 난 것이다. 하늘과 땅이 펄펄 끓고 농작물은 타 죽고 괴물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지상의 성왕인 요임금께서 하늘에 빌고 빌었더니 천제가 듣고 천신 예에게 특명을 내려 요임금을 도우라고 했다. 신예는 자기 아내 상아와 함께 지상에 내려와 괴물들을 죽여 없애고 황금 새를 사냥하기 시작하였다.
  백발백중의 명궁 신예는 화살 하나에 황금새 해를 하나씩 맞춰 떨어뜨렸다. 요임금이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이러다 황금새를 다 죽여 버리면 지상에 해가 하나도 남아나지 않게 되고 그러면 이것은 더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생물이 어둠과 추위에서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요임금은 화살 열 개중 하나를 감춰 다행히 하나의 해가 남아 오늘날까지 우리 곁에 있게 되었다. 너무 뜨거워도 없어도 안 되는 해는 그래도 우리에겐 고마운 벗이다.
  해는 아침이 되면 연한 주황색의 색조를 띄고 자기를 알리며 동쪽바다에서 떠오른다. 그래서 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해를 본다하여 나무 목(木)에 해일(日)을 써서 동(東)이라 하였다. 해가 모습을 나타내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해를 알아보고 하루의 시작을 준비한다.
  낮이 되면서 해는 더 높이 높이 하늘로 올라가고 모든 이를 향해 정열을 불태우면서 자신의 최고를 이루는 순간에는 결코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때문에 살아가는 이들을 있음을 알고 만족한다.  
  여기에 해의 위대함이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주여, 태양은 대낮이고 그것을 가지고 당신은 우리에게 빛을 쏟아주십니다. 태양은 아름답고 커다란 광휘로서 빛납니다. 태양은 가장 높으신 당신을 닮았습니다.’라고 해를 찬미했다.
  그러던 해가 하루가 다 되어 저녁이 되면 다시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라질 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야’하고 가르치듯 미련없이 서쪽바다로 사라진다. 또 다른 내일을 약속하면서.
  이형기 시인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고 노래했듯이 지는 해의 저녁노을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조조의 아들 조식은 ‘태어나 한세상 살다가 떠나감이 아침 이슬 사라지듯 하누나!’ 하고 인생무상을 한탄하였다지만 삶은 결코 그렇게 허망하지는 않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기쁨보다는 슬픔이 많고 보람보다는 실망이 더 많을 수 있는지는 몰라도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있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아침이 있기 때문이며 아침이 아름다운 것은 밤새내 지녀왔던 고독과 적막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처음이 다시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한밤을 지내고 맞이하는 눈부신 아침이 되면 나와 모든 이를 위해 더욱 아름답게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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