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사과

2009.07.11 02:36

지희선 조회 수:1026 추천:126

                      다섯 번째 사과

                                                                                                                             지 희 선

   많고 많은 과일 중에 사과만큼 인간 삶을 지배하고 희롱한 과일이 있을까. 흔히들 인간은 네 개의 사과를 가지고 산다고 한다. ‘아담’, ‘파리스’, ‘윌리암 텔’, ‘뉴턴’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는 네 개의 사과다. ‘아담의 사과’는 ‘인간과 종교’를, ‘파리스의 사과’는 ‘인간과 전쟁’을, ‘윌리암 텔의 사과’는 ‘인간과 사회’를, ‘뉴턴의 사과’는 ‘인간과 과학’을 상징하며 우리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종교와 전쟁, 그리고 사회적 제도와 과학. 이 중 어느 하나에서도 우리 삶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같은 사과라도 악한 일에 쓰임 받은 게 있고 선한 일에 쓰임 받은 게 있는 걸 본다. 인간의 교만과 질투로 갖게 된 ‘아담의 사과’와 ‘파리스의 사과’는 인간을 파멸로 이끈 불행의 사과가 되었고, 사회적 구속에 반기를 든 ‘윌리암 텔의 사과’와 한 차원 삶의 질을 올려준 ‘뉴턴의 사과’는 행운의 사과가 된 셈이다. 숙명적으로 우리가 안고 살아가야하는 네 개의 사과. 이 네 개의 사과에 오늘 나는 뜻밖에도 또 하나의 사과를 얹어야 했다. 이름 하여 ‘마리아의 사과.’
   한 입 베어 물면 그 뿐, 하나의 과일에 지나지 않는 사과를 역사적 의미까지 들먹이며 운운 한 것도 실상 마리아 자매 때문이었다. 사과 이야기는 아득한 신화나 역사적 서사시로 끝난 게 아니었다. 우리 삶 처처에 흩어져 있는 현장 르뽀요, 일체의 허구를 용납하지 않는 한 편의 수필이었다. ‘흐느낌과 훌쩍임과 미소’로 빚어지는 우리의 일상을 사과만큼 가까이에서 지켜 본 것도 없지 싶다.
   원고 관계로 우리 집을 방문한 마리아 자매님께 대접 삼아 사과를 깎아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과를 못 먹는다고 했다. 사과를 못 먹다니. 사과를 못 먹는 여자도 있나 싶어 놀라웠다. “아니, 사과를 못 먹다니요? 피부 좋은 것도 사과 많이 먹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순간, 그녀의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사과를 많이 먹은 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식사 후에 먹은 후식이 아니라 밥 대신 때운 끼니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별세로 그녀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했다. 연이어 어머니까지 당뇨로 잃자, 교복 대신 작업복을 걸치고 공장으로 향해야 했던 그녀는 직장마저 접어야 했다. 꽃다운 나이 18세 그녀는 졸지에 동생 네 명을 돌보아야 하는 처녀 가장이 되었다. 성당의 사목회장님 배려로 조그만 공소 뒷방에 거처를 옮기긴 했지만 살 길이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퇴직금으로 사과 장사를 시작했다. 공소 청소와 새벽 종치기 일을 보면서도 열심히 사과 장사를 한 결과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또 한 번 장난을 쳤다. 그 해 겨울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자, 사과도 견딜 수 없었던지 모두 얼어버리고 말았다. 걱정스러워 방 윗목에 들여놓았지만, 하루 한 장의 연탄으로 버텨내야 하는 냉방이라 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장장 보름 동안 언 사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겨울 냉방에서 동생들과 함께 먹었던 얼은 사과. 그것은 눈물 젖은 빵이 아니라 눈물 젖은 사과였다. 얼마나 질렸던지 그 이후로는 사과라 하면 보기도 싫다며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위령성월 특집으로 ‘부모님께 올리는 편지’ 원고 청탁을 받고도 빈손으로 온 건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생각이 나서 눈물이 앞을 가릴 뿐,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단다. 성당 월보 마감일이 임박했지만 난들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하얀 얼굴에 언제나 미소를 짓던 기품 있는 여인에게 그런 아픈 사연이 있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동생들을 번듯한 사회인으로 키워내고 남편을 IRS 고급 간부로 만들어 낸 그녀. 제 스스로도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하며 공부에 대한 원까지 풀어낸 그녀가 새삼 우러러 보였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녀가 성공적으로 일구어 낸 이민의 삶도 ‘눈물 젖은 사과’를 먹어보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도 다섯 번째 사과 목록에 오른 ‘마리아의 사과’는 삶에 자극을 준 행운의 사과였다.
   ‘마리아의 사과’를 네 개의 사과에 빗대어 보면 ‘인간과 경제’라는 상징어로 대변할 수 있겠다. 돈의 위력이 갈수록 커지는 요즈음, 한때는 신화의 주역이었던 사과도 예술품의 소재에서 화폐 가치로 쓰임새가 바뀐 듯하다. 사과를 팔아서 아들 대학 공부 시킨 서민의 사과가 있는가 하면, 사과 상자를 들고 권력가의 집 앞을 기웃대는 검은 손의 사과도 있다. 골프의 황제 타이거 우즈가 먹다 버린 사과를 주워 3만 불의 경매가 수입을 올린 마티 컨들 같은 사람은 차라리 귀엽다고나 할까.
   오늘도 사과는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떤 이에게는 불행의 사과로, 어떤 이에게는 행운의 사과로. 붉은 사과, 푸른 사과, 황금 사과 등 색깔도 다양하고 그 의미도 각기 다르다. 우리가 엮어내는 삶의 이야기가 있는 한, 사과 이야기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행운과 불행의 씨줄 날줄을 엮으며 사과는 또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 앞에 나설까.  
   ‘시다’ ‘달다’라는 혀 끝 미각만으로 무심히 대해왔던 사과 한 알. 이제는 사과 한 입 베어 물 때도 다섯 개의 사과를 떠올리며 짐짓 철학가의 흉내라도 내야 할까 보다.  (0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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