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감상) 투르게네프의 언덕 - 윤동주

2011.11.08 00:35

지희선 조회 수:875 추천:115

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매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세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덜너덜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 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 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P.S   이 작품은 <윤동주 시집>에 실려 있기도 하고 <윤동주 산문> 에 실려 있기도 한다.

         시집에서 발견하였을 때는 "참, 아름다운 수필 같은 시구나!" 하고 감동하였다.

         그런데, 오늘 연세 대학교 홈페이지 윤동주 편에서는 산문란에 있어 좀 의아했다.

         하지만,  "참, 시 같은 수필을 썼구나!" 하고 다시 감탄하였다.

         김기림의 <길>이란 작품처럼, 시로도 볼 수 있고  수필로도 볼 수 있는 너무나 멋진 작품이다.

         시 같은 수필, 수필 같은 시!

         이 아름다운 작품 앞에 갈래가 무슨 소용이며 장르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음미하고, 느끼고,  외워서 내 것으로 육화하면 그 뿐.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작가를 읽는다는 것이고, 작가를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가의 마음에 나도 고개 끄덕이며 동의하는 것이다.

          오늘 나는 윤동주와 더불어 <투르게네프의 언덕>을 넘었다.

          언덕 넘어 노을 속으로 사라져 간 그  세 소년 거지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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