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다시 출발선에 서며

2018.05.01 04:50

서경 조회 수:22


 다시 출발선에 서서.jpg



  다시 출발선에 섰다. 새로운 시작이다. Happy Runners! 이름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 
  올 1월에 122명의 회원으로 창단한 해피 러너스는 창단 4개월째 접어 들지만, 오래 닦아 온 내공으로 그 저력만은 누구도 근접하지 못한다. 윤장균 회장님을 위시하여 전 회원이 열정과 의욕에 가득 차 있어 보기 좋다. 30여 년전 같은 성당에 다녔던 교우들도 몇 명 있어 반갑기 그지 없다. 
  매주 일요일 새벽 6시.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Cerritos Regional Park에서 연습한다. 수준 별 세 개의 팀으로  나누어 뛴다. 각 팀 별로 코치 지도를 받으며 수준 비슷한 동료와 뛸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
  사실, 이전 같으면 마일당 12분으로 중간 팀에 갈 수도 있으나 지금은 '걷고 뛰고' 초보 팀으로 들어가야 한다. 뒤쳐져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법. 부지런히 연습하다 보면 원래의 페이스를 찾지 않을까 싶다. 애나하임으로 이사 온 이후로 마땅한 팀을 찾지 못해 거의 10개월간이나 휴면기를 가졌다. 
  4월 15일 일요일 새벽, 처음으로 '걷고 뛰고' 팀에 들어가서 5마일 정도 뛰었는데 다리 근육이 뻐근하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다. 계속 운동 안 하면 자기만 손해다. 
  하지만,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팀에 들어가 적응을 못하면 마라톤 자체가 지겨울 수 있다. 그럴 땐,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재충전의 기회를 가져 보는 것도 좋다. 달리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Fun Run'이다. 그래야 계속 뛰게 되고 값진 열매도 얻게 된다. 
  두 번 째 날인 4월 22일. 30년만에 만난 옛교우와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마지막 바퀴를 돌았다. 모닥불은 피우지 않았어도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즐겁게 뛰고 들어오니, 오늘은 특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빵 대신, 푸짐한 삼겹살이다. 다음 주에 있을 라스베가스 마라톤 출전 선수들을 위하여 응원 차 마련한 삽겹살 파티였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전 회원이 잘 먹었다. 
  제대로 갖춘 완전 특별식이다. 상추쌈에 깻잎, 양념 새우젖과 쌈장, 거기에 집에서 담근 막걸리 한 모금까지 환상이었다. 알고보니, 음식점을 경영하고 계시는 김순원과 원태 부부의 특별한 배려였다. 앞치마를 두르고 서브하는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프로는 역시 살아 있었다. 
  게다가, 우리 테이블은 전문 세프 뺨치는 '찐드기' 별명의 회원이 김치까지 구어 고기 위에 올려주는 바람에 최상의 맛이 배인 삽겹살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같은 테이블에 앉은 회원들 별명이 참 요상타. '내복'에 '찐드기'에 '제임스 본드'. "여기 엘 에이는 겨울 내복이 필요 없건만 추위를 많이 타시나 보죠?"하고 나도 웃으며 농담 한 마디 보탰다. 탁구 협회 로고가 선명한 티셔츠는 이름이 '래복'이라 그리 됐다며 껄껄 웃는다.
  '찐드기'란 분은 또 소 잔등에 들어 붙어 피를 빨아 먹는 '찐드기' 습성에 관해 열변을 토한다. 그건 쇠파리가 아니냐고 반문하니, 쇠파리는 날라가지만 '찐드기'는 딱 붙어 있다며 쇠파리와 찐드기도 구분 못하느냐며 의심쩍은 눈으로 본다. 내 '또디기 2탄 시리즈''가 나올 조짐이 보인다. 
  드라큐라 시리즈가 끝나고, 카메라를 멘 '제임스 본드' 차례다. 쫀득쫀득한 찐드기 얘기가 아직도 여운이 남아 한국말로는 '찐드기', 미국말로는 '뽄드' 같이 들려 둘 다 들어붙기 명수로 보인다. 역대 '제임스 본드' 얼굴하고는 거리가 먼 듯한데 별명 하나 근사하다 했더니 모두 와르르 웃는다. 즐거운 담소와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농담은 파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양념이요 소화제다. 
  삼겹살 파티의 백미는 삽겹살과 김치가 어우러진 비빔밥과 누룽지. 남은 밥을 긁어 와  뜨거운 구이판에서 열심히 비벼댄다. 하지만, 이런 낭패가 있나. 시일야 방성대곡은 아니지만 오호 통재라. 배가 불러, 비빔밥과 누룽지는 맛도 못보고 '그저 바라만 보는 그대'가 되었다. 
  어디서 왔는지 다른 테이블 회원들까지 젓가락을 들고 모여든다. 그 중엔 점잖은 윤회장도 끼어 있다. 많은 젓가락들이 바쁘게 오간다. 오고 가는 두 개의 젓가락이 마치 11자 두 다리를 닮았다. 마라톤 선수들의 발들이 저렇게 부지런히만 움직여 준다면, 기록 갱신은 따 놓은 당상이 아닐까 싶어 "쿡"하고 웃음이 났다.
  하하호호. 머리 위로 솟은 태양도 함박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내려다 본다. 이번 5월에 있을 제1기 마라톤에 등록하여 제대로 배워 열심히 뛰어야 겠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거다.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 더도 덜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 울리나니.
  라스베가스 마라톤 출전 선수 모두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또한, 일요 모임을 위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임원과 수고하시는 모든 봉사자님께도 고개 숙여 감사 드린다.
  해피 러너스! 화이팅!!!
                                      (사진 : 제임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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