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시조 - 그대의 창 + 영역

2018.07.07 08:07

서경 조회 수:124

그대의 창 일본어.PNG



그대 없는 창에도 별꽃은 피더이다
피고 지고 지고 피는 별꽃 송이 사이사이
얼비친 당신 얼굴이 보름달로 뜨더이다

그대 있던 창에도 별꽃은 지더이다
지고 피고 피고 지던 별꽃 무덤 사이사이
당신은 그믐달 되어 밤하늘로 숨더이다

그대 없는 빈 창에도 계절은 오더이다
오고 가고 가고 오는 바람같은 세월에도

당신은 내 마음 은하에 초승달로 뜨더이다


- The window for thee


The window without thee

And yet, starry flowers in bloom

Opening, wilting and falling, then opening

In every gap of the starry petals

The dim figure far away looms in full moon

 

The window that accompanied thee

Yet, starry flowers wither

Wilting, opening, and opening, then falling,

Among the scattered tombs

Thee in a waning crescent vanish into the night sky

 

At the empty window

Four seasons still come and go

coming, going and going and coming

Through the years like the wind

Thee in milky way of my heart springs up a waxing crescent


(번역 :강창오)

(남가주 창작 가곡제 출품작) 



* 시작 메모 - 몇 년 전, 한국 시조 시인들에 의해 전 세계로 시조 보급을 하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최필 시인과 함께 <세계시조포럼(세시포)> 미주 발기인직을 맡게 되었다. 시조 시인들이 대부분 연로해서 심부름을 해 줄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졸지에 밀려서 얻게 된 '가문의 영광'이다. 사실, 미주에서는 수필 위주로 발표했기에  98년도에 <현대 시조>로 등단한 시조 시인임에도 대부분 문우들도 내가 시조를 쓰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세시포' 멤버가 되면서 함께 묻혀가다 보니 내 졸시가 현해탄을 건너 일본어로 번역되어 시집에 실리는 영광까지 얻게 되었다. 나무에 새긴 '목시조전'과 옻칠 명인이 그림을 그리고 이지엽 시인이 글씨를 써 서울 인사동 화랑에 걸렸던 '옻시조전', 부산 구덕 문화 공원 산책길에 3년간 전시된 '산책로 시조전', 한 시간짜리 교통 방송에 초정 이상옥 선생 <봉선화>와 함께 내 작품 <해바라기>가 소개 된 '생활 시조 방송', 시조와 국악의 만남을 시도한 '시조 국악제' 등등 갑자기 시조로 엄청 바빠졌다. 한국에서 거세게 불 타 오르는 민족 문학인 시조 보급 운동은 내 개인사로도 큰 영향과 자극을 받았다. 사실, 미주 시조계 대부 김호길 선생 권유로 시조를 쓰게된 이후로도, 애써 외면하던 시조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백수 정완영 선생을 미주로 초대해서 시조 특강을 들을 때도 숙식을 친정 언니 (동시 작가 백 리디아)가 맡다 보니 잔신부름을 해야 했고, 급기야 한국까지 나가서 정완영 시조비를 둘러 보는 문학 투어도 동참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시조계 일꾼인 권갑하 시인과 박구하 시인도 만났고 최근에는 <친구에게 들려주는 시조(친시조)>에서 회장으로 일하는 류안 시인까지 알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인연을 빌미로, 미주 시조인 특집 원고 청탁도 내가 대신해 줄 때가 많다. 작품도 시시때때로 요청해 오니, 평소에 작품을 '저금'해 두지 않으면 원고 마감일을 지킬 수도 없는 실정이다. 특히, 얼마 전부터 우연히 내 문학서재를 스쳐가던 길손(?)이 답글로 내 시를 영역해 주는 바람에 더욱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필이면 수필, 시조면 시조. 나오는대로 부지런히 써 두어야 겠다. 엄격히 말해서, 등단한 문인이라면 작품을 열심히 써야 하는 건 정한 이치요 우리의 책무다. 평소엔 전혀 쓰지 않다가, 일 년에 작품 한 두 편 내는 동인지 원고조차 마감일을 지키지 못한다면 문인으로서의 직무유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타의든 자의든, 밀려가든, 앞장 서 가든 자기가 노는 물에서는 좀 부지런할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 이 <그대의 창>은 내 외국 손님 Sonny가 남편을 잃고 우울증에 빠졌다가 자기 자신도 10개월 뒤에 남편을 따라간 자못 슬픈 일이 모티브가 되었다. 그녀는 내가 무척 좋아하던 손님으로 베벌리 힐스에서 태어나, 베벌리 힐스에서 살다가, 베벌리 힐스에서 죽은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그녀의 죽음은 내게 큰 충격과 슬픔을 주었다. 그녀가 밤마다 창밖 달을 보며 남편을 그리워한 것처럼, 도무지 화낼 것같지 않는 그녀의 온화한 얼굴이 달과 함께 떴다 졌다 하며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러자, 나를 떠나간 모든 사람들이 새삼 그리운 얼굴을 하고 내 창밖을 기웃대는 게 아닌가. 그 그리움을 달에 비추어 형상화시켜 보았다. 사랑이 그렇듯, 그리움이란 녀석도 우리들 가슴에 늘 보름달로 차 있는게 아니라 그믐달로 잊혀져 있다가 초승달로 보름달로 그 부피를 달리하며 되살아 나곤 한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감성과는 상관없이 계절은 오고 가고 달은 또 뜨고 지고 한다는그런 이야기다. 어쩔 수 없이,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 초상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달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고 그리움조차 없어지는 건 아니리라. 때 되면, 어김없이 둥그런 보름달로 뜨는 걸 어이하리야. 그리울 땐 그리워 하고, 잠시 잊혀질 땐 '죄책감 없이' 잊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들 삶이 아닐까 싶다. 얘기를 잠깐 돌려, 일본 편집부 직원이 일을 제대로 못해 조금 화가 난다. 3 수전체를 옮겨야 제대로 될 내 연시조를 중간 2연 한 수만 옮기는 바람에, 보름달에서 그믐달로 그믐달이 다시 초승달로 되살아 나는 그 그리움의 써클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믐달로 가두어 나의 그리움은 성장을 멈춘 아이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내 한자 이름 '아씨 희'자 까지 '바랄 희'로 썼다. '신선이 준 딸아이' 희선이에게 뭘 바랄 게 있는지, 원. 꼼꼼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일본인도 교정에 대해서는 완벽할 수가 없나 보다. 실수는 인간 보편적인 '덕목'이다. 어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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