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갈매기(제 2 동화집)

2007.02.23 08:49

홍영순 조회 수:1094 추천:146



                    겁쟁이 갈매기

                                            


갈매기들이 한가로이 날고 있는 샌디에고 오션사이드 바닷가입니다.
끝없이 이어진 해변의 집들과 조용한 파도가 그림보다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 바닷가에 나무로 만든 오래된 피어(Pier)가 있어요. 피어 끝에 루비스(RUBy’s) 란 작은 레스토랑이 있고, 그 주위에 비둘기들이 모여 살고 있어요.

보름달이 환한 오월 밤입니다.  
밤이 깊어지고, 바닷가 모래사장에 모닥불이 하나 둘 꺼지자 사람들도 모래를 털고 일어났어요.
하루 종일 맛있는 냄새가 나던 레스토랑도 이미 불이 꺼졌고 비둘기들도 잠들었어요.
어렴풋이 잠들었던 까만 비둘기가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깨었어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바닷물이 조용조용 모래톱을 다녀갈 뿐 아무도 없었어요.
잔잔한 바다에는 하얀 달빛이 반짝이고. 피어 위에 줄지어 선 노란등불들은 보석처럼 아름다웠어요.
까만 비둘기가 다시 잠을 청하는데 쓰레기통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어요.
“누구세요?”
“친구.”
“친구? 친구면 거기 숨어 있지 말고 이리 나와 봐.”
  회색 갈매기 한 마리가 쓰레기통 뒤에서 조심스럽게 나왔어요.
“넌 겁쟁이 아니니? 그런데 왜 여태 여기 있어?”
“못 갔어.”
“너 오늘 이 피어를 떠난다고 약속했잖아.”
“난 바다 위를 날며 물고기 잡을 자신이 없어. 그동안 너하고 빵이나 과자를 먹고살았잖아.”
“그렇지만 넌 조개나 물고기를 먹는 바다갈매기야.”
“갈매기면 어떻고 비둘기면 어때? 난 네 친구고 여기서 오래 살았는데.”
“네가 왜 여기 살게 되었는지 잊었니? 태풍 불던 날 생각 안나?”
“생각나. 엄마 말 안 듣고 멀리 날아갔다가 태풍 때문에 죽을 뻔 한날인데 내가 어떻게 잊어버려?”
“제대로 날줄도 모르면서 왜 먼 바다로 나갔는데?”
“처음에는 친구들이랑 바닷가에서 나는 연습을 했지. 그런데 누가 더 멀리 날 수 있는지, 누가 더 빨리 나는지 내기 하다 보니 멀리까지 날아간 거야.”
“그럼 태풍이 불기시작 했을 때 빨리 돌아와야지.”
“빨리 돌아오려고 했는데 비바람에 앞이 안 보이고, 몸이 이리 저리 흔들려 마음대로 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마구 날갯짓을 했는데 어딘가에 탁 부딪치고 정신을 잃었어.”
“넌 그때 이 피어 난간에 부딪쳐 떨어졌어. 모두들 네가 죽은 줄 알았어."
“네가 날 데려다 살렸잖아. 그날 같이 놀던 친구들 중 셋이나 실종됐대. 그때 날 찾으러 바다로 나간 우리 엄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셨어. 끼끼-루-룩! 난 나쁜 갈매기야.”    
“울지 마. 지금은 울 때가 아니야. 그 날 다친 날개 다 나은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비둘기처럼 살면 어떻게 해? 이제 여기를 떠나 바다갈매들과 살아.”  
“그래도 난 바다가 무서워. 너하고 여기 살면 안 될까?”
“그러니까 널 보고 겁쟁이라고 놀리는 거야.”
“겁쟁이라고 해도 괜찮아. 난 여기서 너하고 살고 싶어.”
“난 겁쟁이 친구는 싫어. 네가 바다갈매기들과 살지 않으면 더 이상 너랑 친구 안 할래.”
  겁쟁이 갈매기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자 까만 비둘기가 말했어요.
“이제 그만 잠이나 자자. 숨지 말고 내 옆에서 자.”
“내일 아침에 비둘기들이 뭐라 할 텐데?”
“내일을 위해서라면 걱정하는 것 보다 자는 게 낫지.”  
  비둘기 말에 갈매기도 하품을 하며 잠을 청했어요.

날이 밝아오자 겁쟁이 갈매기가 까만 비둘기를 깨웠어요.  
“친구야, 친구야!”
“......”
겁쟁이 갈매기가 다시 긴 부리로 까만 비둘기 등을 톡톡 쳤어요.
“친구야, 아침이야.”
  그때 피어 난간에 앉았던 하얀 비둘기가 머리를 갸웃 거리며 다가왔어요.
“야, 넌 겁쟁이잖아? 너 어제 떠난다고 했는데 왜 여기서 잤냐?”
자고 있던 까만 비둘기가 눈을 번쩍 뜨며 말했어요.
“미안해. 어제 밤 나하고 얘기하다 늦어서 못 갔어.”
“그래? 그럼 아침은 여기서 먹지 않겠지?”
“알았어.”
겁쟁이갈매기가 힘없이 대답했어요.
곧 사람들이 피어로 모여들고, 레스토랑에서는 커피 냄새가 났어요.  
귀여운 아기가 아빠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오더니 팝콘을 뿌렸어요. 비둘기들이 모여들어 맛있게 먹자, 겁쟁이 갈매기는 피어 난간에 앉아 애써 먼 수평선만 바라봤어요.
팝콘을 먹던 비둘기 한 마리가 겁쟁이 갈매기에게 소리쳤어요.
“겁쟁이! 거기서 구경만 하지 말고 쓰레기통에 가봐. 아마 먹을 게 많을 걸.”
“......”
겁쟁이 갈매기는 여전히 먼 수평선만 봤어요.
“야, 이 겁쟁이야! 거기 있지 말고 바다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먹어.”
“맞아. 사람들은 비둘기에게 먹이를 준거지 갈매기에게 준 게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비둘기 먹을 것도 모자라는데 갈매기 먹을 게 어디 있어?”
비둘기들이 겁쟁이 갈매기를 몰아세우자, 까만 비둘기가 겁쟁이 갈매기한테 갔어요.
“거기 있지 말고 날 따라와.”
“어디 가게?”
“따라오면 알게 돼.”
겁쟁이 갈매기가 까만 비둘기를 따라 간 곳은 레스토랑 뒤였어요. 거기엔 아직 아침햇빛이 들지 않은 나무벤치 위에 싱싱한 홍합이 있었어요.
“먹어. 이게 네 아침 식사야.”
“네가 잡아왔어?”
“난 비둘기인데 어떻게 물고기를 잡니? 밤 낚시꾼들이 남긴 것 내가 갔다 놨어.”
겁쟁이 갈매기가 머뭇거리자 까만 비둘기가 재촉했어요.
“어서 먹어. 앞으론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는 한 너 먹을 건 없어.”
겁쟁이 갈매기가 천천히 홍합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침햇살이 살며시 다가와 갈매기와 비둘기를 안아줬어요.

  바다 위를 날던 갈매기들이 피어 난간에 앉아 쉬고 있는 한낮입니다.  
저 멀리 수평선엔 하얀 돛단 배 한 척이 지나가고, 낚시꾼들은 피어 난간에 낚싯대를 걸쳐놓은 채 바닥에 누워 낮잠이 들었어요.
하품을 하던 까만 비둘기가 졸고 있는 겁쟁이 갈매기에게 말했어요.
“너 오늘부터 물고기 잡는 법 배우는 게 어떻겠니?”
“어떻게 물고기를 잡아?”
“우선 썰물 때 조개를 물어다 바위에다 던지는 거야. 그렇게 해서 조개가 깨지면 먹는 거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어?”
“다른 갈매기들한테 물어 봤어.”
“그럼 나도 갈매기들을 따라 가볼까?”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러다 펠리컨 같은 큰 새를 만나면 어떻게 해?”
“펠리컨을 무서워하지 마. 크다고 다 무서운 건 아니야.”
“그래도......”
“넌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다니까. 너는 바다갈매기야.”
“정말 나도 다른 바다갈매기들처럼 날기도 하고 물고기도 잡을 수 있을까?”
“자, 이 유리창 앞에 와서 네 날개를 펴 봐.”
겁쟁이 갈매기가 까만 비둘기를 따라 레스토랑 유리창에 자기 모습을 비춰봤어요. 커다란 날개도 활짝 펴보고 긴 부리도 크게 벌려봤어요.
“네 날개는 내 날개보다 두 배는 크잖아. 넌 다른 바다갈매기들처럼 잘 날 수 있어.”
까만 비둘기가 웃으며 말했어요.
“친구야, 고마워. 이제부터 용감한 바다갈매기가 될게.”
겁쟁이 갈매기가 커가란 날개를 힘껏 퍼덕여보더니 말했어요.
“그럼 지금부터 연습할래?”
“지금부터?”
“그래, 내가 저 모래톱에 가 있을게 피어 난간에 올라가서 날아 봐.”
까만 비둘기는 피어 밑으로 내려가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톱에 섰어요.
겁쟁이 갈매기는 피어 난간에 올라서 힘껏 하늘로 솟구치며 두 다리를 꽁지날개에 착 붙였어요.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훨훨 날았어요.
“쿠쿠르~르르, 쿠쿠르~르르!”
모래톱에서 기다리던 까만 비둘기가 함성을 올렸어요. 그러나 겁쟁이 갈매기는 날개에 힘이 빠져 겨우겨우 까만 비둘기 앞까지 오자 떨어졌어요.
“괜찮니?”
까만 비둘기가 달려가며 소리쳤어요.
“처음이라 그렇지 다음엔 잘 할 수 있어.”
겁쟁이 갈매기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어요.
“다시 해보게?”
“물론이지. 백번이라도 연습해서 잘 날 거야. 더 이상 겁쟁이 갈매기란 말 듣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 난 네가 용감한 바다갈매기가 되리라 믿어.”
겁쟁이 갈매기는 다시 나는 연습을 했고, 까만 비둘기는 갈매기를 열심히 응원해줬어요.

겁쟁이 갈매기는 이제 바다갈매기들과 같이 살고 있어요. 파도 위를 날기도 하고, 재빠르게 다이빙하여 물고기도 잡았어요.
그렇게 무섭던 바다가 점점 좋아졌고, 과자나 빵보다 물고기를 더 좋아하게 됐어요. 부리도 더욱 튼튼해지고 날개도 훨씬 커졌어요.
더 이상 겁쟁이도 어린 갈매기도 아니었어요. 어느덧 용감하고 멋진 바다갈매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까만 비둘기를 찾아와 먼 바다 이야기를 해주는 건 하루도 거르지 않았어요.    
그날도 겁쟁이 갈매기는 피어로 까만 비둘기를 찾아왔어요. 그런데 다른 날 같으면 겁쟁이 갈매기가 멀리서 오는 것만 보아도 ‘쿠쿠르르, 쿠쿠~쿠르르!’ 반가워하던 까만 비둘기가 보이지 않았어요.
여기 저기 까만 비둘기를 찾아다니던 겁쟁이 갈매기는 깜짝 놀랐어요. 까만 비둘기가 피어 교각 귀퉁이에 쓰러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야! 왜 거기 있어?”
“......”
“친구야, 어디 아프니?”
갈매기가 급히 교각으로 날아 가보니, 비둘기 발에 낚싯줄이 감겨 꼼짝도 못하고 있었어요.
“이게 뭐야? 낚시 줄 아냐? 나보고 낚시 줄 조심하라더니 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니?”
“......”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까 어떤 아이가 과자를 줘서 다른 비둘기들과 맛있게 먹고 있었어. 그런데 그 아이가 갑자기 나를 잡으려 좇아오는 거야. 그래서 급히 이리로 피하다 끊어진 낚시 줄에 걸린 거야.”
“아유, 좀 더 조심하지. 그나저나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해?”
“다른 비둘기들이 풀어보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더 단단히 감기기만 했어.”
“어디 좀 봐. 내가 해볼게.”
“공연히 고생하지 말고 고만둬.”
겁쟁이 갈매기는 길고 꾸부러진 부리로 엉킨 낚싯줄을 조심스레 잡아당겼어요. 그러나 매끄럽고 뻣뻣한 낚시 줄은 갈매기 부리에서 빠져나갔어요. 이번엔 발톱으로 낚싯줄을 요리조리 잡아당겨봤어요.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낚싯줄이 풀리기는커녕 더 엉키기만 했어요.    
점심때가 지났어요.
겁쟁이 갈매기가 점심도 굶은 채 여전히 낚시 줄을 풀고 있자, 옆에서 구경하던 비둘기 중 한마리가 자기 발을 내밀며 말했어요.
“낚싯줄은 못 풀어. 내 발을 봐. 난 왼쪽 발가락이 하나도 없어. 나도 처음엔 낚싯줄을 풀려고 며칠을 고생했지만 결국 못 풀었어.”
겁쟁이 갈매기는 누가 무슨 말을 하던 열심히 낚싯줄을 풀며 말했어요.    
“그래도 난 끝까지 낚싯줄을 풀 거야.”

어느덧 하늘도 바다도 온통 오렌지 빛으로 물들었어요.
까만 비둘기는 몸도 마음도 지쳤어요. 무엇보다도 뻣뻣한 낚시 줄에 수없이 쓸린 발가락이 아파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요. 비둘기는 견디다 못해 갈매기에게 말했어요.  
  “이제 고만 포기해라. 너무 아파.”
그러나 겁쟁이 갈매기는 머리를 흔들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어요.
“난 포기 못해. 발가락 없는 친구를 볼 수 없으니까.”
  갈매기가 다시 낚싯줄을 잡아당기자 비둘기가 소리쳤어요.
“이 고집쟁이 바보야, 아무도 못하는데 너라고 할 수 있니? 하지도 못하면서 왜 이래? 비켜. 저리 가란 말이야.”
순간 겁쟁이 갈매기가 물고 있던 낚시 줄을 잡아채며 잡고 있던 비둘기 발을 확 놔버렸어요.
까만 비둘기가 다리를 하늘로 뻗치며 벌렁 자빠졌어요.
겁쟁이 갈매기가 놀라 얼른 비둘기를 일으키며 소리쳤어요.  
“그래, 난 고집쟁이다. 전에는 나보고 뭐든지 할 수 있다더니 이제 와서 바보라고 해도 좋아. 그래도 난 절대로 포기 못 해!”
겁쟁이 갈매기가 다시 비둘기다리를 잡다가 깜작 놀랐어요.
“어? 낚싯줄이 어디 갔지?”  
하루 종일 그렇게 풀려고 해도 안 풀리던 낚싯줄이 감쪽같이 없어졌어요.
“낚싯줄이 없어! 낚싯줄이 풀렸어!”
겁쟁이 갈매기가 소리쳤어요.
“어머나! 정말 낚시 줄이 어디 갔지?”
까만 비둘기가 날개를 퍼덕이며 빙글빙글 돌았어요.
“낚싯줄이 풀렸다! 낚싯줄이 풀렸어!”
한참동안 좋아서 날개 춤을 추던 까만 비둘기가 깜짝 놀랐어요.
“야, 네 입에서 피난다. 아까 낚싯줄을 잡아챌 때 다쳤나보다. 많이 아프니?”
“아니, 하나도 안 아파!”
겁쟁이 갈매기는 긴 부리를 쫙 벌려 보이며 ‘끼루룩 끼루룩’ 웃었어요.
“그것 봐. 넌 이제 겁쟁이 갈매기가 아니야!”  
겁쟁이 갈매기와 까만 비둘기는 서로 쳐다보며 크게 웃었어요.
다른 비둘기들도‘쿠쿠 르르, 쿠쿠 르르!’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어요.
그때까지 겁쟁이 갈매기와 까만 비둘기를 지켜보고 있던 바닷바람이 파도를 일으키며 외쳤어요.
“낚싯줄을 풀었다. 겁쟁이갈매기가 낚싯줄을 풀었다!”
바람은 더 큰 파도를 만들고, 그 파도는 또 다른 파도를 불러서 샌디에고 모든 바다에 겁쟁이갈매기와 까만 비둘기 이야기를 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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