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나비와 달팽이 (제 1 동화집)

2007.02.14 08:07

홍영순 조회 수:979 추천:133

                  아기나비와 달팽이
                                            
                                          
                                                  홍 영순

                          
여름밤입니다.
한낮의 더위가 풀숲에 드는 것을 보고 달빛이 산기슭으로 내려왔어요.
밤이 깊어 숲 속이 조용해지자 떡갈잎에 달팽이가 가만가만 집 밖으로 몸을 내밀었어요. 달팽이는 길게 기지개를 켜고는 이슬을 받아 목욕을 시작했어요. 그러자 옆에서 누군가 소리쳤어요.
“앗 차가워!”
깜짝 놀란 달팽이는 허겁지겁 집속으로 쑥 들어갔어요. 잠시 후 살그머니 밖을 내다보던 달팽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며 말 했어요.
“어마나, 호랑나비잖아요!”
그러자 호랑나비가 날개에 묻은 이슬을 털며 말했어요.
“아, 당신은 멋진 집을 가진 달팽이군요!”
“고마워요. 당신처럼 아름다운 나비가 내 집을 칭찬해주다니 정말 기쁘군요.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오셨나요?”
“알을 낳으려고 왔어요.”
“그래요? 여기는 산비탈이라 나비들이 알을 낳으러 잘 오지 않는데요.”
“요즘은 논과 밭에 농약을 뿌리기 때문에 들에다 알을 낳을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잘 되었네요. 이 산비탈에도 곧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날겠네요.”
호랑나비가 왔다간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달팽이는 눈을 뜨자마자 어젯밤 호랑나비가 앉았던 풀잎을 보았어요. 정말 풀잎에는 아주 조그만 알 하나가 있었어요.
“아! 네가 호랑나비 알이구나.”
달팽이는 호랑나비 알을 보자 어젯밤에 본 호랑나비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호랑나비 알을 자랑하였어요.
“이 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랑나비 알이야.”
그러자 자나가던 베짱이가 날개를 사각사각 비비며 말했어요.
“이 작은 알이 호랑나비 알이라고? 어떻게 그걸 알아?”
“어제 밤에 호랑나비가 알 낳는 것 보았거든.”
그때 포르르 날아가던 무당벌레가 말참견을 했어요.
“무슨 소리야? 난 아직까지 호랑나비가 여기까지 와서 알 낳는 걸 못 봤어.”
“정말 호랑나비가 왔었다니까. 농약을 피해서 여기까지 온 거래.”
그러자 이번엔 여치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긴 더듬이를 흔들며 말했어요.  
“잘 못 보았겠지. 이 작은 알에서 어떻게 나비가 나와?”
풀벌레들이 달팽이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며 돌아간 후 며칠이 지나갔어요.
낮잠을 자던 달팽이는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깨었어요.
달팽이가 소리 나는 쪽을 보자 호랑나비 알에서 쪼그만 애벌레가 기어 나오고 있었어요. 애벌레를 보고 있던 달팽이가 두리번거리며 물어 보았어요.  
“나비는 어디 가고 네가 나오니?”
“........?”
“아가! 그럼 네가 아기나비냐? 그렇구나, 네가 아기나비구나!”
달팽이는 엄마 없는 애벌레가 불쌍했어요. 그래서 연한 산초나무 잎을 조금 뜯어주며 말했어요.
“아가! 나는 달팽이야. 너는 호랑나비 아기니까 이제부터 네 이름을 아기나비라고 하자. 어떠니? 네 이름 좋지?”
달팽이는 호랑나비 애벌레에게 ‘아기나비’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줬어요.
달팽이 말에 안심이 된 듯 아기나비가 산초 나뭇잎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어요.  
그때였어요. 무당벌레가 날아오더니 예쁜 날개를 접으며 말했어요.
“에게? 요 작은 벌레는 어디서 왔니?”
“.........”
“그러고 보니 호랑나비 알이 없어졌네. 그 쪼그만 알이 어디 갔지?”
머뭇머뭇 하던 달팽이가 아기나비를 안으며 조그맣게 말했어요.
“여기 있잖아.”
“아니 그럼 이 애벌레가 호랑나비란 말이야?”
무당벌레의 호들갑에 숲 속이 시끄러워지고 풀벌레들이 모여들었어요.
“뭐? 호랑나비가 왔어?”
베짱이와 여치가 오고, 딱정벌레와 방울벌레도 왔어요. '맴맴' 거리며 온 산이 떠나가라 노래 부르던 매미도 날아왔어요.
“호랑나비가 어디 있어?”
모두들 두리번거리며 호랑나비를 찾자 달팽이가 목을 움츠리며 대답했어요.
“여기 아기나비가 있잖아.”
“아니 이 새똥처럼 생긴 애벌레가 아기나비라고?”
“거짓말하지 마. 나비는 이렇게 안 생겼잖아.”
“맞아. 날개도 없는데 무슨 나비니?”
모두들 아기나비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한마디씩 하자 달팽이가 다시 말했어요.
“아기나비라서 그래. 곧 나비가 될 거야.”
“아이고, 참 한심하군. 이 못생긴 벌레가 나비가 된다면 내가 먼저 나비가 되겠다.”
모두들 한참동안 찧고 까불더니 그것도 시큰둥한지 돌아갔어요.
그동안 불쌍한 아기나비는 작은 더듬이로 얼굴을 가리고 풀잎에 엎디어 꼼짝도 못하고 있었어요. 아기나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밤이 되어도 아기나비는 풀잎 밑에 엎드려 몸을 웅크리고 눈물만 흘렸어요. 별님들이 아기나비를 달랬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달팽이도 잠을 못 자고 아기나비 옆에서 밤을 지냈어요.  
아침이 되자 아기나비는 기진맥진하여 겨우 나뭇잎에 붙어있을 뿐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어요. 달팽이는 엄마 없는 아기나비가 너무나 가여웠어요.
“아기나비야! 그러다 병나면 어쩌려고 그러니?”
아기나비는 너무 지쳐서 눈도 못 뜨고 말했어요.
“우리 엄마는 어디 있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달팽이가 가만히 다가가서 아기나비를 안으며 말했어요.    
“아가! 나를 엄마라고 해라. 네가 진짜 엄마를 찾을 때까지 내가 엄마가 되어줄게.”
그러자 울기만 하던 아기나비가 조그만 두 개의 더듬이로 달팽이 목을 안고 얼굴을 비비며 말했어요.  
“정말 엄마라고 해도 돼요?”
달팽이는 아기나비를 애처롭게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아기나비야! 그렇지만 너희 진짜 엄마는 아름다운 호랑나비란다. 예쁜 꽃들이 주는 달콤한 꿀을 먹고 훨훨 날아다니는 호랑나비야.”
“그럼 언제 엄마를 볼 수 있나요?”  
“네가 다 커서 진짜 나비가 되면 찾아 갈 수 있어.”
달팽이 품에 안겨 이야기를 듣던 아기나비가 울음을 그치고 물어보았어요.
“얼마나 있으면 나비가 되는 데요?”
“지금처럼 울기만 하고 안 먹으면 오래 오래 있어야만 나비가 되거나 영 나비가 못 될 수도 있지. 잘 먹고 아프지 않으면 빨리 나비가 될 수 있지 않겠니?”
“그러면 이제부터 잘 먹고 빨리 빨리 자라서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될게요.”
“그래! 그래야지! 넌 반드시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될 거야.”
아기나비는 조그맣고 예쁜 입을 벌려 아삭아삭 맛있게 나뭇잎을 먹기 시작했어요.

아기나비는 하루가 다르게 자랐어요.  
아기나비가 달팽이 옆에서 몸을 쭉 늘리며 자기가 더 길다고 우기던 날이었어요. 달팽이도 지지 않으려고 집 밖으로 몸을 쭉 내밀었어요. 그때 산새 한 마리가 나무 사이로 날아오는 게 보였어요. 순간 달팽이가 아기나비에게 급히 속삭였어요.
“아기나비야, 어서 나뭇잎 뒤로 숨어. 빨리 빨리!”
달팽이는 재빨리 아기나비를 나뭇잎 밑에 숨기고 그 위에 올라앉았어요. 곧 산새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한바퀴 돌고 다른 곳으로 날아갔어요.
산새가 날아가자 달팽이가 걱정스레 말했어요.
“어휴! 큰일 날 뻔했다. 저 산새는 벌레를 잡아먹는 새야. 이제부터 너 조심해야 되겠다. 낮엔 나뭇잎 뒤에 숨어 있는 게 좋겠어.”
그러자 아기나비가 ‘푸-우’ 한숨을 쉬며 대답했어요.
“답답해도 엄마 말대로 할게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며칠이 지났어요.
아기나비는 어느덧 커다란 애벌레가 되었어요. 새똥처럼 흑갈색이던 몸도 녹색으로 변해 나뭇잎에 있으면 잘 보이지 않았어요.
하루는 아랫마을 아이들이 매미채와 여치 집을 가지고 산기슭으로 올라왔어요. 맨 앞에 오던 남자아이가 달팽이를 보자 친구들을 불렀어요.  
“얘들아! 여기 달팽이 있다. 우리 학교에 가지고 가자.”
순간 아기나비가 허겁지겁 달팽이집 위로 올라가며 소리 쳤어요.
“안 돼! 절대로 안 돼! 우리 엄마를 데려가지마. 가까이 오면 물어버릴 거야.”
달팽이를 잡으려던 아이가 아기나비를 보자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어요.
“어? 여기 예쁜 벌레도 있었네! 야, 우리 벌레도 잡자.”
그러나 뒤에 따라 오던 여자아이는 아기나비를 보자 뒤로 물러서며 말했어요.
“야, 이 벌레는 예쁘기는 해도 너무 크고 무섭다. 저것 봐, 거품을 내뿜잖아. 물 것 같아.”
아기나비가 머리를 내두르며 금방이라도 물것처럼 설치자 입에선 정말 거품이 나오고 아주 무서워 보였어요.
아이들은 달팽이와 아기나비를 그냥 두고 매미를 잡으러 다른 데로 갔어요.
아이들이 멀어지자 달팽이는 아기나비를 밀어내며 야단을 쳤어요.  
“아기나비야! 누가 널 보고 그렇게 하라고 했니? 하마터면 네가 잡힐 뻔했잖아.”
“그럼 어떻게 해요? 엄마를 학교로 잡아간다고 하잖아요.”
달팽이가 아기나비를 안으며 말했어요.
“아기나비야! 왜 내가 네 마음을 모르겠니? 그렇지만 다음엔 그러지 마. 네가 위험해지잖아. 약속할래?”
아기나비가 더듬이를 뒤로 감추고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어요.
“아뇨! 그런 약속은 안 할 거예요.”

그리고 이틀이 지났어요. 아기나비가 하품을 하며 달팽이에게 말했어요.
“엄마! 왜 자꾸 졸리지요?”
“그러니? 그럼 이제 나비가 되려나 보다. 어서 나뭇가지에다 집을 짓고 자라.”
“나비가 된다면서 왜 자라고 하세요?”
“네가 자는 동안 네 몸이 변하여 나비가 되는 거야.”
“정말 자는 동안 나비가 될까요?”
“아무걱정 말고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자라니까.”
“그럼 그동안 엄마는 어디 있을 건가요?”
“여기서 너 지켜볼게.”
아기나비와 달팽이는 더듬이를 마주잡고 흔들며 굳게 약속했어요.
“엄마, 약속하는 거죠? 내가 나비가 될 때 까지 꼭 여기 있어야 해요.”
“약속할게. 네가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될 때 까지 여기서 기다릴게.”
아기나비는 달팽이에게 뽀뽀를 한 후 옆에 있는 나뭇가지로 올라가 예쁜 집을 짓고 잠들었어요.  

며칠 후 심심한 베짱이와 방울벌레가 달팽이를 찾아 왔어요.
“나비는 아직도 안 나왔니?”
“조금만 더 기다려.”
“정말 그 못생긴 벌레가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될까?”
“그래. 꼭 호랑나비가 되어 나올 테니까 두고 봐.”
“혹시 그 안에서 죽은 게 아닐까?”
방울벌레와 베짱이가 한참동안 입방아를 찧고 간 후 또 며칠이 지났어요. 여전히 아기 나비는 고치 속에서 자고 있었어요.  
언덕 아래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모두들 걱정을 하며 우왕좌왕하는데 새 한 마리가 날아오며 다급하게 소리쳤어요.
“큰일 났어요. 커다란 트랙터들이 이 숲을 밀어 버리고 호텔을 짓는대요. 어서들 언덕 너머로 피하세요.”
그 말을 들은 숲 속 식구들은 이리 뛰고 저리 날며 야단법석이었어요. 다들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는데 달팽이만 조용히 집속으로 들어갔어요. 달팽이는 밤이 되어도 아기나비 걱정에 잠들지 못했어요.
날이 밝자 달팽이는 서둘러 아기나비가 잠든 나무로 기어가기 시작했어요. 이사 가느라 분주한 친구들이 어디 가냐고 묻자 달팽이가 대답했어요.
“아기나비를 데리고 가야지. 지금쯤 나비가 되어있을 거야.”
그러자 모두들 달팽이에게 말했어요.
“정신 나갔니? 지금 아기나비 걱정하게 생겼어? 빨리 여기를 떠나야지. 그렇잖아도 넌 무거운 집을 지고 가야하니까 누구보다 먼저 떠나야 하잖아.”
그러나 달팽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아기나비가 잠든 나무로 기어갔어요. 나무 밑에까지 온 달팽이는 흐르는 땀을 씻을 사이도 없이 나무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아래쪽에서는 어제보다 더 가까이서 나무를 자르고 바위를 깨트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사를 가던 여치와 베짱이가 달팽이에게 소리쳤어요.
“고만 올라가. 네가 나무에 다 올라가기도 전에 그 나무는 잘릴 거야.”
“괜찮아. 내 걱정은 말고 먼저 떠나. 난 절대로 아기나비를 두고 혼자 갈 수 없어. 나비가 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린다고 약속했거든.”
무당벌레와 방울벌레도 그리고 딱정벌레도 허둥지둥 언덕너머로 떠났어요.
모두 떠나고 달팽이만 남았어요.
달팽이가 아기나비가 잠든 고치 가까이 갔을 때였어요.
‘꽝’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흙과 돌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떨어졌어요. 바로 옆에서 바위를 깨트리려고 폭파한 것입니다. 달팽이는 흙과 돌을 뒤집어 쓴 체 공중을 몇 바퀴 돌고는 땅 바닥에 떨어졌어요. 달팽이집은 깨지고 여기 저기 살이 찢겼어요.
바로그때 아기나비가 잠든 고치 속에서 나비가 나왔어요. 그 나비는 날개를 말리며 검은 무늬와 노랑 무늬가 있는 커다란 날개를 천천히 폈어요.
아! 그건 아름다운 호랑나비였어요!!
날개를 활짝 편 호랑나비는 우아하게 나르기 시작하였어요. 위로 아래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훨훨 날던 호랑나비가 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달팽이 앞에 내려앉았어요. 호랑나비는 깨진 달팽이를 잡고 울며 말했어요.  
“엄마! 나 예요. 아기나비예요.”
그러나 아기나비가 아무리 불러도 달팽이는 눈을 뜨지 못했어요.  
“엄마! 보세요. 이제 난 호랑나비가 되었어요. 얼마나 아름다운지 봐주세요.”
호랑나비가 달팽이를 안고 얼굴을 비비자 달팽이가 가늘게 눈을 떴어요. 그리고 한쪽만 남은 더듬이로 호랑나비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정말 네가 아기나비가 맞니? 그래, 넌 꼭 네 엄마를 닮았구나. 고맙다. 정말 네가 호랑나비가 되다니 기쁘고 자랑스럽구나!”
그러자 호랑나비가 울며 말했어요.
“엄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이젠 내가 엄마를 도와드릴게요.”  
“아기나비야! 네가 나는 걸 보고 싶구나. 엄마 앞에서 날아보겠니?”
“엄마, 얼마든지 날 테니까 잘 보세요.”
호랑나비는 달팽이를 조심스레 풀잎에 올려놓고 날기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날개를 활짝 펴고 나풀나풀 날고 또 날았어요.
호랑나비 날개에 부딪힌 햇살 한 가닥이 달팽이 눈에 닿았어요.
달팽이는 조용히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게 잠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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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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