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감상) 거지 - 투르게네프/

2011.11.08 01:03

지희선 조회 수:594 추천:104


<거지 - 투르게네프>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늙어빠진 거지 하나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물 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다 헤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그는 빨갛게 부푼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한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도 없다, 시계도 없다, 손수건마저 없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지는 기다리고 있다... 나에게 내민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그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려.>
거지는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하고 그는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 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 감상 메모 ***

윤동주의 <투르게네프의 언덕>을 처음 읽었을 때 제목이 좀 낯설었다. 거지 소년들을 본 것과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리송했다. 오늘에야 투르게네프의 시 <거지>를 읽고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윤동주는 앞서 걸어가는 세 소년 거지를 보며 투르게네프의 <거지>를 떠올렸던 것이다.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파우스트> 등으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투르게네프는 1000명이나 되는 농노를 거느린 대지주의 아들이었으나 평생 농노제를 증오하고 맞서 싸울 정도로 인간에 대한 그것도 약자에 대한 연민이 남달랐던 작가다. 이 <거지>라는 작품에서도 그의 따뜻한 마음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실화요, 시적 설정이 아님에 더욱 큰 감동을 자아낸다. 줄 것이 없어 거지 손을 덥석 잡아주며 용서를 청하는 대지주의 아들! 오늘은 그의 작품보다 그의 마음이 앞서 내게 달려와 안긴다. 투르게네프는 1818년생이니 거의 200년 전 사람이요, 척추암으로 1883년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그가 떠난 지도 100여 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는 윤동주에 의해 살아나고 독자들에 의해 거듭거듭 부활하고 있다. 역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비교 감상을 위해 윤동주의 <투르게네프의 언덕>을 첨부해 둔다.


<투르게네프의 언덕 - 윤동주>

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 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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