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출판 기념회

2015.01.26 13:04

지희선 조회 수:97

    1월 20일 화요일 오후 여섯 시 삼십 분.

   용수산에서 이미 평론가로 글솜씨를 인증받고 있는 황숙진씨의 첫 소설집 출판 기념회가 있었다.

   황숙진. 그는 정말 '물건'이다. 글 잘 쓰고, 말 잘 하고, 기발한 발상을 하는 유쾌한 사람이다.

   오늘 그의 첫번째 소설집 'Minority Report' 출판 기념회 진행만 해도 정말 유쾌한 발상이었다. 사회자의 도움없이 본인이 직접 진행하는 것부터 유별났다. 파격, 역발상, 낯설기는 그의 전매 특허인가. 빙글빙글, 능글능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좌중을 압도한다.

   그의 첫 일성이 가관이다. 자기 소설집을 보면 유난히 노래 제목이 많이 나오는데, 누구든지 나와서 책 페이지와 노래 제목을 말하고 그 노래를 부르면 상품을 준다나. 참석자들은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폭소를 떠뜨렸다. 한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히야! 자기 소설 읽게 하는 것도 가지가지 하는구나!"

    나는 얼른 책을 펼쳤다. 상품에 눈이 어두운 것도 아니요, 나가서 노랠 부른 위인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노래들이 소설 속에 나오는지 무척 궁금했다. 책을 뒤적이고 있는 동안에, 왼쪽 테이블에서 누군가 손을 번쩍 들며 "149쪽,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하고 소리쳤다.

   첫번 째 '카수'다. 모두의 눈이 목소리 쪽으로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 그것도 아가씨 목소리였으니. 그녀의 노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유연하게 리듬을 타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신나게 부른다. 여기저기 다음 주자가 나오고 분위기가 고조된다. 'Endless love'가 나오는가 하면 '잊혀진 계절'도 나왔다.

   아이돌같이 멀쩡하게 생긴 어떤 남자 '카수'는 조관우식 가성에 완전히 톱연주 같은 목소리로 불러 배꼽을 쥐게 했다. 한겨울 문풍지 떨리는 소리라고나 할까. 전깃줄을 울리고 가는 바람소리라고나 할까. 높고 가는 떨림은 마리아 칼라스도 울고 갈 소리다. 일부러 그러는지, 실지 목소리가 그런지 정말 특이했다.

   그 와중에 최영식 시인이 반칙을 하며 자기 애창곡인 '빨간 구두 아가씨'를 매력적인 저음으로 불러재꼈다. 이에 질세라, 김영문 소설가가 나와 자기도 오늘 망가지기로 했다며 열차 안내 방송을 흉내낸다. 결국, 그는 황숙진씨 한테 떠밀려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배꼽을 쥐고 웃었다.

   그런데 가만 있자, 이거 주체측의 농간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서슴없이 나와 노래를 부를 수 있나. 우리 모두는 황숙진씨가 짠 계획일 거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나 노래방 무드로만 끝날 황숙진이 아니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노래 제목을 자주 차용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한 페이지의 묘사로도 부족한 시간이나 공간 배경을 얘기할 때, 동시대의 노래 한 곡을 삽입하면 모든 설명이 끝난다고 했다. 과연, 그의 발상은 평론가답게 치밀하고 정교하다. 예술의 아름다움이란 결국 통일 속의 변화라던가. 노래방 무드로 가다가 문학적 담론으로 넘나들며 문학의 가벼움과 진지함을 절묘하게 보여준다.

   소설가요 평론가인 황숙진. 그는 진짜 '물건'이요, 우리 미주문단의 귀한 자산이다. 끝나고 북 사인을 위해 책을 디밀었더니, 뭐라고 써 드릴까요 하고 빙긋 웃는다. 그거야 작가가 주고 싶은 말을 써 주는 거지, 독자가 주문할 수 있나 하면서 농을 했다. "요즘은 누님이 대세라니, 사랑한다는 고백도 좋고..." 그 말을 듣자, 그는 속표지에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 지희선 누님! 사랑합니다."

   영광이로소이다. 하하호호. 특이하면서도 아주 유쾌한 출판 기념회였다. 올해 미주문협 소설분과 위원장이된 황숙진씨의 대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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