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무학산 송전탑

2020.03.12 08:33

서경 조회 수:18

무학산.jpg


사진을 보니, 작가가 좀 짓궂다는 생각이 든다.
송전탑 속살을 찍다니.
마치 육교를 올라가는 미니 스커트 아가씨 팬티를 훔쳐보는 듯한 심사라고나 할까.
하긴, 속살을 보고 싶어하는 남정네 마음이나 속마음을 알고 싶어 사랑 하느냐고 끊임없이 물어대는 여인네 마음이나 궁금증은 엇비슷하지 싶다.
동의하거나 말거나, 남자는 누드에 약하고 여자는 무드에 약하다는 말도 있긴 하다.
멀리 산등성이에 높이 서 있는 송전탑을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가까이 송전탑 속살까지 보기는 처음이다.
작가의 시선에 의해 포착된 사진은 미학적 날카로움이 있다.
샤프한 남성을 보는 것같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차갑게 보여도 그 마음 속에는 사랑의 전류가 흐르고 있는 인상.
어찌 보면, 이상형이 없던 내게 막연한 동경심을 갖게 하던 상상 속 남자를 닮은 듯하다.
난 옛날부터 상냥하고 친절한 인상의 남자보다는  샤프하고 차가운 표정의 남자가 좋았다.
요즘 말로 ‘나쁜 남자’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깊이 들어가 보면 이 심리는 나 혼자만 바라 보고 사랑해 달라는 이기심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한편으론, ‘난 그런 냉정한 사람 마음도 열게 할 수 있어!’ 하는 자신감도 내심 일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내게 근거 없는 이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꼭 젊음 때문만은 아니었을 게다.
그런 사람일수록 친구가 별로 없을 거라는 나만의 추측과 모성 본능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매너 좋고 친절한 사람은 대부분의 여성이 선호한다.
꼭 나 아니라도 그런 사람은 누군가에게 사랑 받을 터.
때문에, 난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정이 그립고 사랑이 고픈 사람에게 내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예나 이제나 나는 아웃사이더에게 관심이 많다.
교사 시절에도 주목 받지 못하던 아이에게 특별히 애정을 준 기억이 난다.
마음이 따뜻하거나 착해서라기보다는 내 천성인 듯하다.
아니, 어쩌면 ‘바늘로 찔러도 피가 날 것같지 않은 사람’이란 내 차가운 인상이 동병상련의 정을 불러 일으켰는지 모른다.
짙은 눈썹 차가운 내 눈매를,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 보다 먼저 본 사람들은 내 사랑이나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연인이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시인의 속성을 가져야 할 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에서 들리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
무심한 풍경 속에서도 느낌을 건져낼 줄 아는 사람.
매끈한 문장보다는 행간에 숨겨져 있는 질곡의 아픔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
무생물과도 대화가 통하고 피톨을 굽이치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벗이 될 수 있고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 사람은 꼭 여럿일 필요도 없다.
인간 관계란 질의 문제이지, 양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성보다는 작품성을 우선시 하는 마음과 같다.
같은 나를 두고도, 어떤 사람은 ‘시베리아 삭풍’이라 부르고  또 다른 이는 ‘봄바람의 미풍’이라 불렀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상반된 이 평가는 나의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 안목의 깊이 때문일까.
아직도 연구 대상이다.
무학산 송전탑!
내 고향 월포 초등학교 교가에도 등장하는 무학산이라 이름조차 정겹다.
손끝만 대도 찔릴 것같은 송전탑 사진 한 장이 오늘따라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잊고 살던 고향도 떠올리고 상상 속 멋진 사람도 불러 온다.
근접하기 어려운 철탑 같은 사람도 그 속에 사랑의 전류가 흐르고 있다는 걸 ‘믿기만’ 하면 누구든 그와 사랑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사막에도 오아시스는 있고 험준한 산 속에도 옹달샘 하나는 숨어 있다.
우리네 삶은 어쩌면 이런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여정이요, 샘물을 마시고 싶은 갈증의 여로인지도 모른다.
야시장에 뒹구는 배추 씨레기같이 값싼 사랑이 난무하는 요즈음, 무학산 송전탑 같은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는 날이다.  
 
(사진 : 임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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