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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양준일을 읽는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어지간한 이슈가 다 덮혔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슈가 맨에 소환된 ‘양준일’ 스토리로 한국은 후끈 달아 올랐다.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50대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20대의 몸매와 녹슬지 않는 그의 퍼포먼스는 놀라움을 넘어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그러나 사람을 더 감동시킨 건, 노래와 춤이 아니었다. 산소같이 해맑은 미소에, 해탈한 큰 스님같은 대화였다.
   그의 대화는 단순하고 가벼웠으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의 저 밑바닥에 닿아 있었다. 그물이나 낚시로는 잡을 수 없는 금어, 심해 밑바닥까지 직접 내려가지 않으면 만질 수도 딸 수도 없는 명언들이 나왔다. 그것도 의도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냥 생각한 바를 툭툭 던지는 평이한 말투였다.
    사람들은 돌연변이 중에서도 별종인 이 변종에 열광했다. 마치, 어느 별나라에서 온 어린 왕자를 보듯 했다. 지구촌 떼가 한 올도 묻지 않은 무공해 인간 앞에서 사람들은 완전 눈꺼풀이 벗겨졌다. 사람들은 그를 통해 허기졌던 인간미를 보았고, 아주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동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배척했던 옛날에 대해 아주 아주 미안해 했다.
   30년 전, 그는 연예계의 비정함과 재미교포 가수에 대한 배타와 퍼포먼스에 대한 낯섦의 거부로 모든 걸 잃고 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나름 최선을 다 하고 노력했지만 어찌할 수 없는 벽, 그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실상, 그는 물 한 방울 흙 한 줌 없는 그 절망의 벽을 손톱이 닳고 피멍들도록 기어 올랐다. 그럴 때마다 새 담쟁이 잎은 누군가에 의해서 똑똑 뜯겨 나갔다. 끝내는, 출입국 관리자로부터 “너 같은 애가 한국에 있는 게 싫어!”라는 모진 말을 듣고 비자 연장을 거부 당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 이후의 삶은 운명의 휘둘림에 롤러코스트를 타야 했다. 잘 나가던 영어 강사도 단칸방 결혼 생활과 더불어 학부형으로부터 거부 당하고, 상승세를 타던 옷장사는 IMF로 접어야 했다.
   나이 들어 시작한 미국 생활은 더 가혹했다.그를 지하방보다 더 낮은 ‘바닥’에 드러눕게 했다. 한 줄기 빛도 들지 않는 절망이요 ‘낙담’이 짓눌렀다. 운명의 여신은 그의 편에서 아주 아주 멀어지는 듯했다.
   그는 무릎이 빠지도록 일했고 매일 냄새나는 음식 쓰레기를 버려야 했다. 사랑하는 아이와 아내를 위해서 뼈가 부서지도록 일했다. 쓰레기를 버리며 연예인으로서의 환상과 가수로서의 꿈을 함께 버렸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음악에 대한 갈망과 현실의 괴리에 그는 참 많이도 울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버리면서 비워가는 작업. 그것은 평범한 일상이 되었고 생활 습관이 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비워진 자리에 공간이 생기고 그 스페이스엔 새로움으로 채워졌다. 그의 겸손과 긍정적 마인드는 육화되어 마치 과일에 과즙이 밴 듯했다.
   이런 그를 한국에서 간간이 불러 냈다. 표현은 정중했으나,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의 일상에 균열이 오기 때문이다. 데뷰를 하고 방송 활동이란 활동은 다 했음에도 차비조차 받지 못했던 연예계 생태를 생각하면 더더욱 되돌아 가고 싶지 않았다. 그건 이미 옛이야기요, ‘가수 양주일’은 오래 전에 버려진 직함이었다. 그나마, 그때는 젊고 혼자라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환상적 꿈에 흔들릴 때가 아니다. 목숨보다 귀한 가족이 있고 그에겐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무가 있었다. 지금은 자기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식당 팁이라도 있어 육체는 힘들어도 마음은 행복했다.
   한 때 그는 너무나 삶이 무거워 ‘다 지우고 갈까?’하고 나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나도 지우고, 아내도 지우고, 아이도 지우고. 저 세상은 고통이 없다기에,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삶도 목숨도 참 질겼다.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 ‘그래, 이것이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 아닐지도 몰라! 더 이상 내려 갈 데가 없잖아?’ 
 
   < MAYBE!> 
 
   갑자기 그의 눈이 밝아지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 ‘희망’이란 단어가 두둥실 떠올랐다. 그토록 무겁게 짓누르던 삶의 무게가 단 하나의 단어 ‘MayBe'로 인해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그 날 이후, 그의 발걸음도 무대 위의 스텝처럼 가벼워지고 몸의 아름다운 춤선도 되살아났다. 진솔한 톤으로 펴낸 양준일의 스토리 북, <MayBe>.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금 한 마디의 말, 한 단어가 주는 힘을 생각한다. 사랑도 결심이고 미움도 결심이다. 살아 보겠다는 것도 결심이다. 그래서 옛사람들도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 했나 보다. 이 ‘마음먹기’가 바로 결심 아닌가. 단어 하나가 결심을 불러 오고, 그 결심은 어제의 절망적 삶을 오늘의 희망적 삶으로 바꾸어 준다.
   이 글을 읽는 나의 벗이여! 당신의 삶을 바꿔준 한 마디 혹은 한 단어를 가슴에 지니고 있는지요? 그렇다면, 그 한마디는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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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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