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드 이야기 1 - 라면 끓이는 법

2018.06.26 02:47

서경 조회 수: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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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녀 제이드는 어릴 때부터 마음이 남달랐다. 어릴 땐, 공부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엄마를 대신해 나랑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있다 보면, 그 애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대단히 큰 사건이나 놀랄 만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단문장으로 끝날 무심한 생활 속에서 느낌표를 찍고 다시 한번 생각에 잠기게 하는 작은 행동들이다. 그 애의 따뜻한 마음은 핏속에 녹아 자연스레 흘러 나오는 것같다. 어린이는 누구나 천사 같다고 하나, 그 애 마음 한 켠을 보는 날이면 감사 기도가 절로 터져 나온다. “주님, 건강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손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제이드는 커 가고 세월은 빨리도 흘러 간다. 내 기억도 자꾸만 가물가물해져 아름다운 추억마저 잊어 버릴까봐 걱정이다. 부지런히 써야 겠다. 손녀 제이드와의 마음 다사로왔던 추억담도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남겨두어야 겠다. 이런 연유로 <제이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은, 그 두번 째 이야기다.*****

   

   제이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야기다. 학교에서 막 돌아온 손녀 제이드가 라면 먹고 싶냐고 물어 왔다. 당연히 나의 대답은 “예스!”였다. 솔직히, 라면보다도 고사리 손으로 끓여주는 손녀의 사랑을 먹고 싶어서 한 대답이었다.
  - 할머니! 꼬들꼬들하게 드시고 싶어요? 푹 삶은 거 드시고 싶어요?
  - 으응, 나는 늘 푹 삶은 게  좋지!
  - 네! 엄마는 꼬들꼬들한 거 좋아해요. 
  - 그래? 어디 맛있게 한 번 끓여 봐라.
  -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손녀는 힘차게 대답하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 라면 일인분을 끓여 내게 제일 먼저 갖다 준다. 푹 삶아 먹기 좋았다. 두 번 째, 제 엄마 라면을 끓여 왔다. 완전히 뜨거운 물에 잠깐 담구었다 나온 꼬들 라면이다. 세 번 째로, 자기가 먹을 라면을 끓여 왔다. 나와 제 엄마의 중간 퍼지기다. 
  세 명의 다 다른 취향에 맞추어 완전 맞춤 라면을 끓여 내 왔다. 세 번을 다 따로 끓여야 하는데도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즐겁게 끓여 내 오는 모습을 보니 여간 기특하지 않았다. 이때는 오버 액션이라도 반드시 리액션을 통해 기를 살려 줘야 한다. 
  - 와우! 이거 완전 맞춤 라면이네? 어떻게 끓인 거야? 시간 조절?
  - 네, 시간 조절도 중요하지만 푹 끓일 때는 라면과 물을 같이 넣고 두껑을 닫아요. 그리고 꼬들꼬들하게 할 때는 물을 끓인 뒤 라면을 넣고 얼른 불을 꺼요. 이땐 두껑을 닫으면 안 돼요. 그 다음, 내 거 끓일 땐 물 끓을 때 라면 넣고 두껑을 닿고 잠깐만 끓여요.
   손녀는 라면을 입에 넣는 와중에도 세세하게 설명을 해 준다. 열 살 짜리 꼬맹이가 라면 끓이기 달인이나 되는 듯 제법이다. 물을 붓고 라면을 넣고 끓여서 그릇에 담아 갖다 주고, 다시 새 물을 붓고... 이렇게 식탁과 부엌을 오가며 세 번이나 반복을 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냥 자기가 해야 하는 일상의 일인 것처럼 척척 해 낸다.

     진정한 사랑이란, '그럼에도'란 단서가 붙는다고 한다. 정말 우리가 하고 싶지 않는 이유를 든다면 아마 수천 가지도 더 되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 달지 않고 해 주는 것이사랑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을 담아 해 주는 게 더 큰 사랑이다. 라면 끓이는 일이 무어 그리 대단한 일이랴. 하지만, 그 단순 노동에도 마음을 담아 놀이인 양 즐겁게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고마웠다. 

   나는 그 날 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어찌 보면, 어줍잖은 일이지만, 마음을 담아 하는 것과 마음 없이 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내 삶의 모토도 ‘With Love’다. 무엇을 하든지 애정을 담아 할 일이다. 언제나 상대방이 기대하는 것보다 하나 더 하는 것이다.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고 기뻐 깜짝 놀라는 것. 그것이 바로 감동이 아닌가. 애정을 가지고 하면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 아이디어는 감동으로 이어진다. 
  이런 습성은 나도 어릴 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이를 테면, 어머니가 외출하시면서 설거지 좀 해 놓으라 하면 솥을 반짝반짝하게 닦아 놓는다. 더 나아가, 장독까지 반질반질하게 씻어 둔다. 그러고는,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곧 일어날 일이  영화나 연극 한 장면처럼 떠올라 입꼬리가 절로 올라 간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 오신 어머니는 윤이 나는 솥을 보고 놀라고, 반질반질한 장독을 보고 또 한번 놀란다. 그리고 함박웃음과 함께  “하이고! 우리 희선이가 솥도 닦아 놓았네? 세상에! 우리 희선이가 장독도 씻어 놓았네?”하며 감탄한다. 엄마의 오버 액션이다. 나는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그게 바로 내 행복이었다.  
  커서도 그 마음과 기분은 변하지 않았다. 요즘도, 단체 편지를 부칠 때는 우정 우체국까지 가서 예쁜 콜렉션 우표를 사서 붙인다. 편지 받는 사람에게 작은 기쁨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편리한 이메일보다 수고가 좀 더 들어가더라도 우편 메일을 선호하는 이유다. 요즘은 수사도 감동이란 수식어를 쓰는데 하물며 우리 일상의 삶에 있어서랴. 
  딸에게도 일러 두었다. “혹, 내가 죽고 없더라도 이 말만은 잊지 말아라. With Love! 무엇을 하든지 애정을 가지고 하란 뜻이야. 첫째, 너가 행복하고 둘째는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니까. 내가  한 모든 말은 다 잊어도 좋다. With Love! 이것이 나의 유언이다.” 나는 딸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길 원하기 때문에 시간 있을 때마다 이 말을 강조하곤 한다. 
  손녀에게는 다잡고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제이드는 태성이 그런지 어릴 때부터 마음씀이 남달랐다. 어릴 때도 나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한 일이 많았는데, 이 날도 내겐 다사로운 그 애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감동적 사건이었다. 라면 끓이는 어줍잖은 일에도 마음을 담는 일. 삶의 행복이란, 비록 적을지라도 이런 마음 조각 하나 주고 받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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