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건축에 관한 이해

2020.06.07 22:50

서경 조회 수:107


 건축 1.jpg

 

폐북에 한 사람이 떴다.
프로필에는 건축가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오래 전, fake 외국 친구를 만난 뒤론 모르는 사람은 무조건 지워 버린다.
그런데, 이 익명의 건축가가 올린 예술적 건축 사진과 한 줄 문장들이 지우려는 내 손길을 잠시 붙든다.
건축가로서 갖는 본인의 신념인지, 인용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깊이 있고 아름다운 명문들이다.
일찍이, 내 사랑하는 작가 알랑 드 보통이 건축에 관한 명쾌한 문장으로 내 영혼을 흔든 적이 있었다.
이 익명의 건축가가 올린 글도 그에 못지 않은 깊이를 지녔다.
새겨 두고 싶다.
남겨 두고 싶다.
칡넝쿨 씹듯, 잘근잘근 씹어 마지막 맛까지 맛보고 싶다.
그런 본능적 욕구를 느끼게 했다.
그가 real person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건물 사진과 깊이 있는 말들만 염전의 소금처럼 하얗게 반짝인다.
몇 줄을 옮겨 본다.
그는 건축 이야기에 앞서, 우선 인간 관계에 대한 프롤로그로 두 문장을 선사했다.
마치, 엿장수가 애들에게 던져주는 ‘맛배기 엿토막’ 같이 달콤하다. 
 
•••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을 잊고, 사람들은 당신이 한 일을 잊을 것입니다.
••• 평화가 없다면, 서로의 관계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어서, 예술적 건축 사진 한 장에 한 문장씩 얹어 시리즈로 그의 말을 이어 간다.  
맛있는 와인을 마시듯 혀끝으로 굴리며 그 맛과 향을 음미해야 하리. 몇몇 문장은 알쏭달쏭하여 더 많은 시간 속에서 그 의미를 곱씹어 보아야 할 듯하다.  
 
- 건축은 빛 속에서 조립된 형태의 정확하고 웅장한 학습 게임입니다.  
- 필요를 인식하는 것이 디자인의 기본 조건입니다.
- 많은 건축가가 중요한 것을 거부할 사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 의사는 자신의 실수를 묻을 수 있지만, 건축가는 고객에게 포도나무를 심도록 조언할 수 있습니다.
- 건축은 시간과 장소를 말해야 하지만, 시대를 초월한 갈망입니다.
- 문제를 해결하면서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끝내었을 때, 해결책이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해결책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이 말! 지금 내게 주는 심오한 로고스 같다!)
- 건축가로서 당신은 현재를 위해, 과거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본질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미래를 위해 디자인합니다.
- 의미 있는 건축물을 제공한다는 것은, 역사를 ‘패러디’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비슷한 것은 다 가짜다. 건축물은 실체다. 패러디의 대상이 아니다!)
- 건축은 실제로 복지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공간에서 기분이 좋아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대피소에 관한 것이지만, 즐거움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 건축의 가장 큰 아름다움 중 하나는, 매번 삶이 다시 시작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멋진 공간은 시간과 십자가를 형성하여 그 정중앙에 행복이란 다이아몬드를 박아 둔다! 멋진 집을 갖는다는 건 행복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과 같다.) 
 
폐북은 각종 어종이 노니는 바다다.
양질의 사람도 있고 저질 인간도 있다.
real도 있고 fake도 있다.
영혼을 살지우는 사람도 있고 갉아 먹는 인간도 있다.
그러나, 소금기 머금은 바다는 모든 불순물을 안고도 결코 썩지 않는다.
폐북 또한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유익함과 폐단이 상충하고 편리와 불편함이 공존하는 곳.
내가 너를 불러 우리를 만드는 곳.
오늘도 폐북은 ‘정’ 그리워 헤매는 사람들을 소금기 있는 수분으로 끌어 들인다.
인정이 그립고 대화가 고파 찾는 사람들에겐 황금어장인 동시에 파고가 높은 위험 천만의 바다다.
오늘 올린 글의 주인공도 얼굴은 한국인인데,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냄새가 좀 난다.
그러나 적어도 건축에 관한 글만은 충분히 가슴 뛰게 하는 아름다운 말이었다.
일찍이, 알랑 드 보통의 글을 통해 ‘건축’에 대한 형용할 수 없는 매력과 아름다움을 맛본 적이 있었다.
<P31>의 작가, 팀 하스를 통해서도 건축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접할 수 있었다.
오늘 읽은 글 또한 그에 못지 않는 울림을 주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게 하는 위대한 건축 예술이여!
사유의 금의를 걸쳐라!
내 너를 길이길이 찬양하리니, 인간 삶의 행복 절반을 다오.
오랜만에 건축에 대한 맛갈스러운 글맛을 보았다.
(2020. 5) 
 
(사진 : 왕 전)

 


회원:
4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5
어제:
7
전체:
1,317,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