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야기- 제8막 (미국의 북극성)

2011.12.27 07:36

김학천 조회 수:684 추천:154

알퐁스 도데의 별에는 여러 별 이야기가 나온다. ‘성 자크의 길’이라 부르는 은하수며 목동들에게 시계 노릇을 해주는 ‘오리온 별’ 그리고 별들의 횃불인 ‘쟝 드 밀랑’ 별들이 그것이다. 아마도 그는 성 자크를 미국국기의 50개 별에, 쟝 드 밀랑을 텍사스의 외로운 별하나에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텍사스에는 보고 싶은 노란 장미가 있어요.
그 누구도 나만큼 그녀를 그리워하는 이는 없어요.
내가 떠날 때 우는 그녀를 보고 내 마음도 찢어질 듯 했지만
다시 만난다면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거에요.
영원한 내 사랑.’
남북전쟁 때부터 유명했다는 작곡 미상의 이 군가는 특히나 텍사스 출신 병사들이 아주 좋아했다고 하는데 여기 저기 가사를 필요에 따라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이 곡과 아주 유사한 1836년 ‘산 하신토’ 전투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악보가 미국 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운 내 사랑 ‘노란 장미’는 텍사스 독립전쟁 당시에 생긴 에밀리 웨스트의 사건일화에서 출발한다. 뉴워싱턴 호텔의 흑인여급이었던 그녀는 말하자면 일종의 미인계의 주인공으로 멕시코 군사령관이었던 산타 아나를 유혹하여 텍사스 민병대군이 ‘산 하신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전해오는 이야기가 그것인데 이것이 후에 영문학자 마사 터너의 책에 소개 보급되면서 더욱 신빙성 있게 다가왔지만 아직도 그것이 우연적 사건이었는지 계획된 것인지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에밀리는 호텔주인 모건에 고용되어 온 자유인 흑인였음에도 항간에서는 모건의 노예로 잘못 알려져 일명 에밀리 모건 일화로도 알려져 있는가 하면 더욱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엘 장군과 시스라 이야기(판관기, 개신교:사사기) 와도 닮아서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사건의 발생지에는 에밀리 모건이라는 고급호텔이 지금도 샌 안토니오 알라모 사원에서 불과 10여 발자국 떨어진 곳에 높게 서 있다.
노란장미의 테마 ‘산 하신토’전투는 텍사스가 미국의 스물 여덟 번 째 주가 되기 까지 무려 여덟 번이나 정부가 바뀌어가는 역사 속에서 가장 치열했던 멕시코와의 전투이야기이다.  
‘알라모를 기억하라.’(Remember the Alamo!)
당시 텍사스는 멕시코 영토였고, 많은 이주자들이 미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옮겨와 살고 있었다. 그 중에는 미국 하원의원과 테네시 주지사를 지낸 뒤 1832년 텍사스로 이주한 샘 휴스턴도 있었다. 주로 미국백인들로 구성된 이들 이주자들이 독립을 원하면서 멕시코 정부와 갈등이 야기되고 무력 충돌이 발생하던 시기였다. 데이빗 크로켓, 짐 보위, 윌리엄 트래비스가 이끄는 200여명도 안 되는 독립군들은 샌 안토니오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원인 알라모에 집결하여 멕시코의 산타 아나 장군이 이끄는3-4000여명의 병력과 2주일을 싸웠지만 중과부족으로 패하고 전원 전사내지는 사살되었다.
그러자 이를 계기로 텍사스의 독립을 지지하던 샘 휴스턴을 총사령관으로 하여‘알라모를 기억하라’는 기치를 내세워 텍사스인이 얼마나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는지 과거를 잊지 말 것을 상기시키면서 한 달 반 동안 텍사스 민병대 병력을 재정비하여 산 하신토 전투에서 멕시코 군을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텍사스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다시1845년 텍사스가 미국의 땅이 된 후에도 텍사스 상원의원 및 주지사를 지냈다.)  
그 후 텍사스 독립군의 이 모토 ‘알라모를 기억하라’는 오늘날 제2차 세계대전의 ‘진주만을 잊지 말라’ (Remember the Pearl Harbor)로 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실 알라모에서 열세에 빠졌던 독립군들은 미국에 지원병을 청했으나 미국은 도와 주지 않았다. 결국 전원 처절하게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 홀로 투쟁하던 그들은 ‘외로운 별’이 되었고 알라모 전투에 나가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아내 사라 다슨에 의해 깃발에 그려져 오늘에 이른다.
이렇게 탄생한 ‘외로운 별’은 텍산의 자존심이 되었고 샌 안토니오에서는 그들의 정신적 성지가 되었다. 미국 어디를 가도 성조기와 주기(州旗)가 나란히 펄럭이게 마련인데 이곳에서만은 텍사스 주기만을 게양할 정도의 강한 자긍심과 반골의 기질을 보인다.
듣기만 해도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텍사스인 텍산(Texan). 그러나 텍사스인을 부르는 말은 이외에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텍시안(Texian)이다. 멕시코 원주민이 아닌 외국 이주민(미국인도 외국인이었다)들은 자기네들을 텍시안으로 불리기를 원했고 지금도 텍사스의 병합은 애초부터 불법적이고 따라서 무효라고 외치고 있다.
허긴 미국은 우세한 전쟁을 통해 조약을 맺고2000만 불도 안 되는 대금으로 멕시코의 무려1/3이나 되는 땅을 꿀꺽한 셈이었다. 그리곤 돌아다 보지도 않고 버려두었던 알라모의 독립전투를 마치 자신들의 위대했던 역사의 한 부분인양 많은 영화나 TV드라마를 만들어내어 영웅심과 애국심을 단골메뉴로 등장시키고 있다.
당시 텍사스는 미국에 합병문서에 서명하면서부터 언제고 분리되어 독립국이 되려는 의도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대신 원하면 5개 주로 분리 할 수 있는 문구를 명문화했다. 허나 ‘주의 합병이나 분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불허’가 명시되어있는 미 헌법조항(Article IV, section 3)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시도는 중단되지 않는 진행형이다.
황야 개척의 역사로 시작해서 지금은 주요 석유 생산지이자 중요한 산업 및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한 텍사스는 알래스카가 편입되기 전까지 가장 커서 그랬는지 무엇이든 큰 것을 자랑한다. Big Cities, Big Parks, Big Stakes 등 무엇이든 크며 ‘큰 것은 좋은 것이다’가 일종의 덕담 비슷하게 생각하는 관습이다 보니 허풍과 과장이 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해서 양변기도 수영장 만하다 하다고 한 허풍대로 화장실에 들어간 타 주에서 온 사람이 실수로 그 속에 빠지고 말았단다. 그리곤 급해서 하는 말이, ‘물 내리지 마세요’ 였다나? 허긴 실제로 킹 목장은 로드 아일랜드 주보다도 넓고, 또 영화 자이안트에 보면 베네딕트(록 허드슨)의 저택은 대문에서 집 현관까지 60마일을 달려야 했으니 근거 없는 허풍 만은 하지 않겠는가. 그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신부에게 말한다. ‘허니, 커피한잔 마시려면 60마일을 달려야 해, 푹 자요.’
외로운 별의 상징은 여기서만 그치지 않는다.‘Juneteenth’기념행사가 그것이다. (6월 19일의 June과 Nineteenth를 혼합해서 만든 말이다.)  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은1863년 1월 1일에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헌데 당시만 해도 소식 전달이 늦어서2년 후인1865년 6월 19일이 되어서야 북군이 텍사스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 때부터 이 기념은 계속 이어져왔지만 비공식적인 행사였다가1973년 텍사스는 모든 주 중에서 최초로 노예해방일을 주의 공식 공휴일로 지정했다. (현재 36개 주가 이 날을 기념한다.)
허지만 이날은 단순한 공휴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쟁취하고 이룩한 자유와 문화, 업적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들도 오랜 세월을 외롭게 싸움해온 전사들이다. 그래서 텍사스는 모든 외로운 싸움의 표징인지도 모른다.
그 표징이 주기에 뿐만 있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높이 높이 만들어 세웠다. 텍사스 주 청사빌딩의 천정 탑 꼭대기에는 자유의 여신상(the Goddess of Liberty)이 있다. Miss Liberty와는 다른 이 여신상이 한 손에는 검을 들고 다른 손에 바로 외로운 별 하나를 높이 쳐들고 있다.
자유를 위한 외로운 투쟁 그 속에 피어난 노란 장미, 그러나 결코 연약하지만은 않은 강하고 큰 투지를 잉태한 여인의 검과 별인 것일 게다.
그것뿐인가? 아니다. 그들의 ‘사랑스런 노란 장미’는 한군데만 머물러 있지 않다. 노란 장미라서가 아니라도 텍사스는 원래 장미로 유명해서 그 중에서도 타일러 장미가 잘 알려져 있는데 존슨 대통령 영부인이 선물 받은 ‘아파치 미인’이라는 이 타일러 장미는 지금도 백악관 장미정원에서 자라면서 자태를 자랑하고 향기를 뿜어내며 텍사스의 존재의미를 미국심장부에서 알리고 있다.
그리고 텍사스의 기(旗)를 보자. 레드, 화이트 그리고 불루, 거기에 외로운 커다란 왕 별 하나가 마치 한 부모에서 여러 자식이 뻗어나가듯 그렇게 성조기의 모체 같지 않은가.
마치 북극성을 따라 도는 북두칠성과 같이 북두오십성이 따라 가는 미국의 북극성, 외로운 별, 텍사스는 바로 미국 속의 미국으로 그 위상이나 위엄이 유아독존격하다.
의심스러우면 오늘 텍사스에 가보라. 그러면 사방천지 눈에 띄는 슬로건이 있을 것이다. ‘Don’t mess with Texas!’
거리를 깨끗이 하자는 캠페인 이지만 그들은 이렇게도 말한단다. ‘텍사스에 엉겨 붙지 마’  
텍사스, 지금도 그 자존심과 카리스마 하나만은 알아주어야 할 듯하다. (계속)
(아크로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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