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수필로 쓴 수필론

2018.07.26 05:43

서경 조회 수:25

         
   수필이 문학이기 위해서는 허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그건 담백한 장국에 미원을 치는 소리다. 나는 수필을 문학의 변방에 보낼지언정, 장국에 미원을 칠 생각은 없다. 일본 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수필, ‘우동 한 그릇’이 나중에야 허구였다는 것을 알고, 속았다며 분해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똑 같은 내용이면 똑 같은 감동을 주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수필로서의 ‘우동 한 그릇’과 지어낸 이야기로서의 ‘우동 한 그릇’이 어떻게 다르길래 전자는 눈물바다를 이루게 하고, 후자는 “괜히 울었잖아!”하고 싱겁게 만들어 버렸을까. 여기에 수필로서의 가장 큰 매력인 사실성과 친밀성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 속의 주인공이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존임을 알 때, 독자는 훨씬 친밀감을 느낀다. 그리고 주인공의 이야기가 바로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나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수필만이 줄 수 있는 진정한 매력이요, 맛이 아닐까.      
   어떤 이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슬쩍 넣어 읽는 재미를 주는 것도 독자에 대한 서비스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라면 소설이나 동화를 써야지 굳이 수필을 쓸 이유는 없을 것같다. 그것은 넌픽션을 픽션으로 둔갑시켜버리는 어처구니없는 행위다. 어찌 보면, 수필의 허구성은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 얘기다. 그것을 두고 중견 수필가까지 나서서 이슈화시키고 있는 걸 보면 할말이 없어진다.
   비가 오지 않아도 구성상 비를 오게 하고,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가상의 장소를 설정하는 일. 없었던 일을 분위기 띄우느라 있었던 것처럼 슬쩍 각색하는 일. 이런 작은 연출을 누가 알까. 하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신이 안다. 작은 거짓은 큰 거짓을 불러온다. 수필은 수필인이 정직하기를 원한다. 순수 수필을 오염시키는 허구성은 이제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수필은 연출 사진이 아니다. 마른 나뭇잎에 물을 뿌려 놓고 비 맞은 잎인 양 꾸미는 일은 직업 사진사가 할 일이지, 사진작가가 할 일은 못된다. 카메라를 메고 직접 비 맞은 나뭇잎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 숨 쉬는 예술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수필은 하나의 사건, 하나의 사물에서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다. 소소한 이야기를 수수하게 들려줘서 수필은 오히려 매력적이다. 공중목욕탕에서의 만남처럼 편안한 마음, 벌거벗고 등을 내밀어도 미안하지 않는 마음. 이런 마음의 교통이 수필에서는 가능하다. 하기에, 상허 이태준은 그의 ‘문장 강화’에서 수필을 ‘심적 나체’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수필을 쓴다는 것은 제 마음에 창을 내는 일이다. 그것도 ‘맑은 창’을 내는 일이다. 나를 가식 없이 보여주고, 애정 어린 눈으로 너를 보는 마음. 창이 공평하듯이 수필은 공평하다. 나를 가리고 너만 보려는 이기심이 없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간에 교감을 느끼며 거기서 정을 끌어내는 게 수필의 묘미가 아닐까.
   요즘 들어 꽁트식 수필이니, 소설식 수필이니 하며 스토리 중심의 재미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수필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에 나쁜 건 아니다. 수필에 있어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간사’보다 더 흥미로운 소재가 있을까. 그러나 여기에도 유혹의 손길은 있다. 일인칭 단편 소설이 되거나 기교 중심의 글이 되기 쉽다.
   언제까지 시대의 조류에 흔들리며 살 것인가. 올곧은 요리사는 제 손끝 맛으로 손님을 불러들이지, 손님 입에 손끝 맛을 맞추는 법이 없다. 설령 손님을 잃더라도 그는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손님이란 하늘 아래 몰려다니는 구름떼일 뿐이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게 구름의 생리다. 이런 구름의 생리에 어떻게 제 소중한 인생을 맡길 수 있겠는가.

   요란스런 광고를 하지 않아도 요리 맛이 좋아,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멀리서도 찾아오는 손님. 그런 단골손님들을 위해서 정성을 기울이고, 기술 계발을 하여 새로운 비법을 터득하는 일. 그것만이 올곧은 요리사가 할 일이다. 명성은 그 이후에 주어지는 보너스일 뿐, 찾아 나선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훌륭한 지휘자도 마찬가지다. 너도 나도 지휘봉을 들고 지휘를 한다 해서, 덩달아 지휘봉을 잡는 일이 없다. 미세한 손끝의 떨림을, 무딘 지휘봉이 어찌 대신할 것인가. 맨손으로 지휘를 해도, 세인의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지휘자 쿨투 마주루. 그는 맨손으로 하는 독특한 지휘법으로 오히려 더 주목 받고 있음을 본다.
   수필이 힘을 얻는 것도 ‘개성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매끈한 도자기이기보다는 투박한 질그릇이기를 고집하는 수필. 나는 이런 수필의 비타협성이 좋아 어느 문학 쟝르보다 더 애정을 느낀다. 저만이 가진 아름다움으로 글을 쓸 일이다.
   문제는 필력이다. 필력의 강화란 욕심을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요, 하루 이틀에 될 일도 아니다. 사번 타자가 홈런 한 방 멋지게 날리려고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다 보면, 오히려 삼진 아웃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야구 시합에서도 빈 마음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부단한 연습만이, 어느 날 홈런이란 선물을 안겨준다.

   수필에서도 마찬가지다. 긴 기다림의 자세로 제 마음의 창을 닦는 일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좋은 수필은 그 연후에야 얻는 보너스일 뿐이다. 이 생각은 수필에 대한 나의 신념이자, 문학에 대한 내 자세이기도 하다.
   앞으로 혹 내 마음이 성급해지면, 창밖 처마 끝에 달린 ‘구리 풍경’이 다잡아 주리라 믿는다. 그는 요즘 내 삶에 있어 살아있는 스승이요 표징이기 때문이다. ‘구리 풍경’은 시대의 조류에 무감하다. 바람이 불어도 구름처럼 흩어지거나 떼 지어 몰려다니는 일이 없다. 다만, 청아한 목소리로 제 존재를 알릴 뿐, 창밖 처마 끝이 영원한 제 자리인 양 의연히 지키고 있다. 나도 그런 모습, 그런 마음으로 수필을 쓰고 싶다. 살아가고 싶다.

   ‘재미없는’ 나의 수필에 방점해주신 김호길 선생님의 깊은 마음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수필로 ‘신춘문예 가족’이 되게 해주신, 앞서가는 신문 중앙일보에도 마음 모아 감사드린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내년에는 수필가들이 돈을 모아서라도 상금을 열 배로 올려 수필의 위치를 격상시키고 싶다. 수필은 ‘변두리 문학’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어쩌면 ‘정의 문학’인 수필이야말로 정서가 메마른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문학 쟝르가 아닐까.
                (199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수필 ‘구리 풍경’ 당선 소식을 듣고)


* 후기 : 20년 전에 쓴 글을 다시 읽는다. 수필에대한 내 순정과 초심이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음을 느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요즈음은 완전 무장해제한 채 수필을 쓰다 보니, '문학 수필'보다는 신변잡기에 가까운 '넋두리'가 될 때가 많다. 그러나, 문학적 수필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나니, 쓰는 일이 너무나 즐겁고 편하다. 역시 누군가에게 평가 받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라 그런 모양이다. 한 두 사람이라도 내 어줍잖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벗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등단하고 글 쓴 지도 어느 새 25년. 아직도 쓰기만 할 뿐, 내 작품집을 낸 적이 없다. 비싼 출판비와 출판의 절실함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내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컴퓨터 문제로 모든 작품을 날려버린 뒤에 허망해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아 쓴 글들이 제법 많이 모였다. 이제, 슬슬 정리해서 묶어두어야할 시간이 온 듯하다. 요즘 들어 옛 작품들을 다시 꺼집어 내어 다듬고 있다. 건강할때 열심히 쓰고, 작품 저금을 많이 해 두어야 겠다. 등단 작가가 글을 쓰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고 질책한 큰 스승이 계시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 분 말씀이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진다. 건강할 때, 직무유기 하지 않으련다. 오늘도 내 글을 읽어주는 '익명의 독자'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올린다. 언젠가, '북 콘서트'를 통해 음악과 문학이 어우러진 멋진 밤을 함께 하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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