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또 하나의 전쟁과 평화

2020.06.12 13:55

서경 조회 수:58

또 하나의 평화 1.jpg

또 하나의 평화 2.jpg


아직도 그 열기가 식지 않는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를 두고 조심하고 있다.
조금씩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이 무슨 일인가.
미네소타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곳곳에 폭동이 일어나 지금 LA는 완전 비상이다.
경찰이 심하긴 너무 심했다.
어찌 사람의 목숨을 앗을 정도로 폭행을 하고 목을 눌러 죽이는가.
동물이라 해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대하지 않을 터, 마치 사람을 어떻게 죽일 수 있나 시범을 보이듯 경찰은 난폭했다.
이번에도 백인 경찰에 피해자는 흑인이다.
미국에서는 피부 색깔에 상당히 민감한 나라다.
한국 같으면 별 것 아닌 일도, 걸핏하면 인종 차별 문제로 번지기 일쑤다.  
매사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게 미국 사회다.
상공엔 헬리콥터가 쉬임없이 프로펠러를 돌리고, 프리웨이엔 경찰차들이 불을 번쩍이며 줄지어 달려간다.
계속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오늘 오후 6시부터 내일 아침 6시까지 통금이라고 전화기에 뜬다.
마켓은 두 세 시간 전에 이미 문을 닫고 철수했다.
방콕이 최선이다.
그럼에도, 볼 일은 봐야 하고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한다.
오늘, 에이미란 작은 체구의 여인이 제인 집을 방문했다.
일전에 한 번 본 여인이다.
마침, 차를 마시던 중이라 함께 동석을 했다.
얘기 끝에, 말도 타고 틈틈이 사진도 찍으면서 소일한다는 말을 해 귀가 쫑긋했다.
- 이 와중에 말을 탄다고? .
- 네! 아무나 못 들어 가는데, 담당자랑 개인 친분으로 들어 가서 가끔 말도 타고 와요.
- 외국 사람?
- 네!
- 그럼 그렇지! 미인계 썼나 봐요?
- 호호, 그건 아니구요, 어릴 때부터 말 탔다고 하면서 말 구경 좀 해도 되느냐고 물었죠. 그러다가 친해져 말까지 타게 됐어요.
- 그렇군요! 어디서 말 타요? 그리피스 팤?
- 네!
- 아, 거기서 재미 승마 협회 강습도 하던데?
-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공식적 모임은 못하고 그냥 자기 개인 말 가진 사람들만 가끔 나와서 타나 봐요.
- 아, 그렇구나! 참! 아까 사진 찍는 거 좋아한다 했는데 혹시 말 사진 찍은 거 있어요? 제 친구 중에 말 그림을 열심히 그렸던 친구가 있는데......
- 아, 네! 말 사진 많이 찍었어요. 꼭 말이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아요. 말도 걸고 싶어 하는 거 같더라구요?
- 그래요? 사실, 글 쓰다 보면 그런 경우가 많아요. 사물이나 무생물까지도 애정을 가지고 눈 여겨 보면 말을 걸어 오곤 하죠! 저는 그들의 말을 받아 쓰는 거구요. 그게 교감이라는 거겠죠! 말을 많이 사랑하나 봐요?
- 네! 어릴 때부터 엄청 사랑했어요!
- 아, 정말 말 눈을 보면 어찌 그리도 순진무구한지! 혹시 War Horse란 영화 봤어요?
- 그럼요, 봤죠!
- 소년과 말과의 우정이 정말 찡하더라구요! 어찌 말 못하는 짐승이라 하겠어요? 좋은 사진 있으면 좀 보여 줘요.
제인도 나도 사진에 관심이 많다.
에이미는 신이 나서 이거 어때요, 저거 어때요 하며 수십 장의 사진을 보여 준다.
그 중, 글감 소재가 될 만한 몇몇 사진들이 내 촉을 세웠다.
특히, 백인 남자가 배앞에 아기를 띠로 묶은 채 말을 데리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손질 잘 되었다는 걸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윤기나는 털에 기품 있는 말이었다.
거기에, 아기를 사랑하는 아빠의 전형적 모습의 백인 남자가 어우러져 사진 분위기는 코로나 전쟁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미소를 지을 정도로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소음을 내며 공중을 선회하는 헬리콥터 소리도 잠시 멀어지고, 굉음처럼 들리던 사이렌 소리도 귓밖으로 밀려 났다.
전장의 고요와 평안이 안개비처럼 가만 가만 내리는 듯했다.
딴 세상이었다.
이토록 평화로울 수가 있을까.
불과 30분 거리에서 일어나는 광란의 다운타운 폭동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불안, 초조, 긴장과는 전혀 관계 없는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순진무구한 말의 눈빛, 또한 무념무상이다.
그저 주인이 이끄는대로 묵묵히 앞만 보고 걸을 뿐이다.
도무지 뒷발길질 한 번 안 해 본 말처럼 착하게 보인다.
사랑 주고 사랑 받고, 서로 무한 신뢰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세상은 코로나 전쟁으로 초죽음인데, 태풍을 벗어난 무풍지대의 평화로운 풍경이 내 마음의 불안을 잠시 잊게 한다.
전쟁같은 코로나여!
인간과 인간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는 잔인한 코로나여!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미치게 만드는 정신의 파괴자 코로나여!
너는 썩 물러서 가고, 물러 섰던 인간은 가까이 불러 오라!
다시금 서로의 온기로 상처 받은 마음 달랠 수 있게 하라!
간절히 올리는 내 기도를 이 착한 말이 말갈기 휘날리며 달려가 하늘에나 전해 주었으면 싶다.
꽃이 필 때는 오래더니 질 때는 잠깐이라는 최영미 싯귀처럼, 코로나 전쟁은 길고 잠깐 맛본 평화는 짧다.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202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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