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엄마라는 직업

2019.09.06 01:21

서경 조회 수:17

엄마라는 직업.jpg


   이 세상에 눈 감을 때까지 은퇴 없는 정규직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엄마’라는 직업이다. 무보수에, 노동쟁의도 없고, 항명 의사도 없는 직업! 돈을 받기는커녕, 제 돈까지 써 가며 즐겁게 노동쳐 주는 이런 직원이 있다면 그 고용주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장일 터이다. 
  이번에도 노동절 연휴를 맞아 딸이 라스베가스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며 고양이 티거를 맡겼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난 딸 부탁에 “노!”라고 거절해 본 적이 없다. 내 스케쥴을 변경해서라도 “예스!”라고 대답한다. 완전 비상체제에 24시간 대기 발령이다. ‘사랑은 이유나 변명을 대지 않고 언제나 ‘방법’을 찾는다’는 내 지론을 몸으로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면서 딸 얼굴 볼 기회가 많이 줄었다. 그러다 보니, 부탁을 거절하기는 고사하고 은근히 불러주기를 ‘고대’하는 심정이 되곤 한다. 그래도 내가  아직 저에겐 필요한 존재구나 하는 뿌듯함이라고나 할까. 노동도 놀이로 환원되는 순간이다. 가끔, 저 키워줬으면 됐지,하는 신식 할머니를  보는데 거기 비하면 나는 ‘온전히’ 구식 할매다. 
  딸과는 한 두 시간 거리에 살면서도 일년에 너댓번 보고 산다. 바쁜 이유도 있겠으나, ‘잘 있거니-‘ 하는 믿음도 어느 정도 심저에 깔려있는 듯하다. 내 걱정 시키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내일이면 돌아올 아이들을 위해서 늦은 퇴근 시간임에도 한국 마켓에 들러 장을 봐 왔다. 마침, 손녀 제이드도 콜롬비아에서 인턴쉽을 끝내고 돌아온 터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해 주려 몇 가지 재료를 샀다.
  딸은 새벽에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와, 같이 먹을 시간도 없고 잘 먹지도 않아 만들어 주는 재미가 없다. 하지만, 손녀가 집에 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음식을 잘 먹어줄 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동안에 옆에서 거들기도 하고 어느 새 내 좋아하는 팝송을 틀어 무드까지 잡아 준다. 
  음식은 여러 가지 할 필요도 없고 거창한 요리를 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저희들이 먹고 싶어하는 거 해 주는 게 정답이다. 이번 두 끼 메뉴로는 감자전과 소고깃국, 그리고 부추전과 쌈용 생선조림에 입가심으로 새콤 달콤한 무우생채를 준비한다. 아이들은 저희들 입을 즐겁게 해 주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지 모른다. 
  작은 일로 깜짝 놀래키게 하는 게 어릴 때부터 내 취미다. 어머니가 외출하시면서 설거지를 부탁하면 솥을 반질반질하게 닦아놓고 또 뭐가 없나 싶어 장독도 말끔히 씻어 놓는 식이다. 언제나 시키는 것 외에 플러스 알파를 해야 내가 기쁘다. 
  이번 미주문협 여름 캠프를 준비하면서 ‘테이블 세팅’ 담당을 했다. 무언가 다르게 하고 싶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오는 분들을 위해 새로운 분위기를 띄워 주고 싶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은 정말 식상하다. 성격적으로 반복하거나 답습하는 걸 싫어한다. 
  좀더 잘 하려면, 아이디어와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빠듯한 문협 살림에 혹시 공금이라도 쓸까 봐, “너무 멀리 나가지 마옵소서! 돈주머니는 제가 차고 있나이다!”하는 회계의 애교어린 충고도 받았다. 
  아무렴! 임원회도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일에 공금 신청을 하랴! 지희선의 사전엔 그런 법이 없다. 다 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다시는 안 한다고 손사례를 칠 법하지만, 오히려 내년에는 좀더 잘 해야지 하는 욕심까지 생겼다. 
  오늘은 마침 쉬는 날이라, 고양이 티거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먼지가 뽀얗게 앉은 선풍기 청소에 고양이 밥을 향해 거룩한 순례의 행렬을 이루고 오는 개미 퇴치까지 일을 찾아서 했다. 
  부엌에 와 보니, 개스 오븐에 흘러 넘친 음식물이 눌러 붙어 있다. 뜨거운 물에 불린 뒤 식초 물로 말끔히 닦았다. 덕분에, 손녀가 돌아오면 소크라테스 대화법을 흉내낼 건수도 하나 생겼다. 
  - 제이드야! 너는 음식이 눌러 붙은 개스 오븐을 씻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 ???
  나는 이미 개스 오븐 청소를 하며 답을 얻어 두었다. 혹, 손녀 제이드의 대답이 케미컬적이거나 기술적이라면 내 대답은 에티튜드에 관한 답을 들려줄 것이다. 아이는 교과서에 없는 답을 ‘들으며’ 생활 속에 육화해 나가리라. 
  내가 죽고 나면 어줍잖은 말도 유언처럼 빛나고 귀중한
삶의 언어로 자리매김할 테지. 부모가 있다는 것, 어른이 있다는 것. 그것의 가장 큰 가치는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있다는 거라고 했다. 고아가 불쌍하다는 것은 단순히 부모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들려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교육 심리학 시간에 배웠다. 
  나는 다행히도 딸에게 어릴 때부터 많은 말을 들려주었고 손녀에게도 마찬 가지였다. 여기 미국 사람들도 무슨 말을 할 때, “내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하고 시작할 때가 많다. 물론, 미국 사람들이 늙어지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엄마 대신 “내 의사가 말하기를...” 하고 바뀌어 서글프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는 아이들에게 영원한 백과사전이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 청소를 하다 보니, 아침도 잊고 
냉장고까지 깔끔하게 청소했다. 원래, 어깨 힘이 약해서 힘든 일은 못하지만 아들집이 아니고 딸집일이라 그런지 힘든 줄 모르고 했다. 하하, 이 고얀 심보! 
  일을 끝내고 커피잔을 들고 빙 둘러 보니, 창세기에 나오는 말씀처럼 ‘보기에’ 좋았다. 이제부터 나도 딸 반려 고양이 티거처럼 ‘정인’이 돌아올 시간을 기다릴 일만 남았다.
  엄마라는 직업엔 ‘기다림’이란 항목도 큰 미션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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