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죽 나누기

2016.05.31 15:31

서경 조회 수:191

   사순절을 맞아 금요일 저녁마다 가난한 이를 돕기 위해 흰 죽 나누기를 하고 있다. 한 끼 식사를 죽으로 때우고 절약한 식사비를 도네이션하여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성당 행사다  

   죽 끓이는 봉사는 각 구역이 돌아가면서 하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끝내고 나오는 신자들에게 죽을 나누어 주게 된다. 크리스마스 때는 깡통 음식을 모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준다. 자칫하면, 습관적인 연중행사로 끝날 수 있는 이 일들도 진심어린 마음이 깃들면 아름다운 나눔이 된다. 우리 속담에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다'란 말이 있다. 누구나 부족하지만, 내 가진 것을 나누며 함께 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사랑의 실천이다.       

    탈무드에서 사랑이란, '나한테 있던 것을 주고 이제 더 이상 내게 없는 것'을 말해 준다. 한 마을에 삼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각기 귀한 애장품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제일 큰 형은 천 리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을, 둘째 형은 세상 어느 곳이든 타고 날아갈 수 있는 양탄자를, 막내는 먹기만 하면 만병통치가 되는 사과 한 알을    

   어느 날, 제일 큰 형이 망원경으로 보니, 이웃 나라 공주님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데 누구든지 공주의 병을 낫게 해 주면 부마로 삼겠다는 방을 보게 된다. 이에 삼형제는 의기투합하여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 사과를 먹여 공주를 살려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서로가 부마가 되겠다고 옥신각신한다. 방을 못 봤으면 소식을 알지 못했을 테고, 설사 알았다 해도 양탄자가 없었으면 그 나라에 오지도 못했을 터. 왔다 해도 사과라는 명약이 없었으면 공주의 병을 낫게 할 수도 없었을 것 아닌가  

   각 자, 일리 있는 이유를 대며 옥신각신할 때, 왕이 나서며 말한다. "나는 부마로 사과를 준 막내를 택한다. 다른 사람은 제가 가진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나 막내는 제가 가졌던 것을 이제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랑은 바로 이와 같으니라." 현명한 왕의 판단에 다른 두 형제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2000년 전, 한 사람이 제 목숨을 바침으로써 더 이상 그 생명을 부지할 수 없었던 사랑을 주고 갔다. 우리는 그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내가 그런 삶을 본 받고, 그가 당부한 유언처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하여. 내가 사랑을 받을려고 만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주는 사랑이 아름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예수님은 네 가진 것을 버리고 따라오라고 하신다. 얼마나 어려운 부탁인가. 예수님은 왜 언제나 어려운 부탁 말씀을 하실까. 기뻐하라 하시면 되지, 항상기뻐하라고 하실까. 그리고 기도하라 하시면 되지, 기도하라고 하실까. 어떤 처지에서든 범사에 감사하라니, 어디 될 법한 일인가.

    나는 가끔 내 행동을 제약하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하는 이런 부사어에 부담을 느끼곤 한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모습이 부끄럽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 양심에 가책을 느끼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난 때때로 기뻐하고, 종종 기도하고, 가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왔다.

    예수님이 곁에 계시면 난 분명히 애교어린 떼를 썼으리라. 좀 봐 주세요, 살살 해줄 수는 없나요, 하고. 그러나 참 신앙인의 삶은 적당히가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예나 이제나, 신앙인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나 보다. 그러나 이왕 들어선 길이니 좁은 길을 따라갈 수밖에.

     우리가 흰 죽을 나누고 깡통 음식을 모으는 작은 선행을 하는 것도 다시 한 번 제 삶을 되돌아보자는 뜻일 게다. 오늘은 우리 4 구역이 흰 죽 끓이는 봉사하러 갔다가 모기한테 무진장 피 도네이션을 하고 왔다. 피를 나누는 엄청난 사랑을 나누고 왔다며 퉁퉁 부운 발 사진과 함께 언니에게 텍스트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온 답이 단 넉 자.  

   '대중보시'. 하하. 내가 성당이 아니라, 절에 갔다 오는 것도 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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