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 - 키다리 아저씨

2022.03.31 22:19

서경 조회 수:16

키다리 아저씨.jpg

성화를 주로 그리는 화가가 있다.
심순화.
그녀의 그림은 따뜻하고 부드러워 늘 마음에 평화를 준다.
미소짓게 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고,
심상에 크담한 느낌표 하나 찍게 해 준다.
선한 영향력이다.
때로는, 성당 제대나 건물 내부를 성스럽게 꾸며주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큰 프로젝트를 맡을 때면, 아예 바깥 세상과 단절한 채 몰입 상태로 작업에 빠져든다.
혼이 깃든 작품이 탄생된다.
아니,영육혼의 혼합물이 깊고 높은 영성으로 빛난다.
그런 그녀도 가끔은 힘들고 지칠 때가 있나 보다.
어느 날, 그녀는 꿈을 꾸었다.
짐 보따리를 들고 힘겹게 높은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다.
거의 다 올라 갔을 즈음, 힘이 빠져 더 이상 오를 수 없었다.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도와 달라고 청했다.
그때였다!
키 큰 아저씨가 나타나 보따리를 들어 주었다.
끝까지 올라가자마자 그녀는 쓰러져 버렸다.
키 큰 아저씨는 조용히 미소를 띠우며 떠나 가셨다.
오늘의 그림은 그녀가 꾼 꿈을 기억해 두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그녀는 어려울 때마다 예수님께 도움을 청한다고 한다.
그럴 때면, 늘 예수님 앞에 어린 아이가 된단다.
이 그림을 보며, 나는 그녀가 한 두 가지 행동에 느낌표가 찍혔다.
‘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는구나!’
‘아, 그녀는 짐 보따리를 ‘선듯’ 예수님께 드리는구나!’
이 두 가지 태도가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태도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반성했다.
나는 과연!
어려울 때마다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는가?
그리고 나의 근심, 걱정, 슬픔, 아픔…
가득 구겨담은 보따리를 ‘선듯’ 주님께 맡겨 드렸는가?
바로 이 태도에서 나는 그녀에 비해 신앙심이 태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그녀의 작품이 깊은 영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만했다.
또 하나, 오늘 배웠다.
증진하자!
신앙도 식물과 같아서 흙도 고르고, 통기도 시키고, 물도 잘 주고, 햇볕도 자주 쐬어 줘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녀의 그림을 보며 이런 ‘기특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선한 영향력이다.
나도 그녀처럼 글로써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지만 언감생심, 역부족이다.
필력의 문제가 아니라, 영성의 문제임을 새삼 알겠다.  
 

(그림 : 심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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