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사월 1.jpg

 

   달력을 넘긴다. 삼월인가 했더니 어느 새 사월. 춘삼월 봄도 슬슬 기운다. 만남의 기쁨은 잠시, 이별은 긴 여운이라던가. 봄날은 연인이 보내 온 짧은 엽서같이 서운하다.
   동음이의를 지닌 사월. 누군가에겐 목련꽃 그늘 아래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달콤한 달이요, 또 어떤 이에겐 삶과 죽음을 생각케 하는 묵상의 달이기도 하다.
  4.3 사건, 4.19 혁명, 4.16 세월호 참사… 여기 미국엔 4.29 폭동. 그리고 그 사이 알게 모르게 사월의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치는 사람들이 있겠지. 나에게도 어머님이 돌아가신 개인사를 가진 사월의 ‘그 날’이 있다. 해마다 사월이 오면, 무덤에 풀 돋듯 유독 생각이 많아진다.
   엄마가 위암 판정을 받던 그 날, 푸른 하늘도 색을 잃었다. 흐릿흐릿한가 싶더니 어느 새 검은 색으로 어두워졌다. 해질 무렵도 아니었고 어둑해질 저녁 시간도 아니었다. 오후 세 시 경이었다. 그것도 화창한 춘삼월 봄날 오후였다.
  - 부산 아지매! 위암임니더! 당뇨도 없고 연세에 비해서 다 양호하시니 장검사 한번만 더 하고 괜찮으면 수술 합시데이!
  부산 출신의 위장내과 전문의는 친밀한 사투리로 위암 선고를 내렸다. 엄마는 이게 무슨 말입니꺼, 하는 표정으로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었다. 곁에 있던 나는 딱 기상 예보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는 내일 돼 봐야 알겠습니다!”처럼 하나마나한 멘트처럼 들렸다. 너무 나쁘면 수술도 못하고 가는 거지 뭐, 이런 뉘앙스. 의사 잘못도 아니건만, 나도 모르게 일말의 적개심과 반감이 일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위내시경을 찍은 며칠 뒤,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이상하다는 말씀을 곁들였다. 나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엄마를 따라 나섰다. 그리고 예의 그 맞을 것같지도 않고 믿기지도 않는 ‘기상예보’를 듣게 된 거다.
  장검사용 약을 사기 위해 병실문을 나왔다. 모퉁이를 돌아 윌셔 약국으로 가는 길. 나는 엄마 팔짱을 끼고 최대한 몸을 밀착시켜 껌딱지처럼 붙었다. 어릴 때, 엄마 옆구리에 붙어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니던 그 포즈였다.
  - 엄마! 이왕 이렇게 됐으니 우린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따르는 모범 환자가 되어 한번 이겨 봅시다!
  - 그래… 그래야겠지! 사람은 다 나이 들면 ‘이름 하나’ 받는다더라. 난 ‘위암’이란 이름을 받았네?
  엄마는 흐릿한 눈빛으로 먼 피안을 보듯 말했다. 나는 우정 명랑한 소리로 재잘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 말도 안 들은 것처럼. 오가는 행인들도 비실체로 보였다. 일체의 소리가 사라진 도시는 유령이 떠도는 고스트 마을 같았다.
  장검사 결과, 간까지 전이 된 위암 4기란 진단이 나왔다. 속이 아프다 해도 계속 소화제만 주던 엄마의 이십 년지기 주치의가 떠올랐다. 어쩐 일일까. 서운함도 반감도 잠시 일었다 흔적없이 사라졌다. 화기도 에너지가 있을 때 일어나는 걸 그때 알았다. 심리적 그로키가 되니, 그야말로 정신 진공 상태가 되었다. 무색, 무맛, 무취에 무감까지.
  수술은 불가한 상태였다. 항암치료가 답이라 했다. “만약, 암에 걸리면 항암치료를 안 받고 갈란다!” 하시던 말은 공염불이 되었다. 항암치료를 안 받으면 굳이 의사를 자주 만날 일도 없다. 홀로 남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나. 식이요법? 산 속으로 가서 자연인으로 산다? “구원 구원!” 하고 외치는 한달에 몇 천 불 한다는 그 명약으로 연명해? 모든 게 너무 늦었고 팔순 노인네에겐 무리였다.
  궁리를 해도 묘수가 없다. 설혹 있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뿐이다. 그나마 인간적인 희망은 의사에게 매달리는 일이다. 환자에게 의사란 하느님의 다른 이름이다.
  엄마는 위장내과 전문의에서 암전문의로 선장이 바뀐 치료선으로 갈아 탔다. 이 배는 화려한 유람선도 아니고, 순풍에 미끄러져 가는 돛단배도 아니다.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요 일엽편주다.
  몇 번의 광풍이 몰아칠지, 언제 거센 파도가 잠잠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가 보는 거다. 엄마도 나도 비현실적 상황 속에서 그저 주인 처분만 바라는 어린 양이 되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2012년 3월 15일부터 비롯되었다. 기적의 시발이 되는 두 번 째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긴다.

(사진 출처 : 유투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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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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