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행복 만들기

2017.07.03 14:44

서경 조회 수: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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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끝나고 LA로 올라가기 전, 지인 제인에게 전화를 했다. 오랫만에 저녁도 먹고 커피 타임도 가지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공항 근처 친구집에 있다며 그 곳으로 오란다. 
  구글맵으로 들어가 보니, 가게에서 그 집까지 겨우 11분 거리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알지도 못하는 제 삼자의 집에 불쑥 나선다는 게 쑥스러워 망설였더니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 바로, 일전에 말했던 선인장을 가지고 논다는 식물 인테리어 친구다. 그걸 다유기 전문가라고 부른다던가.
  새 다유기도 보고 담소도 나누기 위해 모였단다. 아름다운 것엔 무엇이든, 관심이 있는 법. 부쩍 호기심이 발동하여 차를 돌렸다. 
  LA 공항 근처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그 집은 뒷뜰이 뻥 뚫려 공항 활주로까지 훤히 보였다.마치 활주로가 그 집 뒷마당 같았다. 대통령들이 방문할 때마다 뒷마당에 앉아 그 의전행동을 다 볼 수 있단다. 정말 백만불짜리 뒷마당이었다. 
  곳곳에 주부의 손길이 닿은 선인장 화분들이 앙증스레 모여 있었다. 동네 고양이 두 마리가 세트처럼 왔다갔다 하고 나이 든 리트리버 개 한 마리가 같이 놀고 싶어 어슬렁거렸다. 이름이 쿠퍼라는 리트리버는 늙고 병든 몸이라,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잃은 내 사랑 요키, 피터가 불현듯 그리웠다. 
  개하고 드는 정은 참 더러운(?) 정이라며 잠시 쓸쓸한 미소를 주고 받았다. 어찌 하랴. 정 주고 받으며 살 때, 최선을 다할 수밖에. 
  둥근 식탁에 자리 잡고 앉으니, 자기들은 조금 전에 끝냈다며 따로 챙겨둔 식사를 내 앞으로 내 놓는다. 더도 덜도 아닌 Well done으로 구어낸 스테이크와 소스, 남편이 직접 만든 홈메이드 빵, 텃밭에서 갓 잘라와 무친 부추 겉절이에 가지 무침, 데코레이션은 방울 토마토를 엇짤라 하트로 만들어 빙 둘러 놓았다. 드링크는 그 집 남편이 만들어 내 놓은 붉은 주황색 빛이 아름다운 칵테일 한 잔.
 
  "와아- 이거 완전히 한미 합작이네?"
  "한미동맹 견고하구먼!"
  
  오버 액션까지 취하다 보니, 즐거움은 배가 되고 기분은 애드벌룬이다. 거의 5분마다 뜨는 비행기 소음이 귀를 자극해도 살다보면 다 친숙해 지는 법. 비행기에 마음을 실어 먼 피안의 세계로 날아가 보는 것도 때로는 낭만이 되리. 
  행복이 따로 있나. 맛난 음식 먹으며 친구들과 담소 나누는 맛.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내 삶의 뜨락을 가꾸는 삶. 이것이야말로, 우리 소시민이 바라는 소박한 꿈이 아닐까. 
  이국풍의 남편은 부지런히 오가며 여인들의 기쁨을 위해 즐거이 봉사해 준다.어둠이 서서히 다가오자, 무드 불빛을 켜 주겠단다. 무드 불빛? 설마, 사이키델릭 조명은 아니겠지? 미소를 지으며 그의 행동을 흥미롭게 지켜 보았다. 
  짠!  뒷마당 문 쪽으로 다가가 스위치를 올리니 언제 숨어 있었는지 담 둘레를 따라 작은 장식 전구들이 일시에 불을 밝힌다. "와우!" 하고 탄성을 지르니, 춤추는 시늉까지 한다. 
  재미난 엔터테이너요, 훌륭한 남편이다. 와이프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이리도 보기 좋고 즐거울까. 그것도 자기가 알아 들을 수 없는 이국어로 떠들고 음악도 이국어로 흐르는데.  이 정도 같으면, 미국 남편도 마다할 이유가 없겠다, 싶었다. 요즘은 유니버샬 시대.
국제 결혼을 무조건 반대할 것만은 아니다, 싶었다. 
  음악은 어느 새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로 바뀌었다. 잠시, 말을 멈추고 가만가만 따라 불러 본다.  
 
...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힌 조그만 교회당... 
 
  왜 이리도 가슴이 시려올까. '광화문 연가'만 들으면 가슴이 저려온다. 세월이란 말, 떠나간다는 말... 언제부터 나는 이런 말들 앞에 면역성 없이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것일까.
  강줄기 따라 떠내려간 종이배같이 이루지 못하고 떠나간 슬픈 연가.그리고 상기도 가슴에 남아 그 날을 회억하는 사람들. 맞아.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따라 떠나 가겠지. 쓸쓸한 평화가 고즈녁함을 더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하는 제목의 김광석 노래가 있다. '쉽게 이룬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하는 노래는 왜 나오지 않는 걸까. 이룬 사랑에 대한 행복감이 이루지 못한 애틋함을 이겨냈기 때문일까.그건 아닐 터이다. 인간의 심사란 늘 잃어버린 것에 대한 동경을 지니고 있으니까. 
  해도 지고, 집 찾아드는 순한 소처럼 어둠이 내려 와 익숙한 풍경을 지운다. 어깨에 쇼올을 걸쳤어도 밤바람이 차다. 슬슬 일어서야 할까 보다. 
  비행기가 5분 간격으로 뜨고 내린다. 소음을 넘어 굉음으로 들리던 소리가 귀에 익어 친구가 되어 주었다.그래, 사랑은 서로 길들여 지는 것. 나를 꺾어 너에게로 팔 뻗어 하트를 만들어 가는 일. 
  두 어 시간 남짓한 만남이었지만, '포켓에 가득한 행복'이었다. 몸도 마음도 포만이다. 
  나도  다유기 클럽에 조인을 해 봐? 사실, 식물 인테리어에 전혀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좋은 화기를 찾아 헤매고, 생김새와 높낮이가 다른 선인장을 요리조리 배치하며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일. 힐링 취미란 바로 이런 것. 과정을 즐기고 결과물을 보며 흐뭇해 하는 마음. 재미있을 것같다. 
  
  일어서기 전에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예쁜 게 많은데 좀 팔기도 하시나요?"
  " 팔기 위해 만들면 재미가 없을 것같아서 팔진 않아요. 가끔 선물로는 주기도 하지요."
  주인 마나님 마음이 바로 화심이다. 
  "가끔 놀러와 저도 좀 배워야 겠어요."
  "그러세요. 저이가 낚시광이라 캐나다 근교로 이사갈 지도 몰라요. 잡고 싶은 고기가 그 호수에만 있다네요. 난 여기가 좋고 행복한데. 어쩌겠어요. 맞춰줘야죠."
  한 마디 한 마디가 감동이다. 
  
  행복 만들기. 생각해 보면, 그건 비싼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선, 그거 참 쉬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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