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처처에 살아 계시는 분

2019.09.06 01:32

서경 조회 수:12

정완영.jpg



 오늘 점심으로 잣죽을 먹었다. 
인스탄트 잣죽은 너무 씹히는 게 없어, 밥 한 술 넣어 같이 끓였다. 
훌훌 불어가며 한 술 뜨는 사이, 갑자기 백수 정완영 선생님이 생각났다. 
2000년 초, 여기 미국에 오셨을 때 언니집에 머물며 시조 강의를 해 주셨다. 
그때 선생님이 잣죽을 좋아하신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폴 정 사모님이 손수 잣을 갈고 쌀을 불려 잣죽을 써 주셨다. 
덕분에, 우리도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잣죽을 먹었다. 
그 이후로 잣죽을 먹을 때마다 맛있게 잣죽을 드시던 선생님 생각이 난다. 
바둑판을 보면 또 선생님 생각이 난다.
봄이 와도 올 데 갈 데 없이 혼자 집을 지키는 말년의 당신 모습을 한 점 바둑알에 비유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짠해 와서 <독거 노인>이란 제목으로 그런 선생님 마음을 대변한 시조 한 수를 지은 적도 있다. 
 
- 물 오른 봄 가지에/ 꽃향기 분분하고/ 봄은 다시 사방팔방 꽃길로 열렸는데/뉘 함께 나들이 가랴/ 한 점 놓인 저 바둑돌

물론, 선생님은 먼 태평양 이쪽에서 선생님 글에 연상작용을 일으켜 이런 졸시를 끄적대고 있는지도 모르고 돌아가셨을 터이다. 
세 번 째로는 쭉쭉 뻗은 소나무를 보면 선생님 생각이 난다. 
2002년, 한창 시조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던 언니의 권유로 
정완영 선생님과 함께  당신의 시비를 함께 돌아보는 시비 투어를 간 적이 있다. 
서울에서부터 문경, 청도, 예천, 김천을 돌고 마지막 여행지로 울산에 들러 여러 시인들과 함께 울기등대에서 시조 강의를 들었다. 
울산의 명지 울기등대는 역사적 깊이도 있으나 무엇보다 그 풍광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바위를 치고 하늘로 치솟는 흰 물거품은 마치 이차돈의 하얀 순교의 피를 연상시키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해송들은 울산 해변을 지키는 장수와도 같이 우람차고 든든했다. 
해변에서 바위를 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일품 시조 강의를 듣는 기분이란!
청복도 이런 청복이 없지 싶었다. 
‘풍류가 따로 있나, 이게 바로 고급 풍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문득, 궁금한 게 있어 선생님께 질문을 던졌다.
- 선생님! 저 우람찬 해송은 자랄 만큼 다 자라고 더 자랄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걸까요? 무슨 희망으로?
선생님은 지체없이 대답해 주셨다.
- 제 구도를 그리며 살고 있지!
그 순간, 그림 그릴 때나 듣던 평범한 ‘구도’라는 단어가 천둥 같은 울림으로 내 명치를 쳤다.
빈혈을 일으킬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래, 모든 풍경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음으로써 ‘제 구도를 지키며’ 살아가는구나! 
나는 선생님을 다시 쳐다 보았다.
‘큰 바위 얼굴’이 따로 없었다. 
‘해송’도 따로 없었다. 
꾾임없이 후학을 가르치고 글을 쓰시는 선생님이야말로 큰 바위 얼굴이요 우람한 해송이었다. 
선생님은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 풀꽃 한 송이만 져도 지구가 기우뚱댄다는 말 알지?
- 네...
모든 존재의 의미와 그 소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풀꽃 한 송이의 존재가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이야!
육신의 성장은 멈추었어도 늘어나는 나이테와 함께  생각의 키는 더욱 높고 깊어가는 해송.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제 구도를 그리며 살아가는 선생님의 태도야말로 그런 해송의 삶을 닮았구나 싶었다. 
내 한줌 작은 심장이 가없는 하늘처럼 넓어지고 바다처럼 깊어지며 우주로 팽창해 나가는 느낌이었다. 
‘하느님께서 앉혀주신 그 자리’에서 작은 등불을 켜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조금만 궤도를 이탈해도 지구의 평형이 깨어지는 진리를 ‘제 구도를 그리며’ 서 있는 바닷가 노송에게서 배운다. 
우리를 ‘대한의 딸아!’하고 부르면서 “앞마당을 쓸어도 지구의 한 귀퉁이를 쓴다고 생각하라”던 여고 시절 교장 선생님의 훈시처럼 사고의 확장을 불러 왔다. 
손바닥만한 앞마당을 쓸면서도 늘 지구의 한 귀퉁이를 쓴다는 자부심으로 쓴 기억이 난다. 
그럴 때면, 대한의 딸이란 호칭과 함께 마치 유관순처럼 큰 사람이 된 기분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선생님의 ‘구도’라는 한 마디로 다시 한 번 큰 사람이 된 뿌듯한 포만감을 느끼며 마음 깃을 여몄다. 
눈지우개로 해송을 지우니 아름다운 풍광은 사라지고 가없는 수평선만 가슴을 가로 질렀다. 
생각은 갈매기 되어 수평선을 넘고 우주를 넘어 먼 먼 미지의 세계로 날아갔다. 
그 이후로, 쭉쭉 뻗은 소나무를 볼 때마다 돌부처같은 선생님의 꼿꼿한 모습과 함축미 있던 말씀이 떠오르곤 한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분.
처처에 살아 계시는 분, 백수 정완영 선생님. 
그 분은 가셨지만, 노래는 흐르고 세월 속에 향은 더 짙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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