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구도를 그리며(여행 수필)

2009.10.09 02:27

지희선 조회 수:900 추천:97

   여행은 ‘만남’을 위해 떠나는 여정이다. 자연을 만나고, 풍물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 끝내는 신을 만나는 일이다. 그러기에 만남을 위해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렘을 동반한다. 그리움도 달과 같아서 차고 이울다가 어느 날은 보름달처럼 둥그렇게 커지곤 한다. 이럴 때면 , 깃털 가벼운 새가 되어 문득 길 떠나고 싶어진다.
    2002년 초가을, 언니 리디아가 특별한 여행을 떠나자며 전화가 왔다. 바로 일 년 전에 시조 강의를 하고 가신 백수 정완영 선생 시비를 그 분 살아계실 때 함께 돌아보자는 얘기였다. 솔깃했다. 게다가 여분의 일등석 비행기 표까지 있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한 콩깍지로 태어나서 이렇게 자매만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근 50년 만의 일이요, 일등석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도 생애 처음이다. 비행기가 LA 창공으로 힘차게 날아오르자, 내 마음은 비행기보다 더 앞서 하늘길을 날아갔다.
    다음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백수 선생을 만나 뵈었다. 선생도 미국에서 온 애송이 시조시인들의 정성에 약간 감동하신 듯했다. 모자에, 양복에, 바바리코트에, 단장까지. 아주 멋지게 차려입고 나오셨다.
    “곧, 권 갑하 시인이 차를 가지고 올 거야. 문경을 거쳐 청도 이호우 문학제도 참석하고, 김천 직지사 내 문학의 태반도 돌아보고, 울산 가서 시조 시인들도 만나 보자구. 내 다 연락을 해 놨으니.” 선생은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은 듯, 호기롭게 말씀하셨다.
    “ 권갑하 시인은 신춘문예 출신인데, 시도 좋고 사람도 좋아. 문경 태생이라 내가 안내를 부탁 했지. 아, 저기 오는구먼.”
    선생님이 손을 들어 보이자, 키가 훤출하고 잘 생긴 ‘청년 아저씨’가 뛰어왔다. 그는 신문 편집 마감하고 오느라 좀 늦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가벼운 인사를 하고 권 시인의 차에 올랐다. 서울에서 문경과 김천, 청도를 거쳐 울산까지. 이제부터 고국의 가을 정취를 만끽하며, 대시조시인인 백수 선생과 함께 즐거운 여행이 시작된다. 시동을 거는 순간, 벌써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누군가 ‘유럽 여행은 학습’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 찾아 온 조국 여행은 학습 이전에 느낌 그 자체였다. 빌딩 숲도 아름답고 잘 닦인 길도 좋아 보였다. 시골길로 접어들자, 가을빛이 완연한 감나무 가로수와 사과나무들이 도시와는 또 다른 멋으로 다가섰다. ‘저 주황 감의 화려한 유혹에도 따가는 사람이 없단 말이지.’ ‘저 애기 머리만한 사과들을 서리해 가는 악동도 없단 말이지.’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이런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맛은 유럽 여행에서 맛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정취다.
    “ 우리 가락, 우리 시조는 마흔 다섯 자만 가지고도 천지의 말씀을 다 내려 앉힐 수 있는 그릇이야. 아니지, 천지의 말씀을 다 내려 앉히고도 오히려 자리가 남는 현묘한 그릇이지. 아, 이것을 알아야 하는데. 남은 날은 적고 갈 길은 바쁘고. 앞으로 누가 있어 이 그릇에 채울 수 있는 말씀을 보다 많이 찾아내어 줄 것인지........”
    백수 선생은 가벼운 한숨을 내어 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제서야 가을 풍광에 젖어있던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학처럼 야위어가는 ‘조국’을 봐도 가슴이 아프고, 사위어 가는 시조를 봐도 가슴이 아프고. 늘 가슴이 아픈 백수 선생. 차고 넘치는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어도 이제는 ‘여일’이 얼마 없으니 가슴이 더 아플 수밖에. 문득, 선생의 단시조 <한 세상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손을 놓고 헤어지는 그날 밤은/다 못한 말 있더라도 돌아보지 말 일이다/자꾸만 뒤돌아보니 달도 따라 오는 거다. (한 세상 이야기 1 ) -
    -귀뚜리 울음소리도 창가에만 그냥 두면/하늘에 올라가서 절로 별이 되는 건데/자꾸만 데리고 다니니 옷자락이 젖는 거다. (한 세상 이야기 2 ) -
    오죽하면 이런 반어법 시조를 써서라도 자꾸만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려 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문경에 들어섰다. 문경에 그렇게 자랑할 게 많은지는 몰랐다. 과거 시험을 보러 넘나들던 문경새재와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인 하늘재하며 일본인들이 신주단 같이 모시는 찻사발 도자기와 황톳물 보양 온천. 한양을 등지고 앉은 주흘산과 갖가지 전설을 안고 있는 절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문경의 자랑은 ‘사람이 주인이 되는 길’ 이야기였다. ‘새도 쉬어 넘는다’는 문경새재를 가리키며 권 시인이 한마디 했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죽 미끄러진다고 과거시험 보러 가는 사람들은 모두 문경새재로만 다녔답니다. 이름도 경사스러운 소식이 들려오는 행운의 과거길이라 해서 ‘문경’ 아닙니까.”
우리는 그 말에 한바탕 웃었다. 다 실력문제지, 아무려면 이름 때문에 붙고 떨어지고 할까. 하지만, 길 이름 하나에도 그런 해학적 멋을 곁들인 선조들이 재미있었다. 마침,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 중이라 막간을 이용해 세트장까지 구경했다. 2만평 부지에 고려와 백제 왕궁, 사대부촌인 48동의 기와집과 평민촌인 47동의 초가집 등 규모가 엄청났다. 게다가, 이 모두 실지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건축자재로 지어 기왓장만 해도 35만 장이나 들었다니 대단하다. 10년 간 견훤과 왕건이 불 뿜었던 격전지, 그 역사적 현장에 서고 보니 나도 잠시 고려 여인이 된 듯했다.
    문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권 시인 덕에, 5대째 내려오는 김영식 도자기 장인 집에도 들렀다. 큰 사발 도자기 안에서 빨간 금붕어가 헤엄치며 놀고 있는 게 퍽 인상적이었다. 주인은 산소 정화기 없이도 일 년이 넘도록 잘 놀고 있다며 흐뭇해했다. 그때 처음으로 ‘도자기는 정말 숨 쉬는 그릇’이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런데 내가 그 집에서 가장 탐냈던 건 3000불 이상 간다는 도자기가 아니라, 사실 벽 절반을 차지한 통유리에 들어찬 가을 산이었다. 만산홍엽이라더니 “와아- ”하는 탄성밖에 지를 수가 없었다.
   만약 역이민을 와 산다면 문경에 터를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 순간이었다. 그 날 밤은 황토 여관에 짐을 풀었다. 백수 선생은 식당에 앉아서도 시조 이야기,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시조 이야기. 생불처럼 앉아 오로지 시조로 날을 맞고 밤을 새는 듯했다.
    다음 날 새벽, 백수 선생은 고향인 김천을 간다는 생각에 들떴는지 일찌감치 로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김천 근교에 열 한 개의 시비가 있다며, 시간 관계상 다 볼 수 없으니 먼저 직지사 시비를 보러 가자고 했다. 직지사 시비는 두어 길 되는 돌에 <직지사운>이란 시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직지사운>은 4수 연시조로 지어진 장시였다. 주로 단수를 고집하시는 분인데 직지사 사랑이 컸나보다.
    - 매양 따라오던 그 산이요 매양 보던 그 절인데도/철따라 따로 보임은 한갓 마음의 탓이랄까/오늘은 외줄기 길을 낙엽마저 묻었고나. 뻐꾸기 너무 울어싸 절터가 무겁더니/꽃이며 잎이며 다 지고 산 날이 적막해 좋아라/허전한 먹물 장삼을 입고 숲을 거닐자. 오가는 윤회의 길에 승속이 무에 다르랴만/사문은 대답이 없고 행자는 말 잃었는데/높은 산 외론 마루에 기거하는 흰 구름. 인경은 울지 않아도 산악만한 둘레이고/은혜는 뵙지 않아도 달만큼을 둥그느니/문득 온 산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노메라. -
    시비 앞을 지나던 많은 행인들이 시비에 새겨진 시를 읽고 있었다. 이 시 지으신 분이 바로 이 분이라 했더니 모두 우르르 모여들며 사진을 찍자고 야단이다. 그때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던 건 그들만의 행운이 아니라 우리들의 행운이기도 하다. 선생은 모든 소장품을 직지사에 맡겼다고 했다. 직지사에서도 문학관을 지어 후손들에게 전하겠다고 약속 했다. 훗날, 직지사는 ‘백수 문학관’을 지어 이 약속을 지켰다. 이로써 백수 선생은 생존 시인으로 고향에 자신의 문학관을 갖는 첫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선생과 함께 마셨던 직지사 대추차도 글만큼이나 일미였다.
    선생은 직지사나 곳곳에 시비를 세워준 김천시에 많은 빚을 졌다며 글로 답하고 싶어 하셨다. 그 중에 하나가 김천 시민 탑에 새겨진 글이다.
    - 우리들의 고향은 우리들의 과수원이다. 우리들은 과수원의 과목이며, 원정이며 또한 파수꾼이기도 하다. 두 다리로 살찐 땅을 밟으면 젖줄처럼 자양이 오르고, 두 팔로 푸른 하늘을 휘어잡으면 뜨거운 태양이 손끝마다 열린다. 우리들은 제 가끔의 세월에서 제 가끔을 꽃 피우고 제 가끔을 열매하여 마침내 ‘조국’이란 바구니에 빛나는 과일로 담겨져야 한다. -
    이 글은 오가는 길손의 발길을 잡고 눈길을 잡아 다시 한 번 향토사랑, 조국 사랑을 위해 다짐하게 한다. 선생 스스로 이렇게 살아오신 분이고 또 살아가실 분이다. 그러면 나는 나를 열매하여 ‘빛나는 과일’로 담겼는가. ‘조국’이란 이름 앞에 울어본 적은 있어도 ‘빛나는 과일’인지는 자신할 수가 없었다.
    청도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김천 박물관과 백수 선생의 생가, 그리고 선영을 돌아보았다. 선생이 생각에 잠겨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곳은 집 앞 작은 개울가였다. 옛날에는 물이 철철 흘렀다며 겨울날 시린 물에 어머니가 김장 배추를 씻으셨던 곳이라 했다. 거기도 자그만 시비 하나가 개울과 함께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우리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청도로 향했다.
    1500 여 명의 청도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이호우 문학제’에서 뜻밖에도 <민영 수필>로만 만났던 민영 선생을 직접 뵙게 되었다. 하얀 동정이 눈부신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백수 선생과 단상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막 상해에서 돌아온 임정요원 같았다. 민영 시인은 이호우 시인의 <바람벌>을 예쁘게 낭송하는 여류 시인의 모습에 비위가 틀렸던 모양이다. 당신 축사 시간이 되자, <바람벌>이 어떤 신데 그렇게 읽느냐며 질책하더니 비장한 목소리로 고쳐 읽었다.
    -그 눈물 고인 눈으로 순아 보질 말라/미움이 사랑을 앞선 이 각박한 거리에서/꽃같이 살아 보자고 아아 살아 보자고. 욕이 조상에 이르러서도 깨달을 줄 모르는 무리/차라리 남이었다면, 피를 이은 겨레여/오히려 돌아앉지 않은 강산이 눈물겹다. 벗아 너 마자 미치고 외로 선 바람벌에/ 찢어진 꿈의 기폭인 양 날리는 옷자락/더불어 미쳐보지 못함이 내 도리어 섧구나. 단 하나인 목숨과 목숨 바쳤음도 남았음도/오직 조국의 밝음을 기약함에 아니던가/일찍이 믿음 아래 가신 이는 복되기도 했어라. (바람벌 전문) -
    시도 힘이 있었지만 피 끓는 듯한 민영 선생의 낭송에 청중은 숨을 죽였다. 이 시는 이념으로 갈라져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며 이호우 시인이 피 토하듯 쓴 시라고 했다. 육이오 직후 흉흉한 시절에 쓴 시라, 이 시 때문에 반공법에 저촉되어 잡혀가기까지 한 시라고. 시를 낭송할 땐, 반드시 이런 시 배경까지 알고 해야 한다며 강조했다.
   <민영수필>을 통해 시 한 수 글 하나에도 엄격하신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대단했다. 공식 석상에서 그토록 비분강개하는 선생을 보며 이 분은 분단 조국을 울고 있는 영원한 독립투사구나 싶어 가슴이 떨렸다. 행사가 끝난 뒤, < 민영수필>을 잘 읽었다며 인사를 했다.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는 선생은 아까와는 또 다른 모습의 다감한 시인이며 수필가였다. 정말 귀한 만남이었다.
    청도에서도 그렇고 울산에서도 그렇고, 시조계의 큰 스승을 따르는 마음들이 대단했다. 백수 선생이 가는 곳마다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근교에 흩어져 사는 시인들이 한달음에 왔다.
    “앞에 놓인 백지 한 장이 허실이라면 우리들의 사유는 생백이다. 우리들은 이 텅 빈 태허에다 마흔 다섯 자 안팎으로 집을 지으려는 도편수이다.” 무슨 큰 스님 법문 같은 백수 선생의 시조 강의에 모두들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문에 약한 나는 좀 어렵다 싶었지만, 알아듣는 시늉을 하며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시조를 쓰려면, 한문 공부와 한시도 곁들여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울산에 모인 시조 시인들 중, 우치 손태원 서예가는 백수 선생이 자선해준 시조 아흔 아홉수를 붓글씨로 써서 병풍을 만들 거라며 그 작업이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놀라웠다. 시를 짓는 것도 ‘도편수’지만, 쓴 시를 붓글씨로 옮겨 써서 아흔 아홉 칸의 집을 짓는 것도 훌륭한 ‘도편수’다. 그런 큰 뜻을 가지고 고된 작업을 달게 하고 있는 손 서예가가 다시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울산 시조 시인들과 울기 등대로 나서는 길에, 손 서예가가 붓글씨 한 점을 선물했다. 백수 선생의 <난보다 푸른 돌>이었다. 잎맥이 군데군데 섞인 한지에 쓴 <난보다 푸른 돌>은 시조도 절창이요 붓글씨도 명품이라 가보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 옛날엔 칼보다 더 푸른 난을 내가 심었더니/이제는 깨워도 잠 깊은 너 돌이나 만져본다/천지간 어여쁜 물소리 새소리를 만져본다. - 아, 백수 선생은 바로 이런 분이었다.
    울산의 12 비경 중의 하나인 울기등대 대왕암에 오르니 아찔했다. 발밑은 뾰족 바위 낭떠러지요, 허연 파도는 날 삼킬 듯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파도야,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는 가고 없는데 그리움에 이렇듯 몸부림치면 파도야 난 어쩌란 말이냐. 나도 파도에게 묻고 싶었다. 먼 바다는 빛의 양에 따라 색을 바꾸어 가며 뒤척이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하얀 울기 등대를 호위하며 둘러 서 있는 해송들이었다. 키가 얼마나 큰 지 하늘을 찌를 듯했고, 빽빽하게 들어 선 것이 창을 들고 선 군사와도 같이 늠름해 보였다.
    해송 그늘 아래 해풍을 맞으며 즉석 시조 강의 까지 들으니 이런 풍류가 따로 없구나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삶은 고동이 보이길래 우리는 몰려가 한 봉지씩 샀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버리고 갔는지, 발밑은 아예 고동 껍질 길이다. 쪽쪽 빤 고동 껍질을 버려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동심으로 돌아가 즐겁기만 했다. 고동 길에 자박거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아까부터 궁금했던 말을 선생께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 저 해송은 키가 클 만큼 다 컸는데 이젠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말하자면 성장을 멈춘 해송들의 존재 의미가 궁금했다. 어찌 보면 엉뚱한 질문이지만, 나에게는 궁금한 문제였다. 선생의 대답은 한 줄 시조보다 더 간단명료했다.
    “제 ‘구도’를 그리며 살고 있지.”
    “구도?” 나는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구도’가 이토록 심오하고 아름다운 말일 줄이야. ‘구도’란 무언가. 주변과의 조화가 아닌가. 구도가 잘못 되면 모든 게 기우뚱하게 기울어진다. 거리와 크기가 맞아야 하고 무게까지 맞아야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기 위해 해송 하나도 제 구도를 그리며 살고 있다니. 해송도 선생님도 다시 보였다.
   그 순간, ‘여일‘이 얼마 없다는 선생 자신이 구도를 그리며 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 당신 자신도 ‘제 구도를 그리며’ 살고 계시는 군요.’ 속으로 혼잣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더워왔다. 선생은 어쩌면 ‘구원의 길’을 ‘그리며’ 남은 날들을 채비하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한 여행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제 구도를 그리며 열심히 살아갈 게요.’ 돌아가서도 부치지 못할 마음의 엽서를 띠우며 살포시 선생님 팔짱을 꼈다. 비행기 트랩에 오른 뒤에도 ‘구도’라는 말은 긴 여운을 남기며 따라왔다.
    마음 한 자락을 펄럭이게 하던 울산의 해풍과 해송이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추석. 달 더욱 밝으니 그리움도 두둥실 떠올라, 깃털 가벼운 새가 되어 다시 길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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