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작가의 봄

2022.03.06 07:04

서경 조회 수:11

작가의 봄.jpg

 

 - 벽에 빛이 환하게 찼다. 물 속에 서듯 잠시 베란다의 벽 앞에 섰다. 온수처럼 따스하다.  
 
  폐친 김동원 작가의 사진과 짧은 글이 올라 왔다. 베란다 외벽에 봄볕이 내려 앉은 평범한 풍경이다. 여기에 잠시 작가의 시선이 머문다. 생각은 나래를 타고 상상은 환상의 세계를 나른다.
  냉기 스치는 2월의 베란다에 서서 작가는 봄을 불러 들인다. 나무 한 그루 없고 꽃 한 송이 없어도 그의 마음은 이미 산수유 피는 마을이다. 연초록 연노랑 빛이 그에게 서둘러 봄을 선사한다.
  이렇듯, 그는 스치기 쉬운 작은 것들을 눈여겨 보는 작가다. 시선은 예리하나 마음이 따스하다. 그를 만나 본 적도 없지만, 나는 그의 찐팬이다.
  십 년 가까이 된 듯하다. 오래 전, 그의 사진과 글을 접하게 되었다. 사진도 좋고 글도 좋았다. 그의 시선처럼 시평은 예리했고 소소한 일상의 글은 따스했다.
  그의 사진은 내게 시적 영감을 주고, 그의 글은 내 마음에 온기를 불러 넣어 주었다. 공감대 형성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켰다. 그의 사진에 내 느낌을 달고 싶었다.
  메시지를  통해 그에게 의사 타진을 했다. 발로 얻은 작품, 마음으로 받아 써도 좋겠느냐고. 그는 두 말 없이 승락했다. 어떤 조건도 없이. 글에서 본 그의 따스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의 찐팬이 되었다.
  그는 한국에 살고 나는 미국에 산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만나든 만날 수 없든 그 또한 대수랴. 공감하면 마음의 벗이 되는 거다. 특히, 예술적 공감의 벗은 시공간을 넘나든다.
  아름다운 걸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때 함께 고개 끄덕여줄 사람. 달이 밝다고 말할 때 뛰쳐 나와서 함께 달을 봐 주는 사람,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 줄 때 함께 눈가가 촉촉히 젖어드는 사람. 이런 마음의 벗이 그립다. 나의 글쓰기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눈앞에 없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익명의 연인을 향해 쓰는 거다. 꽃이 피어 아름답다고, 보름달이 너무 크고 맑아 혼자 보기 아깝다고, 비가 오는 날 듣는 이 노래는 왜 이리 슬프냐고 하소연하며 글을 쓰고 있는 거다. 재주가 없기도 하거니와 돈하고는 참 먼 글을 쓰고 있는 거다.
  배는 고프지 않아도 마음의 허기를 느끼는 이민 생활. 아직도 정이 고픈 나. 그래서 온기 있는 그의 사진과 글이 좋은가 보다. 작가는 공감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서로 닮거나 비슷하니 좋아하는 거다.
  어디 사람 뿐이랴. 천하만물도 유유상종 한다. 새들도 흰 새는 흰 새끼리 모여 살고 검은 새는 검은 새끼리 몰려 다닌다. 숲 속의 잡목도 닮은 나무끼리 집성촌을 이룬다. 뜬 섬처럼 떨어져 있던 하얀 구름도 외로워서 서로를 불러들여 뭉게구름을 피워 올린다.
  요즘 들어, ‘공감’은 시대의 화두다. 유명 작가든 무명 작가든 다 자기 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외로움의 온도가 다르듯, 공감의 색깔도 다 제 각각이다. 대중성을 가진 작가가 있는가 하면 찐팬 마니아를 지닌 작가도 있다. 대중성 있는 작가는 인기를 먹고 살고 마니아 작가는 사랑을 먹고 산다.
  무엇을 먹고 살든, 먹을 게 있으면 부유하다. 포식을 하든 소식을 하든 그건 각자의 취사 선택이며 몫이다. 컬러와 흑백 사진의 차이라고나 할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다. 누구는 화려한 장미를 좋아하고 또 다른 이는 소박한 야생화를 좋아한다.
  나는 유명 작가보다 마니아 작가가 좋다. 밑줄 그을 수 있는 글 한 줄 있으면 족할 뿐, 베스터 셀러 책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표지도 화려한 것보다는 화장기 없는 수수한 표지가 좋다. 각광 받는 스타보다는 멀찌감치 홀로 서 있는 아웃사이더에 눈길이 더 간다.
  작가의 시선. 나도 그 시선을 따라 같은 포인트 뷰에 서서 함께 보는 거다. 작품 좋고 사람 좋은 작가를 만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러기에, 김동원 작가와의 만남은 무척이나 반갑다. 우연치고는 행운의 필연이다. ‘필연은 우연의 연속’이란 밀란 쿤데라의 말을 신봉하지 않을 수 없다.
  소소한 것에 관심 가지고 무심한 것에 애정을 가지며 그들의 증인이 되어주는 김동원 작가. 그런 그의 마음이 좋다.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언제고 나는 찐팬이 되리. 오늘, 나는 그의 사진에 이렇게 답글을 붙였다.  
 
  - 화선지에 스며든 봄빛! 꽃 한 송이 없어도 따스한 봄날입니다! 
 
  2월의 햇볕이 내려 앉은 그의 베란다 외벽이 마치 화선지처럼 느껴졌다. ‘봄볕’이라 할까, ‘봄빛’이라 할까 잠시 머뭇대다 ‘봄빛’을 선택했다. 빛은 명암이요 볕은 냉온이란 것쯤은 알지만 봄빛이란 어감이 좋아 선택했다.
  국어 선생님께는 맞춤법 틀릴까 봐 편지 쓰기도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작가 앞이라 답글이라도 어휘 선택에 신경이 쓰인다. 후렴이 길면 식상하기에, 덧붙이고 싶은 뒷말은 마음 속 엽서로 대신했다.  
 
  …… 꽃 한 송이 없어도 내 마음엔 꽃물이 들고, 찬 바람 얼굴을 스쳐도 연노랑 연초록 색감만으로 내 마음은 이미 봄날입니다. …… 
 
  글을 다 적고 보니, 페이스북에 그의 답글이 달려 있다.  

         - 벽에 화선지를 걸어두어야 겠네요. 볕에 스며든 그림을 얻을 수 있겠어요.  
 
  이런 센스, 이런 여유도 좋다. 어줍잖은 글에 일일이 답글을 달아주는 그의 태도에 성실함이 묻어난다. 글을 읽고도 ‘침묵’으로 대신하거나 이모티콘 하나 덜렁 올리는 사람은 정이 가지 않는다. 무심하거나 관리할 어장이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2월도 어느 새 중순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발렌타인스 데이. 정 주고 정 받으며 살 일만 남았다. 정 주고 받는 게 별 건가. 서로 ‘공감하고 반응하며’ 사는 거지. 남은 날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기만 하다면 고달픈 삶도 사시장철 봄날일테지.
  새벽 바람은 차나, 겨울 나무 마른 가지가 붉으데데한 걸 보니 봄도 가차이 왔나 보다.  
 
(사진 :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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