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 없는 장례식

2010.04.14 14:26

지희선 조회 수:975 추천:107

                     상여 없는 장례식

                                                                               지 희 선

   ‘참, 이상한 꿈이다. 상여 없는 장례식이라니......’
   여느 때 같으면 침대에서 행복한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새벽 여섯 시. 희부염하게 밝아오는 새벽창을 응시하며, 나는 한 시간 째 이상한 꿈에 매달려 있었다. 가끔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이상한 꿈을 꾸긴 했어도 이런 꿈은 난생 처음이다.
   얼핏 보니 내가 어릴 때 살던 고향 마산 같았다. 갑자기 동네가 술렁거리더니 상여가 들어온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신작로에 나와 너나없이 고개를 빼고 상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닐곱 살로 보이는 나도 어른들 틈에 끼어 발을 돋운 채 눈을 반짝였다.
   이윽고 골목길을 돌아 상여가 나타났다. 앗!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건 꽃상여도, 그냥 맨 상여도 아니었다. 꽃은커녕 관 자체가 없었다. 장부 네 사람이 죽은 사람의 팔다리를 하나씩 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골목을 돌아 나오더니, 산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하는 애절한 북망가도 없고, 만장도 나부끼지 않았다. 게다가 따르는 상주마저 한 명 없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저토록 초라한 장례를 치루나’ 싶어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쓰렸다. 구경꾼마저 숨을 죽이자, 사방은 완전 침묵에 빠져 죽음의 마을로 변했다. 찬바람은 전깃줄을 윙윙 울리고, 죽음의 마을에 침묵의 장례 행렬은 팽팽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장례 행렬은 어느 새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었다. 곧 흙을 파고 시신 그대로 땅에 묻을 참이었다. 바로 그때! 시신이 한잠 잘 잤다는 듯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게 아닌가. 나는 산등성이를 향해 소리치며 정신없이 달려갔다. “안 죽었어요. 아직 안 죽었어요!”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지 제 풀에 놀라 잠이 깼다.
   직장에 가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너무나 현실감 있는 꿈이 생각 속으로 날 몰아갔다. 오후 네 시경, 뜻밖에도 막내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생의 코맹맹이 목소리가 파도에 흔들리는 그물처럼 출렁거렸다. “오빠가 탄 배.... 파선됐대... 우리나라 거의 다 와서...”  “오빠는?” “실종됐대.” “실종? 에이, 그러면 곧 찾겠지. 오빠는 해병대 출신에 물개 아냐.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나는 ‘실종’이란 말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바다에서만큼은 오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부산, 마산, 충무....... 우리는 언제나 바다를 끼고 살지 않았나. 그리고 바다는 오빠에게 운동장이었고. 나는 머리를 흔들어 불길한 생각을 쫓았다.
   그러나 사흘이 지났는데도 오빠의 소식은 감감하기만 했다. 해상 사고에서 ‘실종’이라면 ‘사망’을 의미하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선장의 책임을 다 하며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였던 오빠. 오빠는 그렇게 서른일곱의 나이에 11월의 겨울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갔다. 꽃상여는커녕, 관도 없이 가 버린 오빠. 모진 해풍을 맞은 소나무처럼 오빠의 삶도 굴곡이 심했기에 나의 슬픔은 더욱 컸다.  
   오빠가 간 지도 어언 사반세기가 지났다. 주인공이 죽기 전의 소설 앞 페이지처럼 다시 돌려놓고 싶은 그때 그날, 그 시간! 눈에서 멀면 마음에서도 멀다지만, 그것도 빈 말인가 보다. 요즈음 들어 톱뉴스가 되어버린 ‘천안함 사고’가 아물어가던 상채기에 다시 소금을 뿌린 듯 마음을 아리게 한다.
   육중한 군함이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동강이 나고 마흔 여섯 명이나 실종이 된 해상 참사. 경악하며 들끓었던 것도 잠시, 살아온 것이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구는 생존 장병들 앞에서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제는, 사랑의 빚만 남겨준 채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목숨들. 그들도 해마다 받아드는 달력 속에 빨간 동그라미로 남아 눈물짓게 하겠지.
  “오빠, 미안해요.”  
  산 자는 죽은 이에게 늘 미안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마음은 그리움과 함께 깊어만 간다. 받은 사랑을 되갚을 길 없는 슬픔이 오늘따라 백령도 파도보다 드높게 출렁인다. (0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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