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비타민 친구들

2019.03.26 00:14

서경 조회 수:16


 비타민 친구들.jpg


   요즘따라 부쩍 피곤함을 느낀다. 몸에 기도 좀 빠진 느낌이다. 언제나 에너지 충천하고 의욕이 넘쳐 났는데. 이젠 그것도 옛일이 되었는가. 저혈압과 빈혈로 고생한 전력은 있었지만 오랫동안 특별한 정상은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갑자기 속이 메스껍더니 한순간에 죽을 것같은 증세가 왔다.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땀이 흐르고 곧 숨이 넘어갈 것같았다. ‘절망’을 느낄 때 일어나는 증세가 다시 도진 것인가.
  이를 테면, ‘해가 언제 뜨지?’ ‘아이구, 아직 8시간 기다려야 하네? 어둠을 내가 걷어낼 수 없는데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심장이 옥죄어 오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 거의 30년간 못 본 친구와 연결되어 한참 카톡을 주고 받다가 대화를 끝낸 적이 있다. 당장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는 ‘가상의 세계’가 ‘절망감’을 주면서 심장을 옥죄어 왔다. 
  그때도 증상이 심해 가슴을 잡고 방안을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했다. <카톡이 끊기면> 하는 시가 그날 밤에 나온 시다. 철창, 그것도 독방에  갇힌 죄수 같은 절망이 나를 어둠 속으로 내몰았다. 
  오래 전, 한 시간 동안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이후로 생긴 병이었다. 지금도 나한테 기한이 없는 ‘막연한 기다림’을 얘기하면 난 이내 숨이 차 올라 버린다. ‘언제까지?’라는 생각이 ‘절망감’을 주기 때문이다. 
  3년이고 10년이고 확실한 기한을 주면  절망감 없이 기다릴 수 있는데 나도 모를 노릇이다. 정신병의 일종이겠으나, 육체적으로 심한 고통을 겪으니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런데 오늘 새벽엔 그렇게 ‘절망’을 느낄만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면서 한순간에 가슴이 죄어 왔다. 근처에 사는 간호사 언니한테 급히 전화를 했다.
 - 언니! 빨리 와! 나, 죽어!!!”
  어쩌면, 이 말이 내가 언니한테 하는 마지막 말이고 통화인지도 모른다. 15분은 걸릴 텐데, 그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나. 난 분명 그 안에 죽는다. 온 몸에 땀이 나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 테레사! 테레사!!!
  숨가쁘게 옆 집에 사는 테레사를 불러 재꼈다. ‘숨 넘어 가듯’ 부른다는 말이 바로 이걸 두고 한 말이렸다. 
 - 나, 지금 죽어! 빨리 찬물에 흰 설탕 타 가지고 와!”
  나보다 테레사가 더 사색이 되어 허둥댔다. 전화기도 바닥에 떨어뜨리고 이젠 내 힘으로 물도 못 마실 지경이 되었다. 테레사가 떨리는 손으로 설탕물과 레몬티, 생강차를 번갈아 입에 넣어준다. 오래 전, 빈혈로 쓰러졌을 때 한 응급처치법을 아쉬운대로 쓰는 중이었다. 
  언니가 뛰는 심장을 누르며 달려 왔다. 나는 이미 하얗게 질려 카우치에 드러누워 있었다. 언니는 혈압을 재고 응급처치를 하더니 ‘anxiety attack’이 왔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 증상이라 한다. 죽을 것같지만, 죽지는 않는다’며 안심시켜 준다. 죽음에 대한 공포나 불안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곧 죽을 것같은 숨 막히는 '절망'이 나를 옥죄어 왔다. 

   키에르 케고르 말처럼 정말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인가.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는가. 절망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과 신의 관계를 더 뚜렷이 이해하려는 노력의 고통이기 때문에 외려 축복이라고. 
   어림 없는 소리. 그런 절망은 그냥 '믿을 교리'로 수용하면 된다. 절망과 맞바꾼  축복은 금잔에 따라 주어도 마시고 싶지 않은 독배의 잔이다. 내  망상적 절망감은  분명 고차적인 '실존적 절망'은 아닐 터이다. 엔자이어티 어텍. 정말 거부하고 싶은 불청객이다.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오는 건 길다. 하지만, 멎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다. 잔병이 없고 약 먹는 거 하나 없다고 큰 소리치던 나도 슬며시 위기감이 들었다. 
  그동안 의사 한 번 본 적 없이 매달 메디케어 값만 뜯겼는데(?) 이젠 주치의도 정하고 건강 검진도 한 번 받아 봐야겠다. 이왕이면 심장내과 전문의를 내 주치의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생각만 하고 주치의를 정하지도 찾지도 않았다.
  정말 병원엔 가기 싫다. 의사도 만나고 싶지 않다. 병원에 따라가서 보면, 건강 검진 받다가 다 죽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스럽게 아픈 것보다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그러나 정말 환자가 되면 그때는 의사가 내 생명권을 쥔 하느님처럼 크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비타민 한 알도 안 먹던 내가 그거라도 좀 챙겨 먹어보자는 갸륵한 생각에 다섯 가지나 샀다. 종합 비타민과 면역체계 강화, 보혈제 중심으로 주문했다. 
  엄마가 만병통치약으로 믿고 신봉하던 알로베라. 그 주성분으로 만든 미국산 자연 건강 식품이다. 회사명도 FOREVER. 좀 나아지려나. 희망을 한번 걸어 봐? 
  비타민 한 알 넘기려 해도 물을 몇 번이나 마시고 목을 뒤로 젖혀야 하던 내가 요즘은 물과 함께 다섯 알의 비타민도 꿀떡꿀떡 잘 삼킨다. 위기감이 준 신종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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