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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무엇이 되어 우리 다시 만나랴 : 김환기>                                  


***** 언젠가 한 수필가가 글소재에 관해 말했다. 손자 손녀 얘기나 강아지 얘기는 하지 말라고. 뻔한 얘기고 딱 지겹다고. 나는 그 사람에게 아내 얘기나 골프 이야기 좀 그만 쓰라고 하고 싶었다. 뻔한 소재에 딱 지겹다고. 하하. 나는 언제나 쓰고 싶은 거 쓴다. 보고, 듣고, 느낀 것. 심지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꿈이야기도 쓴다. 나는 수필가다. 돌 밑에 숨겨 놓은 보물 쪽지를 찾듯, 나는 삶을 관망하며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사람이다. 쓰지 못할 소재도 없고 하지 말아야할 얘기도 없다. 다만, 조심스런 얘기나 부끄러운 얘기는 가자미 식혜 삭히듯이 시간을 두고 좀더 곰삭힐 뿐이다. 내가 찾은 보물이 연필 한 자루면 어떻고 공책 한 권이면 어떠랴. 하얀 보물 쪽지를 찾고는 세상 다 얻은 포만감을 느꼈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한다. 나를 주체로 하여 일어나는 모든 이야기는 수필감이다. 뼈다귀 해장국처럼 비록 볼품 없어도 거기서 건져낼 뼈다구 하나 있으면 그건 나의 글감이다. 내 어줍잖은 글이 민들레 홀씨처럼 누군가에게 바람 타고 날아가 꽃 한 송이 피운다면 그 또한 나의 행복이다. 선생이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시인이란 잊고 있는 것을 되살려 준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잊고 지내던 것을 함께 다시 생각해 보자고 쓰는 나의 수필, 나의 시들. 가끔은 길게 풀고, 더러는 사진 한 컷 찍듯 짧게 쓴다. 그것이 수필이란 그릇에 담겨져 나오기도 하고 시조나 시 그릇에  담겨져 나오기도 한다. 글을 쓸 때 나는 언제나 가상의 연인을 떠올린다. 한 마디로  "오늘은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며 들려주듯 쓰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난 학교 갔다 오면 어김없이 어머니께  생활 보고를 했다. 가감없이 내 느낌 그대로 전해 주면 어머니는 늘 흥미롭게 들어 주셨다. 그것이 나는 즐거웠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쓰기 시작한 그림 일기부터 내 모든 작품의 첫번 째 독자는 어머니였다.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나의 '따뜻한' 평론가로 격상했다. 초고를 쓰고 난 뒤에는 꼭 어머니께 읽어 드리며 어떻느냐고 되물었다. "내가 뭐 아나?" 하시면서도 "우째 그리 본 듯이 썼노?" 하면 그건 최대의 찬사였다. 가끔,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얘기를 쓰면, "그런 얘기 말라꼬 쓰노?"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어머니 돌아 가신  지 6년. 나는 나의 첫 번째 독자였고, 평론가였던 귀한 사람을 잃어 버렸다. 이젠, 어디에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의 독자가 내 어머니를 대신하고 있다. 대중성은 없어도 내 글을 눈 여겨 봐 주고 좋아하는 몇몇 마니아가 있는 것만 해도 나는 행복하다. 남은 날이 얼마 없어서인가. 보고 듣고 하는 나의 소소한 일상 하나 하나가 다 내게 말을 걸어 온다. 난 몽당 연필처럼 그들이 일러주는 얘기들을 그저 받아 쓸 뿐이다. 일찌기, '문학적'이라는 무거운 옷도 벗어 버렸고, '언어의 마술'이라는 묘사도 능력 부족으로 내려 놓았다. 소재의 변별성과 부사나 형용사의 절제에서도 마음을 비웠다. 평가 받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쓰고 싶어서 쓰는 글, 여러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이 아니라 한 연인에게 들려주는 내 생속의 말인 까닭이다. 요즘 따라, 수필 대가들이 금기시 하는 '신변잡기'를 많이 쓰게 된다. 작가가 직접 그것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수필 장르의 친근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소한 내 일상의 얘기가 내게 맞춤옷같이 편해서이다. 얼마 전에, 동부에서 오신 변완수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요즈음은 편한 게 좋습니다. 글 소재도 그렇고, 사람 관계도 그렇고....." 했더니 "편하면 못 쓴다"고 하셨다.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이고, 어려운 인간 관계도 풀어 나가야 한다는 일침이리라. 하지만, 게으른 나에게는 '편한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언젠가부터 나는 글쓰기가 참 편해졌다. 정찬열 시인이 "밥 하기보다 더 쉬운 글쓰기'란 제하로 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다. 글쓰기가 노동이 아니라 놀이가 된 날을 가만히 짚어 보면, 2014년 시월의 마지막 날 카카오 스토리에 내 일상적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같다. 원고 마감 날짜도 없고, 정해진 길이도 없고, 굳이 문학적일 필요도 없었다. 스마트 폰은 정말 스마트했다. 손바닥에 든 전화기에 또닥거리고 쓰기만 하면 된다. 손님이 오면, (계속) 해 놓고는 멈추면 되고, 가고 나면 다시 연이어 쓰면 된다. 글을 완성 못했으면, 퇴근 후 차 안에서 계속 쓸 수도 있다. 어느 새 밤이 되기도 한다. 주변은 고요하고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달님만 나를 지켜 보고 있다. 달빛은 천하를 비추지만, 이 순간만은  달님도 나만의 것이다. 그 곁에 뜬 별님도 때론 친구가 된다. 알퐁스 도테도 만나고 무수한 점을 찍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란 별그림을 그린 점묘화 화가 김환기도 만난다. 그가 그린 무수한 점 하나 유성별 되어 내 가슴에 안긴다. 이런 밤은 다시 없이  고귀하고  비밀스런 밤이다. 어둔 밤이 새벽을 향해 쉬임없이 달려가는 시간. 정갈해진 내 영혼은 내적인 행복으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포만감. 이거야말로 글 쓰는 이의 청복이 아닐까. 글 쓰는 즐거움은 문인이 아니라도 가질 수 있다. 굳이 대단한 의미 부여를 안 해도 쓸 수 있다. 이런 배짱으로 나는 글을 쓰고 즐긴다. 글을 쓴다는 건 지상 고백성사다. 털고 나가는 일이다. 빈 그릇에 새로움을 채우는 일이다. 그게 슬픔이든 고통이든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고 절로 소리치는 신과의 독대다. 또한, 글 쓰는 일은 시간의 일부를 떼어내는 일을 너머 영혼의 일부를 바치는 일이다. 표현의 욕구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나온 우리에겐 어쩌면 글쓰기란 하나의 신탁인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나 글을 썼으면 좋겠다. 인간적인 부끄러움이나 표현의 미숙함으로 망설일 필요도 없다. 일단, 시작해 보는 거다. 연필 하나 노트 한 장 있으면 그만이다. 이젠 누구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 폰 하나면 된다.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 왜 거창한 데카르트 이름이 튀어 나오는지 모르겠다. 글쓰기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요즈음이다. 오늘 아침, 문득 손녀가 생각 났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손녀다. 손녀를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함께 떠오르는 건 ‘따뜻한 마음’이다. 스무 살이 되었어도 그 마음이 여전하다. 이제는 냇물에 떠내려간 종이배같이 아쉬움 남는 추억담이지만, 생각나는 대로 하나 하나 써 나가고 싶다. 수필가는 삶의 증언자요, 나눔의 휴머니스트가 아닌가. 게다가, 내 손녀는 어쩌면 이 세상 빛을 못 볼 뻔했던 Teen Mom의 딸로 각별한 목숨값을 지닌 아이다. 장편 소설 같은 그 애의 탄생 다큐는 천천히 써 나가기로 하고 짤막한 소품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혹, 손녀 자랑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건 내 표현의 미흡함과 필력의 문제리라. 다만, 어른인 나조차 미처 갖지 못한 그 애의 깊은 생각과 때묻지 않은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어 손녀 제이드 이야기를 쓸려고 한다. 사실, <제이드 이야기>란 수필 연작에 들어가기 전, 소재 선택의 변명으로 간단히 쓸려고 했던 머릿말이 장황하게 길어졌다. 한편으론, 이 기회에 내 수필관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내 애정어린 독자들은 어머니가 늘 그래 주셨던 것처럼 "마아, 개안타. 쓰기나 해라!'하고 격려해 주시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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