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혼자 보기 아까운 달

2020.06.07 21:00

서경 조회 수:23

 

혼자 보기 아까운 달2.jpg

 

 달이 밝다. 속살이 보일 정도로 밝은 달이다.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만 보이는 게 아니라, 방아 찧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맑고 밝고 탐스런 달. 혼자 보기 아까운 달이었다. 방금 나를 배웅해 준 제인도 혼자 보기 아까워 다시 전화 했나 보다.
  - 언니! 달이 너무 예뻐! 참 밝아!
밝은 달을 보면 달이 예쁘다고 전해 주는 마음. 그 마음이 달보다 예뻐서 나도 차창 밖 하늘을 보았다.
 -정말 그러네? 와- 달이 참 밝고 크네? 오늘이 보름달인가?”
 - 몰라. 언니 운전 조심하고 잘 가! “
  이민 생활 37년. 나도 음력 날짜를 모르고 산 지 오래다.
 - 그래, 알았어! 고마워!”
  정서가 통하고 느낌이 통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정인이다. 꼭 사랑하는 사람만이 정인일까. 달이 밝으면 밝다고 알려주고 싶은 사람. 그런 한 사람 쯤은 품고 살아도 좋겠다.
   5번 프리웨이를 타고 오는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이 따라 온다. 내면의 속삭임. 너도 전화해야지? 달이 밝다고. 운전 시간은 35분이나 남았다. 수다 뜰 시간은 충분하다.
  전화를 했다. 혼자 보기 아까운 달을 볼 때마다, 나는 그에게 전화한다. 그때마다 그는 ‘반응’을 보였다. 만약, 첫 번째 전화에서 ‘무반응’을 보였다면 두 번 다시 전화하지 않았을 게다. 오늘 역시 그는 반색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 아, 그래요? 나가 봐야지!”
  그는 창 쪽으로 가지 않고 우정 밖으로 나갔다.
  - 어? 여긴 달이 안 보이는데요? 어디 있지?
  - 안 보여요? 정말?
  내 눈 앞엔 달이 훤히 보이는데 어인 일로 거긴 달이 없나. 오호 통재라. 벌써 세 번 째 그는 같은 시간에 달을 못 봤다.
  - 네! 안 보여요! 신발 신고 뒷문으로 나왔는데... 산이 막혀서 그런가?”
  아마 뒷문 쪽으로 나오면 하늘이 더 잘 보이는 모양이다.
  - 아! 아까워라! 저렇게 좋은 보름달을 못 보다니! 그래도 거긴 시골이라 별은 쏟아지죠?”
   달이 없으면 별이라도 봐야지.
  - 아, 그러문요!  여긴 진짜 별이 막 쏟아져요!”
  그의 목소리가 활기 차다.
  - 아, 좋겠다! 그래도 저렇게 밝은 달을 못 보다니 너무 아쉬워요!
  - 그러게요!
   그는 참 순수한 사람이다. 달처럼 밝고 맑은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그랑 친구가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그랑 친구여서 좋다. 아마도 내가 쓴 글을 읽고 ‘반응’을 보여서 좋았던 거같다.
  - 감성이 어쩌면 그렇게도 소녀 같으세요?
  - 아, 제가 좀 그래요. 철이 없나 봐요... 하하!
  - 그거하고는 틀리죠!
  첫대화는 그렇게 시작된 것같다. 그를 단체 모임에서 만난 게 5년 전. 자주 만나거나 굳이 따로 연락할 일이 없음에도 몇 번의 개인 만남을 통해서 인품을 가늠할 수 있었다.
  나보다 어리긴 하지만, 그도 육십이 넘었다. 하지만, 그의 때 묻지 않은 성품은 영락 없는 소년이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따뜻하게 대해 준다.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음성을 크게 하거나 낯색이 변한 적이 없다.
  여러 사람을 대하는 회장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도 많고 욕 들을 일도 많을 터. 하지만, 언제나 미소 띤 얼굴에 사람 좋은 교회 오빠다. 나는 그의 절대적 지지지요 응원 대원이다. 그도 내가 편했는지, 모임 수장의 어려움을 토로 하던 중 “친구되어 주실 거죠?” 하고 물어 왔다. 난 두 말없이 예스라고 답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나누며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 이것만큼 신나고 좋은 일이 있을까. 남녀간의 사랑엔 까다로운 조건이 따를 수 있지만, 친구는 우정어린 마음 하나 있으면 족하다. 나도 속마음을 얘기하고 그도 속마음을 얘기한다. 우리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만난다.
  통 연락을 안 하고 있다가도 불쑥 전화해서 ‘달이 밝다고. 달 좀 보라’고 해도 날 황당한 여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본다. 그는 마음으로 ‘반응’하고 ‘행동’으로 표시한다.
  나는 이런 ‘동사의 삶’을 사랑한다. 따스한 마음과  동사의 삶이 어우러진 사람이 좋다. 둘 중에 하나만 빠져도 날 섭섭하게 한다. 그는 바로 이 두가지를 다 갖춘 사람이다. 이게 바로 그가 가진 덕목이요 호감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내 감정을 수용하고, 공감대 형성을 해 주는 사람을 누가 마다하랴.
  오래간만의 통화라, 지지부진한 그의 사랑 얘기를 꺼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어떻게 좀 해 봐야 겠어요!” 한 지가 벌써 3년째다. 무얼 어떻게 했는지 후속 보고가 없다. 그렇게 또 새 해 2020년를 맞은 그다.
  진도는 좀 나갔느냐고 물었다. 그는 여전히 답보 상태라고 했다. 마음에는 들지만, 그 여인을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 망설여진단다. 저 쪽 여성 역시 처분만 바라는 수동형이란다. 아이구, 답답씨들!
  응원해 주고 싶었다. 여자는 돈보다 절 사랑해 주는 마음 하나 있으면 된다고. 오직, 그거 하나 바라보고 결혼하는 거라고. 돈이 없어도 좋은 목소리가 있으니 전화 한 통이라도 해 주라고. 함께 듣고 싶은 음악 있으면 카톡 쳐서 보내 주고 잘 자라는 굿나잇 인사도 잊지 말라고.
  그러면 분명히 진도가 나갈 거라고. 여자는 자기를 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면 우주를 다 얻은 느낌 들 거라고. 그게 바로 여자의 행복이라고. 명품으로 치장하고 손가락이 휘어질 정도로 큰 다이야 반지를 끼고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부는 누리는 거지만, 행복은 느끼는 거라고. 제 앞도 못 가리는 주제에,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여인이 사랑 훈수를 해 주었다. 조신하게 듣고 있던 그가 한 마디 던졌다.
  - 하 참, 코로나 때문에 만나도 어디 가서 차 한 잔 마실 데도 없고...
  - 무슨 소리! 지금 바다 열려 있어요! 차는 못 들어 가도 모래밭 걸을 수 있고 파도 소리 들을 수 있어요. 얼마 전에 바닷가 갔다 왔는데 속이 뻥 뚫리더라구요?
  - 아, 그래요?
  - 네! <상록수> 문 열었어요! 도시락 주문해서 바다 보고 먹으면 재미있잖아요? 참! 생각나요? 우리 산타 모니카 비치에 가서 달 구경 하던 날?
   - 생각나죠!
   - 그때 제가 도시락 주문해서 갔잖아요. 그 집이 바로 <상록수>에요!
   - 아, <상록수> 지금 문 열었어요?
   - 그럼요!  아, 그러니까 생각난다! 그때 우리 모래밭에서 신발 벗고 밥 먹을 때, 음악도 있어야 된다며 유투브 틀고 신발 속에 전화기 꼽아 두었죠? 그게 참 로맨틱하고 인상적이었어요! 아무리 표현력 없는 분이라도 감동할 거에요. 허참! 육십 넘은 사람한테 사랑 훈수도 해 줘야 하남? 하하.
  - 넵! 알겠습니다!
  그의 대답은 호쾌했다. 그러나... 과연, 라이프 코치 말을 듣고 그대로 실천할 지는 미지수다.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달이 밝다고, 한 번 보라고, 여자가 호들갑스럽게 전화하는데, 퉁명스런 목소리로 “지가 안 밝고 우짤낀데!”해 버리면 완전 스팀 아웃이다.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이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면 머뭇대던 사랑도 자기 편이 되어 줄 게다. 상대방 처분만 바라다 보면, ‘사랑이 저만치 가~네~다.
   달이 밝으면 밝다고 전화 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뜬금없이 불쑥 전화해도 반갑게 받아 주고, 신발 ‘신고’ 뒷문으로 ‘나가’ 하늘을 ‘보며’ 달을 ‘찾는’ 최상급의 ‘반응’을 보여 줘서 행복하다. 내가 얼마나 즐거워 하는지 그는 모를 거다.
  ‘저 달 보고 우는 사람~ 저 달 보고 웃는 사라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서울의 지붕밑만 아니라,  이 곳 나성의 지붕밑에도 저 달을 보고 웃는 사람 있고 우는 사람도 있겠지.
  오늘밤은 달도 웃고 있다. 환한 달덩이 같은 얼굴로 우리도 웃어 보자. 웃다가 생각나는 정인이 있으면 전화 한 통 해 주자. 달이 밝다고. 너무 예쁘다고.
  음력 날짜를 보니 오늘이 4월 15일. 보름은 보름이다.               (2020.5) 
 
  (사진 : 제인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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