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산길

2017.08.27 23:26

서경 조회 수:17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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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3.jpg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산정에 올라 섰다.
곳엔 꽃이 피어 있고, 누군가 마련해 놓은 수돗가도 있었다.
오르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요 마시지 못할 감로수다
흘리며 올라 산길을 굽어 본다
구불구불 곡선의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다.
올라올 힘겨웠던 길이 지나고 보니 아름답게 보인다
마치 우리네 인생길과도 같다
고개 넘으면 고개.
끝났나 싶으면 다른 산이 가로막던 막막한
그럼에도 산정이 거기에 있기에 우리는 쉬임없이 걷고 걸어서 예까지 올라 왔다
삶은 우리의 거룩한 책무다
어떻게 해서든지 겪어내고 참아 받아야 하는 미션이다
신은 감당할 없는 고통을 인간에게 결코 주지 않는다던가
가파른 직선이 아니라, 신은 우리에게 곡선의 길을 마련해 주셨다
돌아서 가는 길이 늦기는 해도 그다지 어렵진 않을 거라는 위로와 배려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 떠오른다
 
-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들을 만날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드는 구부러진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같은 사람이 좋다
 
산자락을 감싸고 휘돌아 가는 산길을 따라 걷노라면, 나도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을 만날 있으려나
아마도 우리는 살아갈 얘기보다 살아온 얘기를 많이 나누며 걷지 않을까
휘어진 솔가지처럼 살아온 삶의 보고서
권으로도 쓴다는 한숨 섞인 할머니들의 전집같은 얘기들
그것은 구부러진 길을 살아온 사람만이 들려줄 있는 진솔한 얘기일 싶다
구비 산길을 돌며 듣다 보면, 송홧가루 날리듯 뿌연 물안개도 피지 않을까
마치, 엄마한테 보고하는 학교 생활처럼 아니면 연인에게 들려주는 지난 추억담처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산길을 오르고 싶다
속리산 말티 고개처럼 구비구비 이어진 산길
올라오는 사람도 있고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올라오는 길은 힘들다.
올라오다가 쉬고, 오다간 멈추어 선다.
그래도, 허리를 두드려가며 기어이 정상을 향해 올라온다.
숨찬 호흡을 고르며 보폭의 넓이도 줄이고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아예 지팡이에 의지해서 올라온다
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훨씬 여유롭다.
가벼운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모두 가뿐하게 보인다.
산정에 나도 이젠 내려가야할 시간이다
역시 남은 길도 멀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훨씬 가벼운 마음, 가뿐한 걸음으로 내려갈 있을 것같다
많이 없었으니, 놓을 것도 많이 없다
무게만 내려 놓으면 일이다
중에서도 가장 무게를 더하는 마음 하나 내려놓으면 .
그다지 어려울 것같진 않다
인간의 눈이나 평판을 두려워하며 안절부절했던 일들도 결국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연했던 마음, 하나 내려 놓으면 폴폴 날리는 눈발처럼 가볍게 날아가지 않을까
내려갈 , 곡선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길은 닦인 아스팔트가 아니다
부드러운 흙길이다
흙길을 밟고 흙의 일부가 되는
그게 삶의 끝자락에 있는 하나의 산정이지 싶다
곡선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하나의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앞서가는 그림자, 영원한 동반자와 함께.
솔바람에 묻혀오는 솔향기가 향긋하다.


                                                                     (사진 : 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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