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올케

2020.02.27 10:00

서경 조회 수:22

올케.jpg



 올케 사진을 보니 눈물이 난다. 오빠가 수궁 속으로 사라진 이후, 오랫동안 홀로 딸아이 하나 키우며 살아온 올케. 그녀의 얼굴엔 웃고 있어도 아린 슬픔과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작은 손으로 어깨를 다독이며 “우리 한 번 잘 살아 봅시다!” 하는 말에 마음이 동해 오빠랑 결혼하게 되었다는 올케. 나는 처음부터 우리 올케가 좋았다. 하나밖에 없는 오빠라, 내겐 오직 한 분 뿐인 올케였다.
  조용 조용하고 천상 여성적이던 올케. 음악을 좋아하고 요리를 잘 하던 올케. 전혜린을 사랑하던 꿈 많던 문학소녀이기도 했다. 결혼 후, 오랫동안 아기가 없어 걱정하던 올케는 몇 년 뒤 딸아이를 낳자 마자 이름도 ‘지혜린’으로 지었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던 오빠 때문에 무던히 속도 상했다. 그럴 때마다 한숨 짓는 그녀를 위로해 주곤 했다. 하지만, 남편 사랑 많이 받은 여인으로 치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여인이었다.
  나를 너무도 사랑해 준 오빠였기에 나는 올케를 더욱 사랑했고, 올케는 나를 ‘천사’라 불러주는 남편 때문에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다. 우리는 올케와 시누이 사이라기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벗이었다.
  오빠는 빨리 자립하려고 위험 수당을 더 주는 해상 근무를 원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직 빨리 자립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배를 탔다.
  어느 날, 나는 미사 중 성가 46장을 부르다 후두둑 후두둑 눈물을 떨어뜨렸다.  
 
  -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심오한 진리 깨달은 자도 울리는 징과 같네
     하느님 말씀 전한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나
     사랑 없이는 소용이 없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사 하나 하나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특히, ‘무슨 소용이 있나’하는 가사는 비수같이 날 찔렀다. 적어도 겉보기에 난 천사였고, 모범생이었고, 주일이면 찬송가 옆에 끼고 착실히 교회 다니는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오빠 하나도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주님 앞에 무슨 자랑이 있나. 사랑 없이는 소용이 없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데! 성가단 엘토 자리에 앉아 노래도 멈춘 채 눈물로 악보를 적셨다.
  어릴 때부터 나를 천사라고 부르던 오빠. 겨울이면, 날 깨워 새벽 기도에 데리고 다니며 바람막이가 되어 찬바람을 막아주던 오빠. 날 자기의 자랑으로 여기고 전적으로 사랑해 주던 오빠. 나는 그런 오빠를 사랑하기는커녕, 길에서 만나도 남인 양 외면했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오면서 오빠는 홈시크에 걸렸고 점차 논다니 패거리와 어울리며 학교를 멀리했다.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던 나는 그런 오빠가 싫었고 부끄러웠다. 내 사춘기 때의 우울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생인손같은 오빠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빠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음성을 높이거나 언짢은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늦게 결혼한 오빠는 아이까지 늦어, 내 아이를 오빠의 아이들이라도 된 듯이 예뻐하고 사랑해 주었다. 나는 그런 오빠의 사랑에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도 되돌려 주지 않았다. 나는 늘 사랑을 받기만 하던 염치 없는 아이였다.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후에도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오빠가 거센 파도와 싸워야 하는 뱃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이 날, <사랑의 송가> 가사와 멜로디가 끊임없이 내 가슴을 후벼 파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아, 거센 풍랑과 싸우는 오빠, 가족을 떠난 외로움에 가슴 아릴 오빠! 그 생각이 들자, 불쌍하고 미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한국은 자기 집만 한 채 있어도 산다는데...’ 싶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오빠가 그렇게 위험한 선원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에 두고 온 엄마 집을 오빠에게 주라고 권했다. 아직도 오빠를 신뢰할 수 없는 엄마는 안된다고 했다. 오빠에게 기회를 주자고, 한번도 인정하고 기회를 준 적이 없지 않느냐고, 엄마는 한국에 집이 없어도 살지 않느냐고 울먹이며 설득했다.
  - 그래, 너 마음이 고맙다. 오빠에게 그 집을 줄게!
  마침내, 엄마의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너무도 기뻐 복음을 전하듯 기쁜 소식을 올케에게 전했다. 소식을 들은 올케도 “오빠가 맨날 우리 희선이는 천사라 했는데...” 하며 울먹였다.
  집에 돌아온 오빠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도 기뻐하며 한 항차만 끝나고 돌아 와 자그만 음식점이라도 차리자며 떠났다. 마지막 항차를 떠나기 전, 오빠는 전화를 걸어 고맙다는 말을 내게 전하고 싶었으나 난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아, 그런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배가 파선되고 오빠가 실종되다니! 이제 한 번이면 끝날 그 마지막 항차에서 오빠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되고 말았다. 거센 풍랑은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오빠를 데려주지 않고 용궁으로 데려가 버렸다.
  나이 서른 일곱, 딸 아이는 겨우 일곱 살. 이제 한 번 제대로 살아보려 했는데 무슨 연유로 오빠는 상여도 없이 수궁 속으로 사라져야 했는지! 가슴을 치고 통곡했다.
  나는 그 이후로 더욱 올케를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얌전하기만 하고 개척 정신이 부족한 올케. 혼자 견디어내야할 삶의 무게가 마치 내 것인 양 무겁게 내려 앉았다.
  하지만, 시간은 잔인하고 또 너그러운 것.
푸르던 잎이 마른 잎으로 변해가듯, 우리네 수분도 때가 되면 마르기 마련이다. 일곱 살이었던 딸 아이도 아가씨가 되어 파리에서 뮤지컬 배우 꿈을 키우며 살고 있다.
  오늘, 카카오 스토리에 새로 올라온 올케 사진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전화를 걸어, 옛이야기를 나누고 안부도 묻고 싶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아 회억의 글로 대신하고 있다.
  천상에서 만나 사과하면 오빠는 받아 주려나. 아니, 평소의 오빠라면 사과 같은 건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반가워서 덥석 안아 주겠지. 먼훗날, 천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진심어린 마음으로 용서를 청하고 싶다.
- 오빠! 정말 미안했어요!
  천상에서 지켜보고 있을 오빠를 위해서라도, 올케가 남은 인생 기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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