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시 - 껌딱지 티거

2018.12.07 01:15

서경 조회 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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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떠나는 딸 대신, 아기 고양이 티거를 돌보기 위해 코비나 딸집으로 왔다. 아무도 없는 집에 움직이는 물체는 오직 나와 그림자처럼 나를 따르는 티거 뿐이다.

  티거는  완전 껌딱지다.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 다닌다. 부엌에 가면 부엌으로, 리빙 룸에 가면 리빙 룸으로. 심지어 화장실에 가거나 목욕탕에 가도 따라 들어 온다. 어릴 때 엄마 품을 떠나 온 탓인지 저도 정이 그리워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나 보다. 
  얼마 전에는 제 이불을 입에 물고 뱅뱅 돌기에 왜 그러느냐 딸에게 물었더니, 일찍 엄마 품을 떠난 고양이들의 전형적인 행동이라 했다. 정말 짠했다. 
  작년 겨울 이맘 때쯤이다. 기숙사를 나와 손녀는 하우스 한 채를 빌려 친구 두 명과 막 새 살림을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손녀가 팻샵에 들렸다가 “야~옹!” 하고 인사를 건네는 아기 고양이를 보았다. 유난히 눈을 뗑그마니 뜨고 자기를 쳐다보며 야옹대는 고양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목 밑에는 $1 짜리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1이라니? 손녀는너무나 싼 가격에 놀랐다. 두 말 없이 안고 집으로 돌아 왔다. 이름을 ‘위너 더 푸우’에 나오는 ‘티거’라 지어 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오자마자, 정이 담뿍 들어 시간만 나면 장난을 치고 놀아주는데 룸 메이트 친구가 고양이 알러지가 있다는 거였다. 방은 각기 따로 쓰지만 공동 사용 구역도 있는 터. 난감한 일이었다.
  엄마 품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가 이제 다시 새 엄마를 떠나야 하다니.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친구 집에 맡기고선 매일 들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물론, 아기 고양이도 섭섭하고 불안했을 터이다. 손녀는 티거가 덮던 이불도 같이 보내 주었다.
  겨울 방학이 되어 손녀는 엄마집으로 티거를 데려 왔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딸도 어쩐 일인지 첫눈에 티거한테 반해 버렸다. 이것이 인연이란 것인가. 티 없이 맑은 눈에 심쿵해 버렸단다. 조그만 소리가 나도 귀를 쫑긋 세우고 똥그란 눈을 사방으로 굴릴 때면 귀여워 어쩔 줄 모른다.
  어느 새 티거는 자기를 두고 아리조나로 가 버린 엄마보다는 밥도 챙겨주고 애지중지해 주는 할머니를 더 따르게 되었다. 딸도 일에 지쳐 돌아올 때면, 티거 볼 마음에 피곤을 잊을 정도였다. 
  700여 개의 점포를 가진 패션 컴퍼니에서 바이어로 일한다는 건 극한 직업이라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다고 한다. 한번의 실수로 회사에 몇 백만불의 손해를 입힐 수 있는 일이다. 딸은 집에 와서도 거의 밤 열 두 시가 넘도록 일을 한다. 너무 일에 매달린다 싶어, 그렇게 일 하면 오버 타임 주느냐고 물었다가 무식 대방출을 했다. 
  “엄마! 나 아올리 아니야. 연봉이야!”
  영어와 한국말을 곁들이며 설명했다. 연봉 받는 사람은 오버 타임이 없다나. 자영업을 하는 나에겐 연봉을 줄 이도 없고 받은 적이 없어 그런 걸 몰랐다.
  그만큼 큰 회사에서 사람을 하나 더 쓰지, 싶어 고생하는 딸을 볼 때마다 은근히 부아가 났다. ‘몇 푼 주고 독하게도 써 먹는구나!’ 싶었다. 게다가, 요즘은 위에서부터 잘라 와 언제 해고 당할지도 모른다나. 돈 있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은 세상 어디서나 똑 같은 모양이다. 매일 매일 전장에서 전쟁을 치루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딸에겐 다시 없는 기쁨 조가 생긴 셈이다. 
  “엄마! 정말 우리 피터 같지 않아? 티거는 고양이가 아니야. 강아지하고 똑 같다니까? 꼭, 우리 피터가 살아서 돌아온 것같아!”
  ‘피터’ 얘기가 나오니 명치 끝이 아렸다. ‘피터... 내 귀여운 강아지...'’ 나를 그토록 따르고 늘 곁에 있기를 원하던 나의 피터. 목욕을 시키고 털을 깎아주는 동안 그저 온 몸을 맡긴 채 내 처분만 바라던 우리 얌전이 요키. “우리 피터, 없~다!” 하면, 이내 내 곁에서 제 이불에 얼굴을 묻고 코를 골며 자던 내 귀요미. 
  2년 전, 열 살이 된 피터는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죽었다.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준 밍크 담요를 깔고 제 집에서. 그야말로 거룩하고 고요한 밤에 베들레헴보다 더 작은 고을 리틀락에서 자는 잠에 갔다. 
  앓는 소리라도 냈으면 일어나 보기라도 했을 텐데 주인 잠 깨우지 않고 홀로 조용히 먼 길 떠났다. 아기 예수 탄생과 맞바꾼 우리 피터의 죽음. 엄마 돌아가실 때도 울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누워 베갯잇을 적셨다.
  껌딱지 티거는 가는 곳마다 말없이 따라와 지켜보던 우리 피터를 꼭 닮았다. 많은 말을 담은 순진무구한 눈망울하며 발자욱 소리 하나 내지 않는 기품 있는 행동까지. 
  “그러게 말야! 나도 고양이는 별로였는데 정말 다르네?”
  나도 모르게 티거에게 정이 갔다. 개하고 드는 정은 ‘더러운 정’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하더니 정말 동물하고 드는 정은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어떤 기대나 계산 없이 그저 주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사랑. 가슴 가득 차오르는 무한 기쁨은 차후에 따라 오는 보너스일 뿐이다. 
  티거는 어쩌면 피터의 환생인가, 아니면 우리를 위로해 주기 위한 피터의 크리스마스 선물인가. 온 식구가 티거로 인해 피터를 잃은 슬픔을 위로 받고 생활의 기쁨을 되찾고 있다. 
  껌딱지 티거. 너의 목숨 값이 어찌 $1일까 보냐! 생명값은 그 누구도 매김할 수 없는 피의 값이 아니겠는가.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서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고있는 대림절 티거. 귀하디 귀한 우리 집 귀염둥이. 앞으로도 많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자꾸나!
  티거야! 약속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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