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세 줄 문장 - 사랑의 도시락(04242922)+ 
 
코로나 이후로 식사 친교가 사라진 쓸쓸한 성당.
도시락 지참하고 성당에 가긴 사십 년만에 처음.
하필이면 오늘이 자비 주일! 우연인가 은총인가.  


 7. 사랑의 도시락 1.jpg

코로나 사태 이후로 줌 미사를 드리거나 근처 미국 성당을 다녔다. 치명적 타격을 준 코로나가 오미크론으로 변종되면서 방역 지침도 너그러워졌다. 모임 인원수 제한 없어진 지는 이미 오래. 최근엔 마스크 착용도 옵션으로 각자의 선택이다. 오늘, 모처럼 친구랑 LA 한인 성당에서 만나 같이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뒷풀이 수다는 말하지 않아도 즐거운 옵션이다. 미사 후에는 늘 식사 친교 시간이 있어 시끌벅적했는데 요즘은 성당마다 고요 그 자체다. 식사 친교 시간이 없으니 허전하고 멋적다. 미사 참례만 목적이라면 가까운 외국 성당에 가도 된다. 하지만, 한 시간 반이나 운전해서 굳이 먼 곳에 있는 한인 성당을 찾아 가는 것은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또 하나의 즐거움 때문이다. 그런데 이 즐거움이 뜻하지 않는 코로나 변고로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상상 밖의 장기전으로 흘러 갔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 가게도 문을 닫고 성당까지 못 나가게 되자, 나도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정신적으로 치명적 타격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글쓰기에 매달리면서 초기 코로나 위기를 극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게 문도 열리고 미사참례도 가능해지자 심리적 불안이 좀 누그러졌다. 사실, 이민 사회에서는 신앙 생활이 가장 큰 소셜 모임이다. 낯설고 물 선 타국 땅. 문둥이도 저들끼리 반갑다는 어느 싯귀처럼, 매주 같은 말을 쓰는 한국 사람을 무더기로 만날 수 있는 곳은 유일하게 신앙 공동체뿐이다. 희노애락이 거기서 다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친구 중에 가장 가깝고 중요한 정신적 동반자는 이민사를 함께 써온 성당 친구들이다. 사십 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각각의 이유로 딴 성당으로 나가게 되었지만 특별히 친했던 친구들은 가끔 코리아 타운 한인 성당에서 만나 친교를 나눈다. 그 중, 아네스를 오늘 다시 한인 성당에서 만나기로 한 거다. 아네스는 몇 살 아래 친구로, 어머니 장례식꽃을 만들어 준 각별한 사이다. 일전에 만났을 때, 여기저기 아파서 고생했다는 이야기와 특별히 맛있는 게 없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몸도 건실하지 못한 친구를 굳이 차에 태워 식당으로 나서느니, 오늘은 아예 도시락 2인분을 만들어 가기로 작정했다. 메뉴는 새우 볶음밥, 우엉 조림 해 둔 게 있어 그것도 총총 썰어 넣고 심심치 않게 두부 부침과 소세지 달걀말이도 반찬으로 곁들였다. 혹, 목이 마르지 않을까 싶어 밭에서 뜯어 온 쑥으로 쑥국도 끓였다. 맛과 영양을 고려해서 다시 된장국물에 청국장, 들깨 가루도 넣었다. 귤과 함께 과일 디저트도 챙겼다. 나름 성의를 보인 2인용 도시락을 들고 나서니, 성당에 가는 게 아니라 피크닉 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 참! 성당 가면서 도시락 지참하기는 사십 년만에 처음이네?’ 하면서 혼자 웃었다. ‘그래, 오늘은 성체와 볶음밥 먹고 영육간에 강건하자!’ 다짐하며 차 시동을 걸었다. 오늘이 자비 주일인 것은 성당에 가서야 알았다. 신부님 강론 중, 자비란 대단히 큰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소소한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일이라 하셨다. 마찬 가지로,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발견하는 것도 대단한 기적이나 은총 속에서만 찾으려 하면 안된다는 거다. 예쁜 꽃 한 송이를 보면서도 주님의 자비를 느껴야 한단다. ‘하필이면, 오늘이 자비 주일이라구? 그러면 밥맛 없다는 아네스 위해 도시락 싸온 것도 일종의 자비?’ 생각하니 쿡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자비’란 단어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이건 누가 누구에게 베푸는 자비가 아니라, 우정이란 나눔의 정이지!’ 하고 혼자 용어 변경을 했다. 도시락 가져 왔다는 말에 아네스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자매님이 다 해 오셨다는 말씀?” “그럼! 내가 하지, 누가 하냐?” “전, 자매님이 이런 거 안 하시는 줄 알았어요!” 성당에서 성가대나 하고 주보 월보를 만들고 있으니 부인회 봉사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아네스도 내가 '부엌과'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대단한 요리는 못해도 쿠킹은 나에게 힐링이다. “허,참! 나 직장에도 도시락 싸들고 다니는 사람이야, 왜 이래?” “와- 오늘 새로운 모습을 또 하나 보네요?” “그래, 앞으로 새로운 모습 더 많이 보게 될 것이야!” 농담조로 말했다. “더 좋은 모습?” “그래, 더 좋은 모습이지, 나쁜 모습일까?" 쿡쿡! 웃음이 나왔다.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성의가 괘씸해서(?)라도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그래도 밥맛 없다던 애가 잘 먹어 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야, 그러나 저러나 우리 너무 웃기는 거 아냐? 영적인 목마름을 채워야 하는 거룩한 성전에서 이렇게 도시락 까 먹으며 육적인 배를 불리고 있다는 게 말이나 돼?” “하하! 그러게요?” 아네스도 키들키들, 나도 킥킥. 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오는 벤치에 앉아 웃음과 수다를 곁들여 먹는 도시락 맛이 일품이다. 그것도 미진하여 다시 입가심으로 팥빙수를 먹기로 했다. 가까운 웨스턴 갤러리아 푸드 코트로 갔다. 팥빙수도 뚝딱. 소화제 삼아 옷구경 하면서 한바퀴 빙 돌고 세종문고에 주문한 책이 들어 왔나 싶어 들렀다. 마침, 내 글팬인 사장님이 계셨다. 책은 도착하지 않았는데, 내 수필 <하오의  서정>에 대해 훼밍웨이까지 들먹이며 극찬을 해 주셨다. 아마도 속도감 있게 쓴 문장에서 훼밍웨이의 하드 보일드체 느낌을 받으셨나 보다. <노인과 바다>를 쓴 곳이 쿠바 아바나에 있는 암보스 몬도스 호텔이란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서점 사장님으로부터 글 칭찬을 받으니 함박웃음이 절로 터진다. “이거, 고래는 아니지만 춤을 출까요?” 하며 농을 했다. 문학 수필은커녕, 대가들이 쓰지 말라고 충고하는 신변잡기나 긁적이고 있는 요즘. 사실, 글에 대한 칭찬을 받을 때는 아니다. 하지만, 독자는 각자 가진다더니, 독자의 취향에 따라 같은 글이라도 공감대가 틀리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다. “주여! 당신은 오늘 다른 사람 입을 통하여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나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절로 내 손이 성호를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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