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2020.03.12 09:33

서경 조회 수: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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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나톨로지란 말도, 싸나톨로지스트란 말도 처음 들었다.
싸나톨로지는 죽음학을 일컫고, 그것을 전하는 사람을 싸나톨로지스트라 부른다고 한다.
죽음학이라, 참 신기한 학문이다.
‘이제 남은 대사는 생로병사 중 ‘사’만 남았군!’하고 나도 종종 생각에 잠기곤 했다.
어떻게 하는 게 ‘잘 죽는일’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대다 얻은 대답은 ‘잘 살다 가는 거’였다.
관심 갖는 일이라, youtube에 나오는 임병식 싸나톨로지스트의 강의에 귀를 쫑긋했다.
호스피스가 환자에게 죽음을 좀더 편안히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면, 싸나톨로지(thanatology)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웰다잉 (well-dying)으로 이끄는 일이라 한다.
그러니, 자연히 죽음을 앞둔 환자 뿐 아니라 죽음을 잊고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강의였다.
죽음으로부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유한한 생명체로서 삶을 인식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학문, 싸나톨로지.
고상하게 말하면, 인문학과 의학, 신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들이 융합된 ‘죽음영성학’이다.
듣고 보니, 죽음영성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 생각과 일맥상통했다.
잘 죽는다는 건 잘 살다 가는 것.
여기서 ‘잘’이란 부사는 각자의 처지나 환경 생각에서 극히 주관적이라는 사실이다.
강사님에 의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가느냐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단다.
생각해 보면, 나도 흔하게 썼던 말은 아닌 것같다.
게다가, 이 세 마디를 한 사람에게 다 써 본 것은 단 한 번 뿐이다.
그것도 삼십 년만에 겨우 써 본 기억이 난다.
정말 이 말을 전하지 않고 죽으면 한이 맺혀 눈을 못 감고 갈 것같은 절박함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함이었고, 성숙하지 못했던 지난 날의 유아적 태도에 대한 자성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연락이 닿아 이 말을 전하고 나니,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정말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숙제 하나를 풀고 가는 듯했다.
상대방이야 생각지 못한 말이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말이었을 게다.
내가 이 말을 전하기 위해 만남을 얼마나 간절히 바래 왔는지 그는 모르리라.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 말을 전하고 갈 수 있어 다행이다.
그것만으로도 내 삶이 그리 메마르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인다.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고 미안할 것도 없다.
정말 사랑 받았다는 확신이 없으면,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고 절실히 고마워할 일도 없으리라.
흔히, 여기 미국 사람들이 쓰는 “Thank You!" 라는 말이나 “Sorry!"란 말과는 어감이나 깊이가 질적으로 다르다.
아마도, 다시 내가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면 그건 하나밖에 없는 내 딸에게 주고 갈 유언이지 싶다.
쉽게 남발할 수 없는 고귀한 말.
많이 쓰라고 하지만, 심장으로부터 울려오는 이 말을 전해 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인생이 각박하다는 말도 되고, 또 한편 그만큼 고귀한 말이란 의미도 되겠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유언을 하듯, 입속으로 가만히 연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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