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영적 지도자님께

2009.05.03 16:14

지희선 조회 수:471 추천:77

       공제민 신부님께

공제민 신부님!
얼마 만에 불러보는 이름인지요. 천국에서도 청소년을 위한 노동 사목을 하고 계시는 건 아닌지요?
신부님께서는 평생을 불우한 근로청소년들을 돌보며 전 생을 불살랐지요. 그것도 푸른 눈의 신부님으로 낯설고 물 선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 와서 말이에요.
근로 청소년들의 아버지 공 신부님!
지금 생각해도 신부님과의 만남은 너무 신기해요. 사실, ‘주님의 계획하심’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인연이었죠. 제가 신부님을 뵈온 건 1981년 초여름이었어요. 아들 녀석을 잃은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을 때라 기억이 생생하답니다. 어찌 보면, 그땐 제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기에 그런 귀한 만남이 필요했었나 봐요.
아들 유품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수첩에서 후배 전화번호를 발견하게 되고, 반가움에 안부 전화를 했다가 후배의 성화에 못 이겨 거기까지 찾아간 거 하며, 후배의 직장이 외국 신부님과 일하는 <근로 청소년 센터>라는 거, 하필이면 일주일 전부터 교육부장 자리가 비어 있었던 거, 갑자기 후배 손에 이끌려 원장 신부님과 면담을 하게 되고, 그 즉시 비어있던 교육 부장 자리를 맡게 된 것까지. 마치 누가 계획이나 해 놓은 듯이 일이 척척 진행되었지요. 그것도 기도 중에 기다리고 있었다며 주님께서 보내 주신 분이라고 반색하는 데는 아연실색할 수밖에요.
6년 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 받아두었던 전화번호. 그것도 6년 동안 단 한 번도 건 적이 없었던 그 전화 번호 하나가 신부님과 만나게 되는 ‘끈’이 되다니 신기할 뿐이었죠. 게다가 저는 그때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고, 초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열심히 나가던 교회도 ‘가정 평화’를 위해 6년간이나 안 나가고 있을 땐데 신부님과 일을 하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하느님은 말이 안 되는 일도 즐겨 이루시는 분이었나 봅니다.
제 나이 서른. 교사 생활을 접은 지도 오래된 저에게 주님께서는 18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덥석 안겨주셨죠. 아들 녀석 하나를 잃고 18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얻었으니 축복 중에 그런 축복도 없지요.
가난했기에 가방 대신, ‘뻰또’를 들고 공장으로 향해야 했던 아이들. 교복 대신 작업복을 걸쳤기에 통근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얼른 고개를 숙였다던 우리 아이들. 군부 시절, 나라는 안팎으로 시끄럽고 노동자들은 산업 역군으로서 이미 기계화 되어 있던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우리 아이들. 열 네 시간 노동에 시달려 빨간 토끼눈이 되었어도 저녁 수업 시간이면 눈을 반짝이던 우리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특강 강사로 모시고 온 교수님들마저 아이들 담임을 자처하시고 멘토가 되어주셨으니 우리 <근로 청소년 센터>는 그야말로 사랑의 공동체였지요. 소비조합을 운영하고, 건강 상담, 생활 상담, 노동 상담 전문 변호사를 찾아다니던 일들이 이제는 즐거운 추억이 되었네요. 그때 아이들한테 ‘의식 교육’ 할까 봐 우리 사무실에서 아예 상주하고 있던 이 형사님은 어디로 갔을까요?
강제 추방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늘 기쁘게 일하시던 신부님!
저는 신부님의 모습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참모습을 보았답니다. 도네이션 받으러 우리 성당에 오지 않으셨다면 제가 미국에 와서 가톨릭 신자가 된 거 모를 뻔 하셨죠? 성당에서 저를 보고 깜짝 놀라시던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슬며시 웃음이 나네요. 신부님으로부터 우리 아이들 중 신부님 한 분과 수녀님 열 분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곤 얼마나 놀랐는지요. 십 년 사이에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다니. 신앙의 산 표본이신 신부님이 계셨기에 그런 일도 가능했다고 봐요. 신부님께서는 아이들이나 저에게 단 한 번도 신앙을 강요한 적이 없으셨잖아요. 하지만, 돈 한 푼 받지 않으면서도 이국 아이들을 무한 사랑으로 돌보시는 신부님을  보며 저도 기꺼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답니다.
신부님!
신부님은 헤어진 지 십 년이 지났어도 예전의 단벌 신사 그대로더군요. “아직도?”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나를 보며 “난, 괜찮아요.”하며 호쾌하게 웃던 신부님. 바빠서 제 식사 대접도 마다하고 가시더니, 그것이 이승에서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몰랐네요. 신부님!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던 저를 조건 없이 받아주시고, 봉사가 무언지 참사랑이 어떤 건지 몸소 가르쳐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제 영적 지도자가 되어 늘 지켜주세요. 신부님의 사랑을 보고 먹고 살았던 저이기에, 저도 ‘사랑의 물대롱’ 역할을 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신부님도 이제는 좀 편히 쉬세요. 부디 천상 영복을 누리시길 빌며 이만 아쉬운 펜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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