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께

2009.05.03 16:54

지희선 조회 수:513 추천:82

아버님께


아버지! 아버지를 못 뵈온 지도 칠 팔 년이 되었군요.
건강은 어떠신지요? 점점 눈이 어두워 실명할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많이 울었답니다. 이제 아버지 연세도 여든 일곱이 되셨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우리 아버지만큼은 만년 청년으로 있을 줄 알았지요.
아버지는 술 담배도 안 하시고 언제나 낙천적으로 사시는 분이었기에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나 봐요.
아버지!
아버지는 아들 둘과 딸 넷 중에서 저를 제일 귀여워하셨지요. 저를 ‘천사’라고 불러주신 분도 이 세상에 오직 아버지와 어머니뿐이랍니다. 지금 나를 아는 친구들이 헛웃음칠 일을 아버지는 신념으로 믿고 있잖아요.
저를 낳아주시고 믿어주시는 아버지! 정말 고마워요.
아버지는 가장 아름답고도 큰 선물인 제 이름을 지어주셨죠.‘지 희 선’이라고 지어주시면서 이름의 내력까지 설명해 주셨지요. 무릎 위에 앉히시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면서 저에게 어머니 대신 꾸신 태몽을 이야기해 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히 떠오르네요. 그때가 한 다섯 살 쯤 되었던가요?
제 이름, 지 희 선은 못 ‘지’에 딸아이 ‘희’ 그리고 신선 ‘선’이라 해서 <신선이 준 딸아이>란 뜻이라지요.
제 이름에 대한 태몽은 마치 동화와 같이 아름다웠지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제게 자부심을 불러일으켜 주었고,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었죠. 이거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 아니겠어요?
바로 이런 꿈이었지요.
무역선을 타고 아버지께서 일본으로 가시던 현해탄 한 복판이었다지요. 그날 밤, 꿈을 꾸시는데 하늘로부터 무지개다리가 놓이더니, ‘옥황상제’가 강보에 싼 아기를 안고 천사들과 함께 그 무지개다리를 타고 걸어서 내려왔다죠. 아버지는 빛과 함께 내려오시던 그 분을 차마 올려보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조아리고 엎디어 있었다지요. 그때 아버지 위로 우렁찬 소리가 들리더니, “이는 내 딸이니 잘 길러라!” 하시며 강보에 싼 아기를 덥석 아버지 품에 안겨주셨다죠. 아버지께서 미처 대답도 하시기 전에 ‘옥황상제’님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노라고. 아버님은 예사로운 꿈이 아니라, 일본에 도착하시자마자 임신 중이던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지요. “이번에는 틀림없는 딸이요. 그것도 옥황상제가 준 딸이란 말이요. 신선이 준 딸아이니 그 이름을 ‘희선’이라 짓겠소.”하고 말이에요.
그때만 해도 임신 5개월밖에 안 된 어머니는 아이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딸이라니 싶어 반신반의 했다면서요? 제가 태어나면서 그 꿈은 현실이 된 거지요. 마치,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이름을 받으신 것처럼 말이에요.‘와우! 내가 옥황상제 딸이라니!’ 정말 신났지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쭐했었죠.
그런데 그것도 잠시, 사춘기에 접어들자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생각에 잠기게 되었지요. ‘가만 있자, 내가 옥황상제 딸이면 하늘나라에 있어야 되는데 내가 왜 지상에 있지?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기에 하늘나라에서 쫓겨났을까?’ 그때부터 전 말이 없어지고 생각이 많은 아이로 바뀌어갔지요.
그러다가, 어른(?)이 되면서 다시 한 번 생각의 반전이 온 거지요.
‘아니지. 내가 죄를 지어서 하늘나라에서 쫓겨 온 게 아니지. 그렇다면 한 발로 차 버리지, 나를 강보에 곱게 싸서 손수 무지개다리를 타고 내려와 우리 아버지께 드릴 리가 없지. 내가 이 땅에 온 건 무슨 뜻이 있을 게야.’ 하고 말이에요.
불교를 믿던 아버지께서는 ‘옥황상제님’이라 칭하셨지만, 그 분이 바로 제가 믿는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이 아니겠어요?  저는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왔으며 바로 ‘주님의 딸’이니까요. 꿈과 현실이 이토록 절묘하게 떨어지다니, 정말 멋지지 않아요? 아버지께서는 '옥황상제 딸'을 잘 길러주셨으니, 그걸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죠. 물론 천국은 공로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들어가는 나라라지만, 아버지는 거지에게도 밥상을 차려주시던 분이었으니 많이 봐 주실 거에요.
아버지!
아버지는 좋은 이름도 지어주시고, 용돈도 주시고, 칭찬도 아낌없이 해 주셨는데 저는 해 드린 게 너무 없네요. 내년에는 한국에 나갈 예정이니 그때까지 건강하게 계셔 주세요.  
그럼 다시 뵈올 때까지 안녕히........     < 사랑하는 딸 ‘희선’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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