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제니를 처음 만난 날

2020.04.28 16:08

서경 조회 수:12

제니를 처음.jpg



   제니는 요즘 내게 생인손처럼 아프다. 암투병을 하면서도 생글거리는 미소는 나를 눈물짓게 한다. 그녀를 만난 게 15년은 더 됐지 싶다.
  오렌지 글사랑에서 수필 강의를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90년 초, 수필에 매료되어 있던 나는 수필을 논하는 자리라면 지옥 입구까지도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수필 전문 잡지도 없었고 수필을 가르치는 곳도 없었다. 급한 놈 우물 판다고, 책과 함께 인연을 맺은 한국 유소장님께 SOS를 쳤다. 정기구독 하고 싶으니, 수필 전문 잡지 좀 보내 달라고.
  한 두 권 정도 샘플로 올 줄 알았는데, 아예 문화 공보부에 등록된 모든 수필 전문 잡지를 보내 주셨다. 장장 12권. 아마, 유소장님은 내가 ‘서탐’이 있는 줄 몰랐나 보다. 전부 정기구독을 하고 싶다며 얼마냐고 물으니, ‘수필 작가’ 하나 길러 보자며 본인 돈으로 다 정기구독 신청을 해 주셨다.  
  내친 김에, 수필 대가 김태길 교수님께 국제 전화를 올렸다. 수필 통신강의를 해 주십사하고. 그랬더니, 본인은 <계간수필> 발행 준비 중이라며 윤모촌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다.
  윤모촌 선생님은 잔글씨는 못 볼 정도로 시력 때문에 고생하고 계셨다. 그럼에도 내 수필 열정이 갸륵했는지 우편강의를 허락해 주셨다.
  나와 동료 세 명의 작품을 2주마다 모아 보내면, 그 원고를 읍내 인쇄소로 가서 11x14 사이즈로 확대해서 읽고, 붉은 줄 위에 자상한 설명을 붙여 다시 보내 주는 식이었다. 선생님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못할 때까지 우리는 일년 반을 그렇게 공부했다.
  나는 오렌지 글사랑 모임 강의를 준비하며 윤모촌 선생님이 수없이 붉은 줄을 그은 내 초기 작품 원고를 챙겼다. 빈 공간에는 왜 그렇게 쓰면 안 되는지, 반대로 왜 그렇게 써야 하는지 설명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너무 붉은 선을 많이 그어 미안하다는 육필 편지도 함께 넣었다.
 그 다음으로 준비한 것은, 생활 수필의 진수였던 박문하의 <잃어버린 동화>였다. 그 수필을 통해, 이론에 갇혀 고급스런 문학수필을 추구하던 내 눈이 개안을 했기 때문이다.
  수필에 ‘생활’이 빠지면 안된다는 말에 나는 공감했다. 그 책을 읽고 난 뒤, 격조 높은 수필보다는 따스한 수필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수필을 일러 ‘여백의 문학’이라고 한 사람이 바로 박문하였다.
  나는 수필 강의를 이론적으로 풀고 싶지 않았다. 그건 이론서 몇 권을 보면 될 일이었다.이론서는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았다. 날 긴장하게 하고 경직되게 했다. 나는 그런 천편일률적인 이론서들이 지겨웠다. 그건 한 두 권만 참고로 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내 경험을 나누고 싶었고 수필에 대한 내 순정과 열정을 나누고 싶었다. 붉은 줄 투성이면 어떠랴! 알콜 중독자도 내가 알콜중독자임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 비로소 그 치유가 시작된다. 내 작품이 난자를 당해도, 발전하려면 서툼을 부끄러워 하기 보다 기쁨으로 달게 받고 전진해 가야 한다.
  그때 나는 이미 10년 정도 수필을 쓴 사람이지만, 여전히 배움이 고프다는 것. 초심의 열정을 잃지 않으려 윤모촌 선생님의 붉은 선 가득한 이 원고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 수필에 대한 날것들을 함께 나누려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수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안개처럼 강의실 안을 휘감았다. 무대와 마이크 공포증이 있어 앉아서 하겠노라고 양해를 구할 정도로 처음엔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어느 새 나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교생 실습 대표로 나선 이후, 그렇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함께 나눈 기억은 없지 싶다.
  박문하의 <잃어버린 동화>도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내가 왜 $5 남짓한 이 문고판에 매료됐는지 설명했다. 하드 커버에 멋진 디자인, 편집이 아니어도 글의 힘만 있으면 어디서나 밤하늘의 일등성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것은 상허 이태준의 생각이고 내 신념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 좋은 책이 절판되었다고 전하자, 오렌지 글사랑 대표 정찬열 시인은 내 책을 빌려주면 카피해서 회원들과 나누겠노라고 제안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어렵게 가지게 된 두 번째 책이다. 첫번째는 버지니아 변완수 선생이 선물로 보내주신 소장본이다. 책이 너무 좋아 대모님께 빌려 드렸다가 그만 돌려 받지 못했다.
  두 번 째는 출판사인 범우사에 연락했다가, 여분이 없다며 윤사장님이 개인 소장본을 직접 보내주신 거였다. 잃어버리면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귀한 책이다.
  그러나 나처럼 수필을 사랑하는 수십 개의 눈망울이 반짝이며 날 보고 있는데 어쩌랴. 오늘은 수필에 대한 순정과 열정을 나누기 위해 온 자리. 나는 조심스런 당부를 하며 허락했다.
  그 자리에 오늘의 주인공, 제니가 있었다. 강의를 끝내고 일어서니, 몇몇 사람들이 다가 왔다. 그 중에 유난히 예쁘고 표정이 밝은 여인이 다가와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며 말했다.
  - 선생님, 오늘 강의 너무 좋았어요! 박문하 선생이 바로 우리 옆집에 살았어요!
  - 뭣이라?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내가 <잃어버린 동화>를 읽고 작가 연보를 봤을 때는 이미 20년 전에 작고하신 분이었다. 뵙고 싶은 그 작가와 이웃해 살았다니! 나는 그녀 손을 더 힘차게 잡았다.
  너무나 큰 반가움에 마치 작고 수필가를 살아서 만나는 감격을 느꼈다. 이런 연유로, 그날 수강생 중에 제니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제니를 몇 년 못 본 사이에, 암투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겨우 위험한 고비를 넘겼지만, 계속 투병생활을 해야 한다고 전해 주었다. 나는 제니 소식에 귀를 쫑긋거렸다. 그러면서도 지역적으로 너무 멀리 살아 만나진 못했다. 아니, 환자는 자기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마음을 알기에, 우정 만남을 피했는지도 모른다.
  제니를 뜻밖에도 몇 년 전 산악회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났다. 참석자 이름표를 찾느라 안내자와 이야기를 하는 중, 누군가 뒤에서 와락 끌어 안으며 소리쳤다.
  - 어머!  지희선 선생님!
   나는 산악회 회원은 아니었지만, 축시를 낭송해야 하는 소임이 있어 참석했던 자리였다. 그런데 거기서 너무나 뜻밖에도 깡충깡충 뛰며 반가워 하는 제니를 보게 되었다.
  - 어머, 세상에! 제니!
  나도 너무나 반가워 손을 마주 잡고 같이 뛰었다. 하지만, 너무도 멋지게 차려입고 나타난 제니에게  건강 상태를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제니는 춤도 추고 유쾌하게 놀았다.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고 흐뭇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해후를 반가워 하며 전화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그 이후로 몇 년이 지났건만, 제니가 아직도 투병 중이란다. 완전히 완치된 줄 알았던 그녀가 무슨 일로 투병 중에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 어렵다는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니 너무나 가슴 아프다.
 내가 제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아, 맞아!  제니는 글을 좋아하지. 마침, 코로나 사태로 써 놓은 작품들을 다듬고 있으니 글이라도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제니는 너무나 기뻐하며 내 글을 곱씹어 읽고 있다. 리액션 답글도 최상이다. 언젠가부터 언니라는 호칭이 더 친근해졌나 보다. 나도 동생처럼 친밀해져 낮춤말로 변했다.
  - 지희선 언니! 언니 글 읽으며 행복합니다. 저도 언니 따라 들판을 달리며 오랜만에 가슴이 뻥! 뚫리고 방콕하며 지내던 답답함이 휘리릭 ~ 날아 갔어요. 언니랑 하루를 잘 보낸 느낌이에요. 반갑고 고마워요. 항상 행복하세요.
  - 제니! 언제나 내 팬이라는 것, 내 맘 속에 간직해도 될까?
  - 오브 코오스죠! 나는 언제나 언니의 영원한 팬이에요! 첫날 첫눈에 언니의 명강의에 반했고, 언니의 글에 반했고, 따스한 인간미에 반했어요. 아직 투병 중이에요. 반갑고 고마워요!
  푸르디 푸른 하늘은 푸르러 눈물나게 한다. 제니의 미소는는 너무 해맑아서 눈물짓게 한다. 제니야! 훌훌 털고 얼른 일어나! 우리 기차 타고 오션 사이드 비치로 놀러 가자! (2020.4)


회원:
4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1
어제:
4
전체:
1,317,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