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잃어버린 시간

2020.04.03 17:50

서경 조회 수:29

잃어버린 시간.jpg


“아빠! 바다가 보고 싶어!”
방금 교도소에서 나온 한 청년의 일성이다.
서른 한 살이 된 청년은 교도소로 들어간 첫날부터 청년이었던 건 아니었다.
16살의 애띤 얼굴은 청소년보다는 어린 소년에 가까웠다.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중범 교도소에 갇힌 지 장장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장에 가지도 않았지만 ‘플래너’란 죄목으로 무거운 형을 받았다.
그는 친구들이 마약을 사러 간다길래 그러나 보다, 하고 컴퓨터로 예약을 해 주었을 뿐이었다고 한다.
설마, $50 어치 마약을 사러 갔다가 상대방을 죽이기까지 할 줄은 몰랐다.
현장에 간 아이들은 총 4명.
서로 마약을 주고 받는 사이에 시비가 붙어 일어난 불의의 총격 사건이었다.
죽은 아이는 중동계였지만, 범인은 모두 한국계 아이였다.
그 중에 운전을 해 준 아이 역시 참 억울하게 사건에 연루되었다.
홀어머니 외아들에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착한 아이였다.
용케 퇴근 시간에 맞추어 찾아 와서는 ‘차를 좀 태워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영문도 모르고 태워다 준 아이였다.
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공범으로 몰려 그도 잡혀 갔다.
초죽음이 되어 비싼 변호사비까지 써 가며 부모들은 사방팔방으로 쫓아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경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터에, 마약과 살인 사건까지 겹쳤으니 변명이 통할 리 없었다.
16, 17, 18 살로 이루어진 아이들은 신문 한 면을 장식하고 잡혀 들어갔다.
15년에서 25년까지 구형을 받은 아이들은 그 높은 회색 건물에 갇혀 되찾을 수 없는 젊음을 저당잡혔다.
한 해 두 해...
여러 번 계절이 다녀가고 아이들은 소년에서 청년으로 커 갔다.
청년이 된 아이들은 험악하기로 소문난 성인들의 중범 수용소로 각각 이감되었다.
흑인애들과 히스패닉 아이들의 세 싸움으로 여러 번 면회조차 거절 되었지만 부모들은 부지런히 아이들 있는 곳으로 쫓아 다녔다.
다행히 시간은 세월로 쌓여, 하나 둘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기 시작했다.
바다가 보고 싶다고 일성을 터뜨린 B도 그 중 하나였다.
“아빠! 바다가 보고 싶어!”하는 아이의 간청은 아버지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수영과 농구를 누구보다 좋아했던 아이.
아버지는 두 말 없이 산타 바바라 넓은 바다에 풀어 주었다.
마치 한 마리 야생마처럼 아이는 셔츠를 벗고 풍덩 바다에 뛰어 들었다.
얼마나 그리던 바다인가.
얼마나 올려 보고 싶던 푸른 하늘인가.
풍덩풍덩.
어푸어푸.
세상을 다 품에 안으려는 듯이 아이의 팔은 노가 되어 수평선을 향해 힘차게 저어 갔다.
그런 모습을 보는 아비의 눈에 눈물이 찬다.
아이는 수평선을 향해 헤엄쳐 간 게 아니라, 세상이란 거대한 바다를 향해 간 것임을 아비는 안다.
일엽편주와 같은 아이에게 바다는 만만치 않을 터.
때로는 비바람 불고 흰 파도가 상어의 이빨을 드러내며 덤비겠지.
세상이란, 하얀 돛단배 타고  떠나는 환상의 바다가 아님을 저도 알게 될 테지.
우리는 너나없이 그 거친 바다를 헤쳐 나온 생환의 어부다.
아이도 결코 녹록치 않는 삶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자기 아비가 살아온 삶을 복습이라도 하듯이.
한순간의 실수로 잃어버린 15년.
정말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나타난 B는 놀라울 정도로 멋진 청년이 되어 있었다.
6피트의 키에 늠름한 체구, 환한 미소까지!
나긋나긋한 말씨와 어른에 대한 공손한 태도는 옛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느님께 감사!”
감사송이 절로 터져나왔다.
그 안에서 한글도 배우고 대학 기초 과정도 끝내고 왔단다.
그림에 재주가 뛰어났던 아이는 다시 제 전공을 찾아 계속 공부를 하겠다고 칼리지에 등록도 했다.
최근에 들은 얘기로는 일도 하고 걸프랜드도 생겼다는 기쁜 소식이다.
먼 길 돌아 온 아이.
잃어버린 시간이 결코 낭비한 시간이 아니라, 자성과 성장을 위한 알찬 시간이었음이 고맙다.
상처난 갈대는 꺾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의 편견이나 사시적 눈총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광야를 거치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에 들어갈 수도 없는 일.
이건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공식이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수평선은 가이 없다.
모쪼록, B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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