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에 대하여 - 소설가 '임영태'

2011.11.13 17:32

지희선 조회 수:484 추천:119








합평, 어떻게 준비하고, 또 어떻게 참가하여, 어떻게 이끌어야 서로에게 효율적인 공부가 되는 가에 대해서




합평은 단순히 소감을 청취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기억하세요. 의미 있는 합평이 되기 위해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첫째, 작가의 입장에서 작품을 보아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글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름대로 온갖 구상을 하고 머리를 쥐어짜 한 편의 소설을 완성시킵니다. 독자에게는 미흡할지 몰라도 거기엔 작가 나름의 세계관과 문제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때문에 합평에 임하는 사람은 먼저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려 노력해야 합니다. 작품이 만족스럽지 않을수록 더 그래야지요. 어떤 문제를 다루고자 했는지, 어떤 의도로 이런 구성, 이런 인물을 만들어냈는지, 작가의 생각을 유추하며 따라 읽어야 소설의 장단점이 더 잘 느껴집니다. 한 편의 소설을 쓸 때면 누구나 온갖 시도를 해보며 주제를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잖아요.

  합평에 임하는 사람은 그 노력의 십분의 일이라도 바쳐 그 작품 자체의 기획 의도, 곧 작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공부가 되지요. 수동적인 독자의 입장에만 서 있기로 하면 '좋다' '안 좋다' 한 마디면 더 할 이야기 없지요.

형편없는 작품이라도 거기엔 아무튼 작가가 목표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물론 작가 스스로도 자기가 뭘 말하고 싶었는지 모를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합평하는 사람들이 대신 주제를 찾 아주는 겁니다. 그렇게 작가의 의도 속으로 들어가도록 노력하며 자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면 나아질까 하는 점들을 생각해 봐야 되는 거지요.







둘째, 작품에서 좋은 점을 찾아야 합니다.




  이건 작가를 격려하기 위해 애써 좋은 점을 찾아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말 수준 높은 안목은 어떤 작품이든 거기에서 장점을 찾아내는 눈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는 그만큼 못 쓸지라도 보는 눈만큼은 높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 높은 눈으로 무서운 질책이나 하는 건 의미 없습니다. 그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소설 자체의 형상화는 서툴지라도 그 안에서 작가 고유의 개성과 장점을 발견하는 일, 그게 어려운 일이고 합평자에게나 작가에게나 창작 수련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요.

  의미 있는 합평이 되려면 가능한 한 작품을 전체로 평가하지 말고 쪼개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작품이 비록 전체 완성도는 60점에 불과할지라도 부분 부분, 어느 한 대목에는 (아직 채 무르익지는 않았으나) 눈부신 개성과 장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볼 줄 알아야 자기 자신과 비교도 해볼 수 있고, 해당 작가의 가능성과 한계도 명확히 가늠되지요.




셋째, 가능하면 일방적인 비평보다는 작가의 개작에 도움이 될 만한 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역시 작가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말을 순화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평 자체는 날카롭고 사나워도 좋습니다. 그러나 툭 던지고 마는 한 마디는 그게 아무리 정곡을 찌르는 비평이라 할지라도 의미 없습니다.

  '작위적이다!' '주제에 일관성이 없다' 한 마디 툭 던져 버리면 어쩌라는 얘깁니까? 나는 이만큼 작품 잘 볼 줄 안다 자랑하기 위해 합평하는 것 아닙니다. 그게 왜 작위적으로 다가오는지, 그 작위성을 피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것을 생각해 보는 게 자기 창작에도 공부가 되고 작가에게도 도움이 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수동적 독자가 아니라 작품분석자가 되어서 머리를 싸매 봐야 되는 겁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 합평을 하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합평은 합평 도중에 견해가 바뀔 수도 있는 그런 합평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독후감만 일방적으로 개진하면서 작가는 물론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까지도 틀렸다고만 주장한다면 합평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시판에 각자 자기 독후감 올리면 그뿐입니다.

작가의 의도를 읽고, 그 의도가 정작 형상화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고, 만약 고친다면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를 논의해 보고….

그런 식으로 포지티브한 논의를 해가며 다른 견해들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자기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라틴 속담에 '음식 맛을 가지고는 다투지 말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일을 가지고 시비하면 결론이 없다는 교훈이지요. 사실 문학을 포함해 예술이란 것들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독후감이란 철저히 주관적이지요. 미학적 감수성이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나이와 직업과 성별도, 그리고 책을 읽을 당시의 주변 분위기마저 다릅니다. 전철에서 흔들리며 읽는 사람과 음악을 틀어놓고 조용히 읽는 사람은 몰입 정도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그 주관의 벽을 긍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미학적인 공통분모를, 보편적인 공감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각자 다른 견해들 속에서 말이지요. 그러니 독후감이란 수정되고, 보완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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