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스캔들

2012.01.23 02:24

김학천 조회 수:561 추천:142

  얼마 전 지인이 보라고 손에 들려준 TV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갖고 와서는 한참이나 망설였다.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또 그놈의 스캔들. 그래도‘성균관’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끌려 살그미 보기 시작한 것이 그만 푹 빠져버렸다.
  조선시대 젊은이들의 캠퍼스 생활을 그린 ‘성균관 유생들’이란 책의 소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속에 바른 진리를 일깨워주려고 고뇌하는 스승과 이를 대하는 제자들의 대화가 아주 신선하고 또 그들과 함께 백성을 생각하고 고심하는 정조임금의 마음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주소를 돌이켜 보게 했기 때문이었다.
  아들 사도세자를 자신의 손으로 죽게 한 영조가 아비로서 비통했던 마음을 적어담은 문서를 담당했던 관헌이 주살당하고 그러한 엄청난 사실조차 모르고 천민들이 사는 반촌에서 숨어 자란 그 관헌의 여식이 오빠 신분으로 위장남장을 하고 금녀의 캠퍼스 성균관에 들어간다. 그러나 결국엔 여인이라는 것이 발각되고 그녀의 꿈은 일시에 무너지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퇴출을 종용하는 스승 정약용에게 그(그녀)는 주저 없이 묻는다.“계집에겐 관헌의 자격이 없다 하셨습니다. 헌데 스승님,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 나라 조선은 왜 이 모양일까요? 관헌의 자격을 지닌 사내들이 쭈욱 만들어 왔는데 말입니다.”       정약용은 말문이 막힌다. 그 역시 남자였기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세상의 모습을 그녀를 통해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백성은 아파하고 피를 흘려도 지배층은 편안하고 느긋할 뿐인 사회구조 그리고 자신들의 자리 지키기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지배층의 속성들을. 200여 년 전 역사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지만 오늘날 이 땅의 현실에 대한 고발이 아니고 무엇이랴.
  근자에‘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폭발적 인기를 얻었던 것 또한 다름 아닌 그 만큼 정의의 실종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디 정의뿐일까. 도덕은 어디 있으며, 또 공정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가. 해서 모든 도덕 윤리 등이 엉망으로 무너져가는 이 암울한 사회 속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기 빠듯하고, 집 한 칸 마련해 봐야 은행융자를 평생 갚아야 하는 처지이면서도 ‘내일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살아가지만 그것은 막연한 희망사항일 뿐 개미들의 일상은 버겁기만 하다. 그렇게 점점 나락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는 힘든 현실에 더욱 더 깊어가는 계급의 골에 대한 원망이 커져 터져나가는 데도 우리의 나리들은‘공정사회란 출발과 과정에 있어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라고 남의 말 하듯 한다.
  정말 그럴까? 듣기에 따라선 그럴듯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 기회를 주는 이가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금권계급이고 그들이 양분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비금권계층은 무력하기만 할 따름이다. 돈이 돈을 벌고 권력을 사고 명예도 얻는 사회, 수단이 좋은 사람, 뒷줄이 든든한 사람, 돈 있는 사람들만이 행세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법대로는 살아갈 수 없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 그러한 사회 속에서 돈이든 권력이든 뒷줄이든 그것들로 군림하는 그 지배층이 단죄되기 전에 공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해서 우린 하버드대학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 교수의‘공정사회란 마이너리티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사회’라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정약용은 다시 그(그녀)에게 대답한다.‘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不傷時憤俗非詩也). 다시 말해 제 아무리 백성의 고통을 가슴 아프게 여긴다 해도 그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이 없다면 그 관헌은 유죄다.’라고.
  그렇다. 오늘의 모든 관리들과 지배층은 모두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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