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따뜻한 슬픔

2022.04.17 22:24

서경 조회 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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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켄터키 주 포트녹스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이다. 운전 중, 사거리에서 잠시 멈춘 애런은 차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사이로 기이한 모습을 보았다. 군복 차림의 한 군인이 온몸으로 폭우를 맞으며 경례를 붙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디를 보고 경례를 하고 있는 것일까?’호기심 많은 애런은 차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자세히 보았다. 길 저편에 경찰차를 앞세운 장례 행렬차가 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군인이 차에서 내려 경례를 올리고 있던 중이었다.
   쏟아지는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며 미동도 없이 경례를 붙이고 있는 군인. 분명 돌아가신 분이 어떤 분인지 가족은 또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일 게다. 애런의 가슴에 거센 파동이 일었다.
   ‘그럼에도, 저 폭우 속에서 홀로 경례를 올리고 있다구?’애런의 몸도 생각할 겨를 없이 어느 새 차도에 내려 함께 비를 맞고 있었다. 수줍음 많은 애런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돌아오는 내내 애런의 눈앞에 조금 전의 군인 모습이 어른대고 차고 올라오는 감동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오자마자, 애런은 SNS에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올렸다. 파장은 컸다. 쇼킹한 뉴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도 이 작은 일은 적지 않은 떨림을 주었다. 이 소식은 바람 따라 전해져 그 군인 귀에까지 가게 되었다.
   폭우 속에 경례를 붙이고 서 있던 군인은 테네시 주 방위군 육군 대령 잭 우스레이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그날의 심경을 이렇게 말했다.
   “폭우까지 내린 그 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의 슬픔은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그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저도 무언가 했어야 했습니다.”그리고 그는 이어 말했다.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주위를 천천히 돌아 보십시오. 우리는 항상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그의 목소리는 나즈막했지만 울림은 컸다.
   ‘Slow Down’그 말이 나에게도 꽂혔다. 종종걸음을 쳐도 우리네 삶이란 게 보통 거기서 거기다. 삼 시 세 끼 진수성찬에 금수저로 먹는 것도 아니다. 설령, 금수저로 먹는다 한들 어느 한순간에 건강이 무너지면 한 술도 뜨지 못하는 게 우리네 삶이다.
   To Have에서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 이제 To Be의 삶으로 향해 가는 길. 흩어져 있던 별들도 하나 둘 모여 은하수를 이루고, 야생화도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나 군집의 아름다움을 만든다.
   더불어 숲. 신용복 선생이 주창했던 것처럼 우리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함께 숲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유튜브에 올라온 짧은 영상을 보며 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다.
인생은 가지치기다. 큰일이나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이왕이면 의미있는 일에 마음을 쏟고 싶다. 기쁨은 함께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 반감된다. Slow Down,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는 거다. 잭 우스레이 대령의 말처럼 분명히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게다.

   조석으로 찬 바람 불어 온기가 더욱 필요한 계절이다. 인생을 넉 자로 줄이면 생로병사. 한 고비 한 고비 넘길 때마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었다. 그럴 때마다, 곁에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네 삶도 수분 빠진 마른 잎이 되었을 게다.

   밟으면 여지없이 부서지는 낙엽. 바람이 부는대로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 돌아가야할 본향도 잊은 채 헤매는 가련한 인생을 살다 갈지도 모른다.

   결국, 삶을 산다는 건 정 주고 받다 가는 일. 믿는 사람들이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산다고 당당하게 말할 테지만, 범인인 나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정을 최고 우위에 두게 된다.

   슬픔 중에도 따뜻한 슬픔이 있다니 얼마나 큰 위안인가. 더욱이 시인의 말처럼 그 슬픔조차 가질 수 없어 반대편에 서서 서성이는 사람들도 많다니 이 또한 얼마나 슬픈 일인가. 옆에 있던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까지 아무 것도 몰랐다면 우리도 간접적 타살자가 아닌가.

   조금은 따스한 눈길과 말로 위로해 줄 수는 없는지 주변을 살펴 봐야 겠다. 유투브 영상 말미에 잠깐 스쳐간 조병준 시인의 <따뜻한 슬픔> 전문을 찾아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따뜻한 슬픔/조병준

 

     어떤 슬픔은 따뜻하다
     슬픔과 슬픔이 만나 그 알량한 온기로
     서로 기대고 부빌 때, 슬픔은 따뜻해진다
     따뜻한 슬픔의 반대편에서 서성이는 슬픔이 있다
     기대고 부빌 등 없는 슬픔을 생각한다
     차가운 세상, 차가운 인생 복판에서
     서성이는 슬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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