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보이니? (제 2 동화집)

2008.02.15 03:29

홍영순 조회 수:926 추천:152

   무엇이 보이니?

                                                  

남면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가 아침부터 부산합니다.
축구팀이 화랑대기 전국 초등학교 축구대회가 열리는 경주로 떠나기 때문입니다.
선수들 부모님들이 오고, 5학년 서상목 아빠엄마도 서둘러 학교로 왔어요.
“상목아, 밥 많이 먹었니?”
엄마가 상목이의 유니폼을 매만지며 물었어요.
“엄마, 걱정 마세요. 많이 먹었어요.”
“우리 상목이 오늘은 더 멋지구나!”
아빠가 상목이 운동화 끈을 매 주며 말했어요.
“아빠, 열심히 해서 나중에 꼭 월드컵 선수가 될게요.”
“그래. 아빠도 네가 좋은 축구선수가 되길 바란다.”
“상목아, 다른 부모님들은 응원하러 가는데 우린 못 따라가서 어떻게 하니?”
엄마가 상목이 여행 가방을 차에 실어주며 안타까워했어요.
“괜찮아요. 대신 토요일에 꼭 오는 거죠?”
“그래. 꼭 갈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라.”
선수들 탄 차가 경주로 출발하고, 응원단과 학부형들 차들이 따라갔어요.

8월 5일, 470여 팀이 참석한 화랑대기 축구대회 예선경기가 시작되었어요.
남면초등학교는 학교도 작은데 멀어서 응원단이 많이 못 왔어요.
대신 감독과 코치와 선수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똘똘 뭉쳤어요.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연습하고, 같이 응원했어요.  
그 결과는 남면초등학교 축구팀이 승승장구하며 32강에 올라갔어요. 소식을 들은 교장선생님과 부모들이 왔어요.
서상목 아빠도 토요일 응원을 왔어요.
본선경기 조별리그가 시작되었어요.
남면초등학교 축구팀은 정말 열심히 경기를 했어요. 한 경기를 이길 적마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은 기뻐서 눈물까지 흘렸어요.
드디어 시골학교인 남면초등학교가 처음으로 16강에 올라갔어요.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이 갈비를 굽고 축하파티를 마련했어요.
“상목아, 아빠는 월요일 출근해야 하니까 집에 간다. 남면초등학교가 4강에 올라가면 결승전 응원하러 엄마랑 또 올게.”
“예, 열심히 할게요.”
서상목 아버지와 몇 몇 부모님들은 아쉬워하며 일요일 밤에 돌아갔어요.
축구경기는 계속되었고 남면초등학교는 기적처럼 8강까지 올라갔어요. 그리고 드디어 4강을 위한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어요.
두 팀 다 이번 경기를 꼭 이겨야만 4강에 올라 갈 수 있어요.
경기장에 들어선 상목이는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넓고 산뜻한 축구장, 수많은 응원단과 관중들, TV 카메라들…….
상목이는 마치 올림픽이나 월드컵 선수라도 된 것처럼 가슴이 벅찼어요.
‘꼭 이겨야지!’
상목이는 두발에 힘을 콱 주고 심호흡을 했어요.
먼저 광천초등학교의 공격이 시작됐어요.
양 팀 선수들이 열심히 경기를 했지만 어느 팀도 득점이 쉽지 않았어요. 전반전 6분을 남겨놓고 상목이에게 볼이 날아왔어요.
상목이는 쫓아오는 선수를 따돌리고 재빨리 중거리 슛을 했어요.
“골~인, 골~인!”
함성이 터지며 친구들이 달려와 상목이를 끌어안았어요. 응원석에서 “서상목, 서상목”을 외치는 소리가 크게, 크게 들렸어요.
전반전이 1:0으로 끝났어요.

잠시 휴식을 가진 남면초등학교와 광천초등학교의 후반전이 시작되었어요.
전반전에 볼을 넣은 상목이는 자신감을 가지고 뛰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상목이는 공을 보고도 마음대로 찰 수가 없었어요.
광천초등학교 선수들이 앞뒤로 바짝 쫓아다니며 막기 때문입니다. 밀고 밀리다 후반전 13분에 광천 초등학교가 공을 넣었어요.
1:1이 되었어요.
광천초등학교 선수들은 발이 더욱 빨라지고 패스도 잘 되었어요. 반면에 남면초등학교 선수들은 패스가 끊기면서 우왕좌왕 했어요.
광천초등학교 선수가 공을 차며 남면초등학교 골문을 향해 질풍같이 달려왔어요. 당황한 남면 초등학교 수비가 발을 걸었어요.
순간 땅바닥에 쓰러진 광천초등학교 선수가 잔디밭에 데굴데굴 굴렀어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주심을 보던 선생님이 뛰어와 옐로카드를 꺼냈어요.
광천초등학교가 찬 페널티킥 볼이 남면초등학교 골문으로 들어갔어요.
이제 1:2가 되었어요.
남면초등학교 감독의 손이 올라가고 곧 선수들에게 새 작전이 전달되었어요.  
총 공격! 모두 앞으로 나가 싸우라는 작전 지시였어요. 수비 선수들이 나가고 공격 선수들이 들어왔어요.
상목이네 학교가 총 공격으로 나가자 의외로 상대편이 수비에 치중하며 상목이가 좀 자유스러워졌어요.
패스가 다시 이어지면서 상목이네 학교가 다시 한 골을 넣었어요.
2:2가 되었어요.  
이번엔 양쪽 팀이 모두 총공격을 했어요. 마지막 남은 9분 동안에 어느 팀이든지 공을 넣어야 이기니까 있는 힘을 다해 뛰었어요.
다시 상목이네 골문 앞으로 공이 왔습니다. 발과 발, 머리와 머리가 부딪쳤어요.
광천초등학교가 코너킥을 얻었어요.
공이 골문 앞으로 날아오자 여러 명이 한꺼번에 헤딩을 했어요. 상목이도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헤딩을 했어요.
순간 선수들과 부딪치며 땅바닥에 쓰러졌어요. 머리가 깨지는 것처럼 아프고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데 함성이 들렸어요.
“골~인! 골~인!”
상목이는 쓰러진 채 겨우 눈을 떴어요. 광천초등학교 선수들은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열광하고, 남면초등학교 선수들은 운동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어요.
상목이의 자책골이었어요.

남면초등학교 선수들은 4강에 올라가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밤이 되어서야 축구선수들이 학교에 도착하자 부모님들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상목이구나! 그동안 고생 많이 했지?”
상목이 아빠가 가방을 받으며 말했어요.
“......”
“어서 집에 가자. 엄마가 저녁 해 놓고 기다린다.”  
아빠가 다정하게 상목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어요. 그러나 상목이는 아빠의 팔을 뿌리치고 차에 탔어요.
그날부터 닷새 동안 상목이는 열이 펄펄 나며 아팠어요.
축구 감독님과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상목아, 많이 아프니?”
“열심히 하다 실수 한건 잘못이 아니야. 아무도 널 원망하지 않아.”
“시골 작은 학교에서 8강에 올라간 건 기적이라고 신문에도 났어.”
“우리 더 열심히 연습해서 내년에는 꼭 4강에 올라가고 우승도 하자.”
“다들 네가 제일 잘했는데 그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고 하더라.”
친구들은 진심으로 상목이를 위로했어요. 그러나 상 목이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이 없었어요.
“아이들 말이 다 맞다. 그리고 넌 지금 5학년이잖아. 내년에 더 잘하면 된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힘내라.”
감독님이 다정스레 말했어요.
“죄송합니다.”
상목이 눈에 그렁그렁 차 있던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어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다녀간 후에도 상목이는 일어나지 못했어요.
다음날 아침, 상목이의 방문이 열리고 아빠가 들어왔어요. 상목이는 눈을 감은 채 돌아누웠어요.
“상목아, 눈 떠 봐라.”
아빠가 상목이 눈앞에 축구공을 바짝 갖다 대며 말했어요. 상목이가 마지못해 눈을 떴어요.
“상목아, 뭐가 보이냐?”
“축구공이요.”
상목이는 짜증스레 대답하고 다시 눈을 감았어요. 자기는 자살골을 넣은 것 때문에 병이 났는데 아빠는 장난을 하는 것 같아 서운해서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조용하고도 따듯한 음성으로 다시 물었어요.
“축구공만 보이고 다른 건 안 보이니?”
“축구공이 두 눈을 다 가렸는데 뭐가 보여요?”
“그래? 그럼 이렇게 하면 뭐가 보이니?”
아빠가 방문을 열고 축구공을 뻥 차버렸어요.
“이젠 다 보여요.”
“무엇이 보이는데?”
“아빠도 보이고, 책상, 책, 방문 밖에 뜰과 하늘도 보여요.”
아빠가 조용히 상목이를 안아 일으켰습니다.
“상목아, 밖에 나가지 않겠니?”
“밖에요?”
“그래. 날씨가 무척 좋다. 아빠랑 나가보자.”
아빠가 얼마나 간곡히 말하는지 상목이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상목이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입었어요.  
“괜찮니?”
아빠가 해쓱해진 상목이를 부축하며 말했어요.
“예.”
상목이가 뜰로 나오자 울타리에 나팔꽃들이 웃고,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매달렸어요.
“화랑대기 축구대회를 너 때문에 진 것 같아 많이 속상하지?”
“나 때문에 졌잖아요.”
“그래. 많이 속상할 거야. 아빠라도 병나겠다.”
“그냥 졌어도 속상할 텐데 2:2 동점일 때 내가 자살골을 넣어 졌어요.”
“지금은 자살골이 네 마음의 눈을 다 가려서 다른 건 안보이지? 그 자살골을 뻥 차 버리면 네 앞에 있는 걸 볼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하면 자살골을 뻥 차 버릴 수 있어요?”
“네가 훌훌 털고 일어나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아빠, 자살골은 나만 차 버릴 수 있겠죠?”
“자살골이 지금은 네 마음으로 들어갔으니까 너만 차 버릴 수 있겠지. 그리고 요즘 자살골이라고 안해. 누가 자살골 넣고 싶어 넣었니?”      
“자살골이 아니고 자책골이라고요?”
“선수가 지고 싶어서 일부러 자기 골문으로 공을 넣었다면 자살골이지만, 공이 제멋대로 자기편으로 들어 간 건 자살골도 아니고 자책골도 아니다. 나 같으면 배신 골이라고 하겠다.”  
“배신골이요?”
상목이가 피식 웃었어요.
“왜 웃니? 그 축구공이 널 배신 한 게 맞잖아? 넌 바깥쪽으로 헤딩을 했는데 골문으로 들어갔으니까.”
“아빠 말이 맞아요. 그 축구공이 날 배신했어요.”
“그 얌체 같은 축구공이 널 배신하다니 참 괘씸하구나.”
아빠가 길가에 있는 나무를 퍽 걷어차며 말했어요.  
  “예, 그놈의 공 때문에 죽고 싶었어요.”
상목이가 조약돌을 팍 걷어차며 말했습니다.
“그 축구공이 배신했기 때문에 이제 다시는 축구하고 싶지 않니?”
“아뇨. 축구공은 날 배신했지만 난 축구공을 버릴 수가 없어요.”
“축구대신 다른 걸 하면 되지 뭐.”
“제 꿈은 월드컵 축구선수라니까요.”
“그래? 그럼 월드컵 축구 선수 되라!”  
아빠가 껄껄껄 웃으며 상목이 어깨에 팔을 둘렀어요. 상목이도 아빠 어깨에 팔을 올렸어요.
“이젠 네가 아빠와 어깨동무 할 만큼 컸구나!”
아빠와 상목이 발걸음에 으쓱으쓱 힘이 들어갔어요.  
“아빠, 그런데 제가 정말 축구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어렸을 때 아무리 잘해도 중간에 그만두면 재주가 없는 사람이고, 끝까지 하는 사람이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그럼 걱정하지마세요. 아빠 아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게요.”
“나도 네가 훌륭한 월드컵 선수가 되기 바란다.”

상목이와 아빠는 논둑길을 지나 개울로 갔어요.
개울에는 벌써 아침 햇살이 조약돌과 장난치며 놀고, 여울목에선 버들붕어들이 비늘을 번쩍이며 뛰어 올랐어요.
아빠가 개울물로 ‘푸우, 푸우’ 물을 튀기며 세수했어요. 상목이도 아빠 옆에서 ‘푸하, 푸하!’ 아빠 쪽으로 물을 품어대며 세수했어요.
아침 산책 나온 송사리 떼가 놀라 달아났어요.
“상목아, 우리 버들붕어 잡을까?”
“저 오늘 학교 가야 되는데 늦으면 어떻게 해요?”
“너 학교 가려고? 아, 맞다! 아빠도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어 일찍 출근해야 한다.”
“그럼 저녁때 고기 잡으러 올까요?”
“그래, 나도 오늘은 일찍 올게.”
상목이가 납작한 조약돌 하나를 집어 허리를 굽히고 물 위로 던졌어요. 조약돌은 네 번이나 물수제비를 뜨고 반짝이는 물속으로 들어갔어요.
아버지도 조약돌을 골라 물위로 던졌어요. 아버지의 조약돌은 날쌔게 다섯 번이나 물수제비를 뜨고 물속으로 숨었어요.

아침밥을 해놓고 상목이와 아빠를 찾아 나온 엄마가 개울둑에서 웃고 있었어요.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50,075